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KDI)이 국내 경제가 인공지능(AI)과 반도체 관련 부문을 중심으로 개선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수출과 설비투자가 큰 폭으로 늘며 경기 회복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다. 다만 이 같은 온기가 가계소득과 소비로 충분히 확산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KDI는 7일 발표한 '9월 경제동향'에서 "우리 경제는 AI 관련 투자와 밀접한 부문을 중심으로 개선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외 AI 인프라 투자 확대에 힘입어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과 설비투자가 높은 증가세를 지속했고 금속가공과 전기장비, 기계장비 등 관련 제조업 생산도 비교적 양호한 모습을 보였다.
생산 지표도 개선 흐름을 이어갔다. 7월 전산업생산은 전년 동월보다 3.1% 늘어 2분기 평균인 2.9%를 웃돌았다. 광공업생산은 3.6% 증가했고 평균가동률도 74.9%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기계장비 생산은 9.6%, 금속가공은 6.9%, 전기장비는 4.0% 증가했다.
설비투자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가파른 증가세를 나타냈다. 7월 설비투자는 전년 동월보다 24.9% 늘었다. 특히 반도체제조용장비 투자가 66.0% 증가했고 전기·전자기기도 11.0% 늘었다. 8월 반도체제조용장비 수입액 증가율도 96.5%까지 확대돼 관련 투자 호조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을 높였다.
수출 역시 글로벌 AI 투자 수요에 힘입어 호조를 이어갔다. 8월 수출은 전년 동월보다 68.7%, 일평균 기준으로는 72.5% 증가했다. 일평균 수출액 기준 반도체는 216.1%, 컴퓨터는 431.2% 급증했다. 수출 증가폭이 수입을 크게 웃돌면서 무역수지는 347억5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다만 수출과 투자를 중심으로 한 경기 개선세가 가계로 충분히 번지지는 못하고 있다. KDI는 "경기 개선이 가계 전반의 소득으로 충분히 파급되지 못하면서 소비 개선세는 완만한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7월 소매판매액지수는 전년 동월보다 0.8% 감소하며 전월 3.9% 증가에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내구재 판매가 4.1% 줄었고 승용차(-2.5%), 가전제품(-0.8%), 통신기기·컴퓨터(-14.2%)가 모두 감소했다. 월별 변동성을 줄인 6~7월 평균 소매판매 증가율도 1.5%로 1분기 평균 3.2%를 밑돌았다.
가계 구매력 회복이 더딘 점이 소비 회복의 걸림돌로 지목됐다. 상반기 전체 근로자의 실질임금 상승률은 0.3%에 머물렀다. 서비스업 생산 역시 도소매업 증가율이 4.1%에서 0.1%로 낮아지고 숙박·음식점업은 1.0% 감소로 돌아서는 등 소비와 밀접한 업종을 중심으로 증가세가 둔화됐다.
건설투자 부진도 지속됐다. 7월 건설기성은 3.2% 감소했으며 주거용 건축은 7.9% 줄었다. 주택 인허가는 2만6000호, 착공은 2만호로 각각 2021~2025년 평균인 3만8000호와 2만9000호를 크게 밑돌았다. KDI는 주택 부문 부진과 높은 건설비용으로 건설투자 전반의 회복 속도가 완만할 것으로 내다봤다.
고용은 둔화 흐름이 다소 완화됐지만 청년층의 회복은 제한적이었다. 7월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보다 10만8000명 늘어 전월보다 증가폭이 확대됐지만 제조업 취업자는 6만8000명 줄었다. 20대 고용률은 59.1%로 전월과 같은 수준에 머물렀고 실업률은 0.5%포인트 상승했다.
물가 상승 압력도 여전히 남아 있다.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1%로 전월 2.8%보다 확대됐다. 지난해 통신비 할인에 따른 기저효과가 상당 부분 영향을 미쳤지만 통신비 효과를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도 2.6%로 물가안정목표를 웃돌았다. 중동 정세 불안이 다시 확대되면서 향후 석유류 가격의 상방 압력이 커질 가능성도 제기됐다.
KDI는 중동 정세 불안과 미국 통상정책을 둘러싼 대외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수출과 투자를 중심으로 경기 회복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가계소득과 소비, 건설, 청년 고용 등 내수 부문으로 회복세가 확산하는지가 향후 경기 흐름을 좌우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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