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찬 칼럼] 한·중 기술격차…숫자의 함정에 빠져선 안 돼

박승찬 사중국경영연구소용인대 중국학과
[박승찬 (사)중국경영연구소장/용인대 중국학과 교수]  
 

 
'반도체를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得芯片者得天下)'. 중국 과학기술 전시관을 방문하면 자주 눈에 띄는 문구다. 이 말은 2017년 중국 공정원 원사이자 반도체 기업인 비마이크로(VIMICRO·中星微电子) 덩중한(邓中翰) 이사장이 처음 언급했고, 2019년 미국의 대중국 제재가 본격화되면서 중국 지도자 및 언론에서 자주 인용하는 말이 되었다. 지난 7월 말 중국의 침지식 DUV(액침 심자외선) 국산화 소식과 중국 최고 D램 기업인 창신메모리(CXMT)의 상하이 증시 이슈로 인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요동쳤고, 관련 글로벌 테크주 주가는 급락했다. 시장의 반응은 중국이 정말 독자적으로 침지식 DUV를 양산할 수 있느냐에 집중되었다. ArF(불화아르곤) 침지식 DUV는 5세대 노광장비인 EUV(극자외선) 대비 하위모델이지만 일반 DUV 보다 한층 진화된 장비로 투영 렌즈와 실리콘 웨이퍼 사이에 물층을 형성해 더욱 미세한 회로 패턴을 구현하는 장비다. 관심은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제재 속에서 어떻게 독자 개발할 수 있었냐이다. 우선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제재를 시계열로 간단히 정리해보자.

특히 첨단공정에 대한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는 거의 전방위로 진행되어 왔다. 2019년 노광장비 기업인 ASML을 압박해 첨단공정용인 EUV에 대해 중국 수출을 전면적으로 차단했고, 2022년 10월에는 미세공정 반도체 제조장비 전반에 대한 포괄적 대중국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그리고 2023년 하반기 미국 압박에 의해 일본 반도체 장비기업인 니콘·캐논과 네덜란드 ASML이 반도체 수출통제에 동참하면서 첨단공정에 쓰이는 침지식 DUV 장비까지 대중국 수출이 엄격히 제한되었다. 2024년부터는 화웨이가 일반 DUV 장비를 활용해 7나노 첨단 칩을 우회 생산하자 범용반도체를 만드는 하위 DUV 장비의 수출 및 기존 장비의 부품 보수·유지 서비스까지 전면 봉쇄했다. 이런 봉쇄 속에 중국이 독자적으로 R&D 단계를 넘어 침지식 DUV 장비를 실제 생산 단계에 진입했다는 소식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중국의 DUV 독자생산과 CXMT의 증시 상장 그리고 IPO가 얼마 남지 않은 중국 낸드플래시 메모리 1위 기업인 양쯔메모리(YMTC)까지 2026년은 중국 반도체 굴기의 새로운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중국이 자체 개발한 노광장비가 어느 정도 수율과 안정성을 확보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가 붙는다.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과 국내 연구소가 발행한 보고서 내용을 종합하면 '단기적인 영향은 제한적이고, 아직 중국과 기술 격차가 크다'로 귀결된다. 중국 반도체 기술자립은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올해 초 국내 대외정책 연구기관이 발행한 중국 반도체 관련 보고서를 보면 '반도체 대부분 분야에서 한국이 중국에 비해 3~5년 앞서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중국과 기술격차를 전망하는 것은 이제 무의미하다. 결국 반도체도 다른 산업기술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추월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

