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는 피 튀기는 전쟁터다. 총칼 대신 숫자로 승패가 갈릴 뿐이다. 상승과 하락이 교차하는 그래프의 골과 골 사이엔 투자자들이 흘린 피(손실)가 흥건하다. 하루, 1시간, 1분, 1초마다 희비가 갈리는 주식 전투 혹은 전쟁에서 속칭 '개미'는 약자다. 기관이나 외국인투자자에 비해 가진 정보가 부족한 탓에 희생양이 되기 십상이다.
그런 개미들에게 지난 두 달 한국 증시는 최악의 전쟁터였다. 한국 증시 역사에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최악의 변동 장세가 빚어진 때다. 6월 22일 9114포인트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던 지수는 7월 30일 5993포인트까지 급락했다. 8월 들어 다시 반등기미를 보이다가 6700~6900 사이를 횡보하는 중이다. 이 기간 코스피 지수 최대치와 최저치 간 격차는 3121포인트에 달했다. 1년도 아니고 단 두 달 사이에 천당과 지옥을 오간 셈이다.
이 기간 출렁임이 얼마나 심했는지는 증시 변동성 완충장치 발동 횟수를 보면 된다. 6월22일 이후 8월21일까지 코스피·코스닥에서 발동된 서킷브레이커는 7번, 사이드카는 31번 등 총 38회다. 연간 기준 이 두 장치가 가장 많이 발동되었던 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이었다. 이 때도 연간 26차례에 불과했던 걸 감안하면 상상도 못할 변동성이다.
이토록 극심한 변동 장세에서 지난 두 달여 동안 개미들이 갈팡질팡한 건 어쩌면 당연하다. 지수가 다시 오를지, 아니면 더 내려갈지 방향성을 누구도 가늠하기 힘들어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방향이 흐릿할수록 사람들은 누군가의 '예측'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혼세엔 예언이 난무한다. 역사적으로 모든 예언서는 세상이 혼탁하고 미래가 안 보이던 때 나왔다. 나중에 보면 혹세무민하는 '괴서'였다고 할만한 예언서도 많았다. '거짓 선지자'들도 있었다.
지난 두 달 우리 증시를 둘러싼 상황은 이와 다르지 않다. 하루 사이에 5~10%를 오르내리는 유례 없는 변동 장세 속에서 증권사, 투자은행(IB), 경제부처 등 수많은 '예언가'들이 연일 각종 예언을 쏟아냈다. 비단 '예언가'는 여의도 증권가에만 있는 건 아니다. 유튜브와 SNS에는 소위 '족집게', '투자고수'라는 이들이 특정 종목을 사라고 개미들을 부추겼다. '핀플루언서'라는 이들까지 합하면 무허가 예언가는 수백, 수천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런 전망 상당수는 이미 발생한 가격 움직임을 설명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주가가 오르면 오른 이유를 설명하고, 내리면 내린 이유를 찾아낸다. 예측이 아닌 사후중계에 가깝다.
불과 몇 달 전으로 돌아가 보자. 지난 5~6월만 해도 대다수 증권사는 하반기 또는 연말 코스피 전망치를 9000선 이상으로 제시했다. 일부 해외 투자은행은 1만2000까지 내다봤다. 근거도 분명했다.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예상보다 강하고 길게 이어질 것이며, 과거 반도체 사이클과는 구조적으로 다르다는 분석이었다.
그런데 6월 22일을 기점으로 시장이 급락하자 전망은 다시 바뀌었다. 이번에는 "단기 조정에 불과하다"거나 "펀더멘털이 견조하기 때문에 다시 상승할 것"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시장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설명도 반복됐다. 그러나 시장은 이런 전망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 대목에서 전설적인 투자자 존 템플턴 경의 경고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그는 "이번에는 다르다(This time it's different)는 말은 투자에서 가장 위험한 네 단어"라고 했다. 상승장에서는 탐욕이 미래를 지나치게 낙관하게 만들고, 하락장에서는 공포가 미래를 지나치게 비관하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결국 시장이 급변할 때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전망을 뒷받침할 근거를 찾아내기 쉽다는 게 템플턴 경이 던지는 메시지다.
물론 시장 전망이 필요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경제와 기업의 펀더멘털을 분석하고 앞으로의 위험과 기회를 점검하는 것은 투자에서 중요한 과정이다. 문제는 그것을 '예언'처럼 받아들이는 데 있다. 어떤 전망이 맞았다고 해서 그 전망을 내놓은 사람이 시장의 미래를 정확히 꿰뚫어 본 것은 아니다. 수많은 전망 가운데 하나가 사후적으로 현실과 맞아떨어졌을 수도 있다. '1만피'를 외쳤던 전망도, '바닥론'도 결과적으로 맞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예언의 능력이라기보다 시장이 어느 한 방향으로 움직인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증시는 앞으로도 오르고 내릴 것이다. 어느 누구도 그 방향을 매번 정확히 맞힐 수 없다. 특히 시장이 극단적인 탐욕과 공포 사이를 오갈 때 전문가의 전망에 기대어 투자 판단을 맡기는 것은 더 위험하다. 그래서 존 템플턴의 경고는 지금도 유효하다. 상승장에서는 '이번에는 끝없이 오른다'는 예언을 경계하고, 하락장에서는 '이번에는 영원히 무너진다'는 공포를 경계해야 한다. 지금 개미들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를 맞히는 예언가가 아니다. 냉철함으로 시장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도 버틸 준비를 하는 자세가 더 필요하다. 그게 극심한 변동 장세에서 살아남는 생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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