정부가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의 통합을 추진하면서 가칭 '에너지자원공사'의 본사 위치를 둘러싼 울산과 대구의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상편에서 1962년 이후 정유·석유화학과 울산항, 국가 비축시설, 한국석유공사까지 이어진 울산 에너지 산업의 기반을 짚어본 데 이어 하편에서는 수소·암모니아·해상풍력 등 미래에너지 산업과 에너지자원공사 유치 가능성,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울산 에너지 산업의 출발점은 석유였지만 미래까지 석유만으로 이어갈 수는 없다.
기후위기와 탄소중립, 세계 에너지 공급망 재편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기존 정유·석유화학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한편 수소와 암모니아, 해상풍력 등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산업영역을 넓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를 통합해 출범할 가칭 '에너지자원공사'의 울산 유치 문제도 이러한 에너지 산업 전환과 맞물려 있다.
울산시는 통합공사를 단순한 공공기관 하나의 유치가 아니라 기존 정유·석유화학 산업과 항만·저장시설, 미래에너지와 연구개발 기능을 연결하는 '동북아 에너지 허브' 구상의 한 축으로 보고 있다.
다만 대구와의 유치 경쟁은 물론 한국석유공사의 재무구조와 기존 석유화학 산업의 경쟁력, 미래에너지 사업의 경제성까지 함께 풀어야 한다는 점에서 과제도 적지 않다.
울산에서 수소는 완전히 새로운 에너지원이 아니다.
정유와 석유화학 공정에서 발생하는 부생수소를 산업체들이 오랫동안 활용하면서 생산시설과 수요처를 연결하는 배관망이 자연스럽게 형성돼 왔다.
울산경제자유구역청의 최신 투자환경 자료에 따르면 울산의 수소 생산능력은 연간 98만톤, 수소배관망은 198.5㎞에 이른다.
이러한 기존 산업 인프라는 울산이 수소경제로 이동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이다.
수소 활용범위도 제조공정에서 모빌리티와 발전으로 넓어지고 있다.
롯데SK에너루트는 롯데케미칼과 롯데정밀화학 울산공장에 총 80MW 규모의 수소연료전지 발전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롯데케미칼은 2026년부터 해당 발전소를 통한 전력공급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울산시는 승용차 중심이던 수소충전 인프라도 버스와 트럭, 트랙터, 지게차 등 대형·산업용 모빌리티로 확대하고 있다.
기존 석유화학 산업에서 만들어진 수소 생산·배관 기반이 새로운 에너지산업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바다에서는 부유식 해상풍력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울산시는 동해의 해상환경과 지역 조선·해양플랜트 산업을 연계해 부유식 해상풍력을 미래에너지 산업으로 육성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올 2월에도 울산시와 관련 기업, 한국동서발전, 한국석유공사, 한국에너지공단 등이 참여한 간담회를 열고 사업 추진방향과 산업생태계 구축 문제를 논의했다.
이는 단순히 발전설비를 바다에 설치하는 사업을 넘어 울산의 기존 조선·해양플랜트 제조 역량을 풍력발전 기자재와 설치·유지보수 산업으로 연결할 수 있느냐는 산업전환 문제이기도 하다.
울산이 추진하는 미래에너지 전략은 결국 하나의 에너지원에 집중하기보다 기존 석유·가스와 수소, 암모니아, 해상풍력 등을 함께 활용하는 방향에 가깝다.
미래에너지 산업이 확대된다고 기존 정유·석유화학 산업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울산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정유·석유화학 생산시설이 집적돼 있어 기존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사업구조와 생산공정을 고도화하는 작업이 동시에 필요하다.
대표적인 투자가 S-OIL의 샤힌 프로젝트다.
S-OIL은 울산에 총 9조 2580억원을 투자해 대규모 석유화학 복합시설을 건설하고 있다. 회사는 샤힌 프로젝트를 통해 연간 180만톤 규모의 에틸렌을 생산하는 스팀크래커와 고부가가치 석유화학제품 생산시설 등을 구축하고 있으며 2026년 준공을 앞두고 있다.
울산의 에너지 전환이 '석유를 버리고 수소로 이동하는 것'과는 다른 이유다.
기존 정유·석유화학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면서 그 위에 수소와 암모니아, 풍력 등 새로운 산업을 추가하는 복합적인 전환에 가깝다.
울산시가 에너지자원공사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가장 큰 이유도 산업 간 연결 가능성에 있다.
