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운 역사에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국내 최초로 북극항로 컨테이너선 시범운항에 나선 팬스타 아크로호가 부산신항을 출항했다. 2758TEU급인 이 선박은 베링해협을 지나 북동항로에 진입한 뒤 영국과 네덜란드, 폴란드를 거쳐 10월 초 부산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한국 선박의 북극항로 시범운항은 10년 만이며 컨테이너선이 북극항로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이번 항해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새로운 뱃길 하나를 시험하는 데 있지 않다. 북극항로는 한국의 해운·물류 지도를 바꿀 잠재력을 갖고 있다. 부산에서 유럽으로 향할 때 수에즈운하를 거치는 기존 항로보다 거리와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 물류비용을 줄이고 운송 시간을 앞당길 수 있다면 수출 중심인 한국 경제에는 새로운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지정학적 의미도 크다. 홍해 사태와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에서 확인했듯 특정 항로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공급망 전체를 흔들 수 있다. 수에즈운하와 말라카해협 등에 집중된 해상 물류망에 북극항로라는 선택지가 추가된다면 공급망 안정성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부산항 역시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새로운 물류 거점으로 도약할 기회를 맞게 된다.
하지만 기대만으로 북극항로 시대가 열리는 것은 아니다. 가장 먼저 따져야 할 것은 경제성이다. 항해 거리가 짧아지더라도 내빙선 건조와 보험료, 전문인력 확보 등에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계절에 따라 운항 가능한 기간이 제한되고 해빙과 기상 상황에 따라 항로가 달라질 수도 있다. 거리 단축이 곧바로 물류비 절감으로 이어지는지 실제 운항 데이터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안정적인 화물 확보도 관건이다. 배가 다닐 수 있다고 해서 항로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부산에서 유럽으로, 다시 유럽에서 부산으로 돌아오는 양방향 화물이 꾸준히 확보돼야 정기노선이 가능하다. 국내 선사와 수출기업, 항만과 물류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화물 확보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도 이번 항해를 일회성 이벤트로 끝내서는 안 된다. 운항시간과 연료비, 보험료, 화물량, 기상 변화 등 모든 데이터를 축적해 북극항로의 경제성을 객관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북극항로 전용 선박과 전문 선원 육성, 부산항의 환적·정비·보급 기능 강화 등 장기적인 준비도 병행해야 한다.
팬스타 아크로호가 연 것은 완성된 항로가 아니라 가능성의 문이다. 진짜 성공은 무사히 부산으로 돌아오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번 항해에서 얻은 경험을 우리 해운산업의 경쟁력으로 연결하고 부산을 북극항로 시대의 거점으로 만드는 것이 다음 과제다. 북극으로 향한 첫 뱃길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경제항로가 되도록 지금부터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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