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업이 인공지능 전환(AX)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아직은 'AI 도구를 도입해보는 것' 또는 'AI로 업무를 자동화하는 것' 정도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동화와 AX는 다르다. 자동화가 기존 업무 순서를 그대로 둔 채 몇 개 단계를 기계로 바꾸는 일이라면, AX는 'AI가 할 수 있다면 이 일을 애초에 어떻게 설계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일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짜는 일이다.
AX 검토를 위한 첫 질문은 대개 ‘몇 명을 줄일 수 있나’가 된다. 그런데 재무 조직에서 이 질문으로 시작하면 십중팔구 실망하게 된다. 절감액이 기대보다 작다. 비용 절감이 당장의 손익을 개선하는 일이라면 재무구조 변화는 기업이 앞으로 더 많은 사업과 거래를 감당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일이다. 재무팀의 AX는 후자에 속하는 투자다.
기업이 성장하면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경로가 늘어난다. 새로운 판매 채널이 생기고 요금 체계가 다양해지며, 정산해야 할 파트너와 진출 국가도 늘어난다. 사업 부서에는 기회가 하나 늘어난 것이지만 재무팀에는 전혀 다른 일이 생긴다.
경로가 하나 늘 때마다 재무 담당자는 먼저 새롭게 들어오는 데이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어떤 항목이 비용이고, 어떤 것이 순수 매출이며,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집계된 숫자인지 하나씩 해석한다. 그다음 그것을 회사의 마감 기준에 맞게 변환한 뒤 맞지 않는 숫자를 끝까지 추적하고, 감사에 대비해 숫자의 근거를 설명할 증빙을 갖춰야 한다.
그 결과는 동시에 두 가지로 나타난다. 인건비는 계속 늘어나는데 사람은 남지 않는다. 재무팀의 이직이 유독 잦은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마감 기준과 예외 처리 방식이 대개 문서가 아니라 담당자 머릿속에 있다는 점이다. 그 사람이 떠나면 다음 사람은 처음부터 다시 배운다. 조직에 경험이 축적되지 않으니 사람을 계속 채용해도 팀의 처리 능력은 그만큼 올라가지 않는다.
재무팀 채용 공고는 늘 열려 있는데도 정작 감당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몇 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회사가 적지 않은 이유다. 결국 인원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바뀔 때마다 팀의 역량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구조가 문제다.
사람이 남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손실은 따로 있다. 이미 마감만으로 한계까지 차 있는 팀에 새로운 경로는 순수한 추가 부담이다. 그래서 신규 채널 입점이나 새로운 사업 모델을 검토할 때 재무 조직이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례가 실제로도 적지 않다. 재무팀이 보수적이어서가 아니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떠안지 않는 것은 조직을 지키는 합리적인 판단이다. 다만 그 대가로 놓친 사업 기회와 늦어진 시장 진출이라는 비용이 남는다.
매출 규모가 같은 두 회사를 놓고 보자. 한 곳은 새로운 기회가 생기면 한 달 안에 대응할 수 있지만, 다른 한 곳은 두 분기가 걸린다. 오늘의 손익계산서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런 차이가 반복되면 3년 뒤 두 회사의 가치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채널과 사업, 시장을 얼마나 빠르게 받아들이고 사업으로 연결할 수 있는지가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좌우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기반 중 하나가 바로 재무구조다.
재무 AX가 바꾸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인원 몇 명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재무 조직이 성장을 심사하는 부서에서 성장을 지지하는 부서로 바뀌는 것이다. 새로운 사업 기회가 생길 때 재무 업무 부담 때문에 속도를 늦추는 대신 기존 인력으로도 늘어나는 사업과 업무를 감당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숫자를 맞추는 데 쓰던 시간이 수익성 분석과 정산 리스크 점검으로 옮겨가는 것은 다음의 일이다.
한 가지 단서는 붙이고 싶다. 재무 영역에서 완전 자동화 자체를 목표로 삼는 접근은 위험하다. 한 번의 오류로 신뢰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잘 설계된 재무 AX의 목표는 100% 자동이 아니라 맞는 것과 사람이 확인해야 할 것을 정확히 갈라주는 데 있다. 들여다봐야 할 5%를 정확히 짚어주는 편이 100%를 시도하다 신뢰를 잃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경영자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은 하나다. 새로운 기회가 논의될 때 우리 재무팀은 어떤 표정을 짓는가? 그 표정이 반가움이 아니라 부담이라면 이미 성장의 속도를 재무구조가 결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이 재무팀의 AX를 기업의 성장 역량을 높이는 투자로 바라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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