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2일, 일본 오사카시 니시구의 이온 오사카돔시티점 앞에는 개점 전부터 약 1000명이 줄을 섰다. 일부는 전날 밤부터 자리를 지켰다. 이들이 사려던 것은 명품 신상품도, 한정판도 아니었다. 정부 창고에서 두 해를 묵힌 2022년산 비축미였다. 쌀값 급등에 지친 소비자들이 2000엔대 묵은쌀을 사려고 밤을 새운 것이다.
이튿날 편의점 로손은 2022~2023년산 묵은 쌀로 만든 주먹밥을 '빈티지 쌀'이라는 이름으로 팔겠다고 발표했다. 온라인 게시판 등에는 "쌀이 위스키냐", "청바지처럼 오래될수록 가치가 오르는 것이냐"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일본의 쌀값 폭등은 2024년 여름 본격화했다. 이른 바 '레이와 시대의 쌀 파동'의 시작이다. 전년도 폭염으로 품질이 좋은 쌀이 줄어든 데다 방일 관광객 증가 등으로 수요가 늘었다. 난카이 해곡 지진 임시정보 발표 이후 사재기까지 겹쳤다. 슈퍼마켓에서는 쌀 진열대가 텅 비고 구매 수량 제한이 잇따랐다. 가을 햅쌀이 나오면 가격이 진정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오름세는 이어졌다. 2025년 3월 마지막 주 전국 슈퍼마켓의 쌀 5㎏ 평균 가격은 4206엔으로 1년 전의 두 배를 넘었다. 그해 4월에는 일본 쌀의 절반 가격인 한국 쌀을 포대째 사서 귀국하는 일본인 관광객까지 등장했다.
문제는 정부가 비축미까지 풀어도 쌀값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2025년산 일본 쌀 도매가격은 백미 1㎏당 616엔까지 올랐다. 반면 미국산 중립종 칼로스는 161엔 안팎이었다. 민간이 수입할 때 붙는 1㎏당 341엔의 관세를 더해도 502엔으로 일본산이 114엔 더 낮다. 단기적인 수급 불안만으로는 이런 가격 역전을 설명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일본 쌀값은 도대체 왜 소비자들이 두 해 묵은 비축미를 사려고 밤을 새우고, 해외에서 쌀을 짊어지고 돌아올 만큼 치솟았을까.
배경에는 일본 농업의 고질적인 생산비 문제가 있다. 경작 규모가 커질수록 효율이 높아져 생산비가 낮아진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일본 정부도 고령화 등으로 농사를 그만두는 농가의 농지를 전업농과 농업법인에 넘겨 규모화를 추진했다. 그 결과 이들이 경작하는 농지 비율은 2010년 48.1%에서 2024년 61.5%로 높아졌다.
하지만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한 농가의 전체 경작 면적이 늘었다고 해서 논 한 구획까지 커진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했다. 경작지가 여기저기 잘게 흩어져 있으면 총 경작 면적이 늘어나도 규모 확대에 따른 생산성 향상은 제한적이었던 것이다.
시가현 히코네시의 농업법인 후쿠하라팜은 흩어진 논을 한데 모아 작업 효율을 높인 드문 사례다. 약 240㏊를 경작하는 이 법인은 지역 농가들과 경작지를 맞바꾸고 논두렁을 없애 구획당 평균 면적을 0.8㏊로 넓혔다. 스마트 농기계와 드론을 활용해 논 구획이 평균 0.5㏊였던 때보다 단위 면적당 노동시간을 30~40% 줄였다. 농지를 한데 모으는 것만으로도 생산 효율을 크게 높일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농지 집적은 쉽지 않다. 매입하거나 임차할 수 있는 농지의 위치와 시기는 땅 주인이 언제 어느 논을 내놓느냐에 달려 있다. 여러 필지를 하나로 합치려면 소유자 모두의 동의가 필요한 만큼 한 명이라도 반대하거나 연락이 닿지 않으면 농지 집적이 중단되기도 한다.
닛케이는 이런 분산된 농지 구조에는 전후 농지개혁의 영향도 남아 있다고 짚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176만 지주 에게서 농지를 강제로 사들여 475만 소작농에게 분배했다.
이어 제정된 농지법은 지주제의 부활을 막고 자작농을 보호하기 위해 농지의 매매와 임대를 엄격히 관리했다. 이후 규제는 여러 차례 완화됐지만, 작은 필지 단위의 소유 구조는 그대로 남았다.
농지은행 제도를 도입해 여러 소유자의 농지를 빌려 한데 모아 대규모 농가에 빌려주는 정책도 시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2025년 3월 말 기준 소유자가 불분명하거나 연락이 닿지 않는 농지는 106만㏊로 전체 농지의 20%에 달했다.
이처럼 논을 큰 구획으로 합치기 어려운 구조는 작업 효율을 떨어뜨리고 생산비를 끌어올렸다. 현재 일본의 쌀 생산비는 미국보다 크게 높다.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쌀 60㎏당 생산비는 일본 평균이 1만5800엔으로 미국(3900엔)의 4.1배였다. 50㏊ 이상을 경작하는 일본 농가도 1만엔으로 미국의 2.6배였다. 농지 규모를 키우더라도 필지가 흩어져 있으면 기계화와 작업 효율을 충분히 끌어올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쌀값이 뛰자 유통·외식업체들은 수입쌀로 눈을 돌렸다. 이온은 지난해 캘리포니아산 칼로스 쌀 4㎏을 2680엔에 판매했고, 외식업체 코로와이드도 '규카쿠' 등 일부 매장에서 미국산 쌀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로손은 올해 칼로스 쌀을 사용한 일본식 김밥 '에호마키'를 판매했다. '쌀만은 국산이어야 한다'는 일본 소비자의 인식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일본의 민간 쌀 수입량은 9만7000t으로 전년의 95배였다. 국산 쌀값이 하락하기 시작한 올해 상반기에도 약 1만8700t이 수입돼 쌀 파동 전인 2024년 같은 기간의 50배에 달했다. 반면 높은 가격 탓에 2025년산 국산 쌀 수요는 농림수산성 예상보다 최대 28만t 적었다. 수입쌀이 일시적인 부족분을 메우는 수준을 넘어 일본 시장의 새로운 선택지로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값싼 수입쌀은 소비자와 외식업체에 당장의 탈출구가 된다. 그러나 국산 쌀 생산 기반은 한 번 약해지면 회복하기 어렵다. 일본 농가·농업법인은 지난해 83만6000곳으로 2005년보다 60% 줄었고, 미쓰비시총합연구소는 2050년 20만곳까지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넓게 이어진 농지를 확보하기 어려운 일본에서 쌀까지 국산을 고집할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도 나온다. 일본은 이미 밀의 80%, 유지류의 90%를 해외에 의존한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밀값이 급등하고 미국·이란의 군사 충돌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해외 공급망은 언제든 끊길 수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값싼 수입쌀과 식량안보 사이에서 일본의 선택은 쉽지 않다. 농업 구조가 비슷한 한국도 남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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