울산에는 정유·석유화학 생산시설과 울산항, 국가 석유비축기지, 코리아에너지터미널(KET) 등 에너지 생산·저장·물류 인프라가 집적돼 있고 한국석유공사와 에너지 관련 연구·공공기관도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 석유와 가스의 해외개발과 도입, 비축·공급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통합공사가 들어설 경우 공기업과 산업현장을 보다 긴밀하게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이 울산시의 구상이다.
특히 KET는 현재 석유제품 170만 배럴과 LNG 405만 배럴 등 모두 575만 배럴 규모의 저장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2024년부터 상업운영에 들어갔다.
울산시는 에너지 관련 공기업과 연구기관의 추가 집적이 이뤄질 경우 생산과 저장, 물류와 연구개발을 하나의 산업생태계로 연결하는 기반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상욱 울산시장이 에너지자원공사 유치를 지역 몫의 공공기관 하나를 추가하는 차원이 아니라 국가 에너지 공급망과 산업 효율의 문제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대구 역시 분명한 논리를 갖고 있다.
한국가스공사 본사가 위치한 대구는 현재 가스공사가 운영하는 전국 공급망과 조직 규모를 통합공사 유치의 핵심 근거로 내세운다.
대구시에 따르면 가스공사는 전국 5346㎞의 천연가스 주배관과 445개 공급관리소를 중앙통제소에서 실시간으로 관리하고 있다.
대구시는 기존 국가 가스 공급망의 컨트롤타워에 석유기능을 결합할 경우 통합비용과 조직 혼선을 줄이고 새로운 통합공사를 빠르게 안정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두 도시의 유치 논리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대구가 공기업의 조직 규모와 전국적인 가스 공급망 운영능력을 강조한다면 울산은 항만과 저장시설, 정유·석유화학 산업단지와 에너지 공공기관이 모여 있는 현장 집적도를 내세우고 있다.
지역 에너지 분야 관계자는 "통합공사 입지는 어느 지역의 목소리가 더 큰지가 아니라 통합 이후 석유와 가스 기능을 어디에 두는 것이 국가 전체의 공급망 안정과 산업 효율을 높일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석유공사의 재무구조도 통합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문제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2025년 말 한국석유공사의 자산은 19조 4400억원, 부채는 21조 9700억원으로 부채가 자산을 웃돌고 있다.
따라서 통합 과정에서는 석유공사가 수행해 온 해외자원개발과 국가비축 등 필요한 기능을 어떻게 재편할 것인지와 함께 기존 재무구조를 어떻게 처리할지도 검토해야 한다.
김 시장도 지난 7일 담화에서 가스공사와 석유공사의 자산·매출 규모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단순히 규모가 큰 가스공사가 석유공사를 흡수하는 방식보다는 미래지향적인 기능 강화와 국가 에너지 효율을 중심으로 통합방식을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합의 목적이 부실기관 정리에 있는지, 아니면 석유·가스와 미래에너지 기능을 재설계하는 데 있는지에 따라 통합공사의 조직과 입지 논리도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울산은 에너지자원공사 유치 과정에서 내세울 수 있는 산업기반이 적지 않다.
60년 넘게 축적된 정유·석유화학 산업과 대규모 액체화물 항만, 1680만 배럴의 국가 석유비축기지와 KET가 있고, 수소와 연료전지, 부유식 해상풍력 등 미래에너지 산업도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산업시설이 많이 모여 있다는 사실만으로 국가 공기업의 입지가 결정되기는 어렵다.
기업과 항만, 저장시설과 공기업이 실제로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국가 에너지 공급망의 안정성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는지, 연구개발과 해외자원 확보 기능을 어느 정도 강화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인 근거로 제시해야 한다.
동시에 울산의 기존 정유·석유화학 산업이 글로벌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 과정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결국 에너지자원공사 유치전은 울산과 대구가 공기업 하나를 놓고 벌이는 지역 간 경쟁만으로 접근해서는 설명하기 어렵다.
어느 지역이 통합공사의 기능을 국가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과정이 돼야 한다.
1962년 석유에서 출발한 울산의 에너지 산업은 64년 만에 다시 전환점에 서 있다.
앞으로의 울산이 석유와 가스, 수소와 암모니아, 해상풍력을 연결하는 에너지 산업도시로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을지는 지금까지 축적한 산업기반을 미래의 국가 경쟁력으로 얼마나 바꿔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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