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유증 주의보] "유증 자금은 어디로?"…반복 정정에 드러난 수상한 유상증자

 
자료금융감독원
[자료=금융감독원]

유상증자는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는 대표적 방법이다. 신규 사업 투자금이나 시설자금 조달, 재무구조 개선 등을 위해 추진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최근 자금 사용처가 모호한 유상증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유증으로 조달한 자금 사용처를 명확히 기재하지 않는 등의 사례도 적지 않다. 금융감독원의 정정요구가 올 들어 급증한 이유다. 증권가에선 증자로 유입된 자금이 실질적인 재무개선에 쓰이는지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증 목적이 불분명할 경우 횡령·배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2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최근 유증 관련 증권신고서에 대한 정정요구를 받은 곳은 한울반도체와 상지건설, 에이전트AI 등이다. 한울반도체와 상지건설은 각각 4차례, 에이전트AI는 3차례 정정요구를 받았다. 이들 기업은 모두 유증 과정에서 자금 사용처와 계열사 거래, 재무 상태 등을 반복적으로 보완했다. 그만큼 유증으로 유입될 자금 용처 등이 불분명했다는 얘기다.

한울반도체는 지난 4월 15일 보통주 470만주를 발행해 228억6550만원을 조달하는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으로 유상증자를 추진했다. 이후 정정을 거듭한 끝에 지난 7월 16일 네 번째 정정신고서를 제출하면서 발행 예정 주식 수를 380만주로, 모집총액을 190억7600만원으로 각각 줄였다. 다만 운영자금을 줄였고, 채무상환자금 80억원은 그대로 유지했다.

한울반도체는 종속회사 한울비전에서 빌린 차입금을 유상증자 자금으로 상환할 계획이다. 한울비전은 한울반도체가 100% 지분을 보유한 특수목적법인(SPC)으로, 2025년 말 기준 자산은 80억4100만원, 부채는 80억2000만원, 자본은 2100만원에 불과했다. 매출은 발생하지 않았고 당기순손실 200만원을 기록했다. 사실상 80억원대 차입금을 보유한 채 한울반도체에 자금을 공급하는 금융창구 역할을 해온 셈이다.

상지건설도 유증 자금용처가 모호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회사 측은 보통주 220만주를 발행해 187억4400만원을 조달하는 주주우선공모 유상증자를 추진했다. 조달자금 전액을 운영자금으로 사용하고 종속회사 카일룸도산에 대여할 계획이다. 카일룸도산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 98번지 일대에서 추진하는 '상지카일룸 에스칼라' 개발사업의 시행사다.

문제는 카일룸도산의 재무 상태다. 2026년 1분기 말 기준 카일룸도산의 자본은 마이너스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상지건설이 최근 공시한 부동산 개발사업 관련 자료에서도 카일룸도산은 자본잠식 상태이며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 개발사업 시행법인으로 기재됐다. 결국 상지건설 유증은 자본잠식 상태인 종속회사의 부동산 개발사업에 자금이 투입되는 구조다. 따라서 유증 참여자는 상지건설의 재무 상태뿐 아니라 자금이 최종적으로 투입되는 카일룸도산의 사업성과 PF 리스크까지 함께 부담하게 되는 셈이다.

에이전트AI는 무상감자와 유상증자가 연이어 진행된 사례다. 회사 측은 액면가 500원인 보통주 20주를 1주로 병합하는 95% 무상감자를 결정한 뒤 187억3590만원 규모 유상증자를 추진했다. 신주 399만609주를 발행해 조달하는 자금 가운데 159억1290만원은 운영자금, 28억2300만원은 채무상환자금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회사 측이 조달하려는 유증 규모는 187억원으로 연간 매출을 웃돈다. 이 때문에 신규 자금이 기존 사업의 적자를 보전하는 데 그치는지,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 확대 등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이어지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유상증자가 주가조작이나 부정거래의 외형을 만드는 데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알에프세미가 대표적이다. 알에프세미는 2023년 200억원 규모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추진했고, 반재용 대표가 최대주주인 한국진평전자(현 알에프산업)가 신주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경영권이 변경됐다. 한국진평전자는 같은 해 6월 1일 200억원을 납입해 최대주주가 됐다. 하지만 이 회사 전·현직 대표는 올해 이차전지 사업 진출 등을 내용으로 한 허위 공시와 홍보를 통해 주가를 끌어올린 것으로 보고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정정요구가 반복되는 유증일수록 단순히 증자 규모나 할인율만 볼 것이 아니라 자금 사용처와 재무위험, 최대주주 및 계열사와 거래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자금이 계열사로 이동할 때는 해당 회사 재무 상태와 자금 회수 가능성까지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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