지난 10년간 한·중 기술격차의 함정에 매몰되어 우리가 중국보다 몇 년 앞섰다는 자위를 하며 중국의 산업굴기를 인정하지 않았다. 주기적으로 발표하는 국책연구기관 보고서에서 우리 산업기술 역량이 단순히 '몇 년의 기술격차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초격차를 벌려야 한다는 말만 반복해 왔다. 회고해 보면 우리 정부와 연구소가 전망한 기술격차보다 더 빠르게 중국은 한국 기술을 추격해 왔다. 한·중 기술격차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행히 2025년 1월 딥시크 충격은 기존 중국 산업기술 자립화와 성장에 대한 굴절된 시각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올해 2월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첨단산업의 한·중 경쟁력 분석과 정책 방향' 보고서에 의하면 반도체를 제외하고 AI, 첨단 로봇, 이차전지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중국이 한국을 추월하거나 격차를 더 벌리는 구조적 역전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산업계와 사회는 단순히 '몇 년의 기술 격차가 있는지' 수치에 매몰되어 있다. AI, 휴먼노이드 로봇, 반도체 등 대다수 국가전략기술에서 '우리가 여전히 앞서 있다'는 착각이나 '무조건 초격차를 내야 한다'는 강박 관념 혹은 기술격차의 함정에 갇혀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수치적 격차와 초격차 환상에 갇혀 기술 역전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올바른 대응 시기를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중국의 첨단산업 굴기와 진화를 제대로 파악하고 인식해야 한다.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한·중 기술격차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중국의 전략적 추월 전략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단편적인 중국 기술혁신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산업 생태계의 진화에 주목해야 한다. 한·중 기술격차의 함정은 한국이 '아직 중국보다 기술력이 앞서 있다'는 안도감에 취해 중국의 거대한 자본력·양산력·응용 속도에 기반한 추격과 생태계 장악력을 과소평가하다가 산업의 주도권을 빼앗기는 리스크를 의미한다. AI 기반의 산업기술의 변화에 따라 과거의 기술 격차 공식은 이제 의미가 없고, 단순 수치상 우위보다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이 중요해졌다. 디스플레이, 석유화학, 로봇산업과 같이 중국은 개발부터 양산, 판매까지 자체 공급망 생태계로 내재화해 후발 주자에게 진입할 틈을 주지 않는다. 딥시크 충격, 화웨이 충격, 알리바바 충격, 키미 K3 충격 등 단편적인 중국 첨단기술의 약진과 성장보다 진화하고 있는 중국 첨단산업 생태계에 주목해야 한다.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막대한 국가자본과 대규모 반도체 내수시장 수요, 미국의 대중국 제재로 인해 SMIC와 CXMT 같은 중국산 장비를 쓸 수밖에 없는 환경이 중국의 독자생태계 구축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의 고강도 대중국 제재가 오히려 중국의 자체 기술력과 반도체·AI 기술자립을 자극해 중국의 산업생태계 경쟁력을 키우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경고가 현실화되고 있다. 중국은 자국산 장비를 쓸 수밖에 없고, 초기 성능이 부족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자국산 장비를 쓰면서 실제 데이터를 축적해 오고 있다. 중국산 첨단기술 등장 및 신제품 양산이 아니라 중국 반도체가 실패를 반복하면서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 과정에서 축적된 데이터가 차세대 장비로 얼마나 빨리 적용되고 응용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첨단 반도체 노광장비는 5000개 이상의 글로벌 협력사와 수십만 개의 정밀부품이 결합된 고난도의 시스템이다. 단일 기술이 아닌 방대한 글로벌 공급망 생태계에서 나오는 경쟁력이다. 중국은 DUV 노광장비를 분해해 5000개가 넘는 부품을 역설계하며 수없이 많은 실패를 경험하고 그 경험치를 축적하며 자체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둘째, 정부 주도의 대표선수를 규합하는 '중국식 산업 통합형 시스템' 구축이 가져올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이번 공개된 중국 침지식 DUV 장비를 누가 제조했느냐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발표 초기에는 제조기업 실명이 공개되지 않았다. 그리고 시장에서는 '상하이 아이성나 전자기술그룹(上海爱晟纳电子科技集团, 2023년 8월 설립)'이 유력한 후보기업으로 추측됐고 다시 '상하이 위량성 테크놀로지(上海宇量昇科技有限公司, 2022년 7월 설립)'가 실제 제조기업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2개 기업 모두 설립된 지 4년도 채 되지 않은 신생 기업들이다. 이들이 ASDL이 수십 년간 자체 연구개발한 침지식 DUV 장비를 개발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결국 중국 노광장비의 병목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직접 감독으로 나서며 대표선수를 규합해 대표팀을 만들었다는 애기가 된다. 반도체 장비 생태계에 있는 중국 대표기업의 기술 성과를 정부 주도로 하나의 노광장비 개발 및 양산을 위한 시스템을 통합한 결과다. 노광기 제작에 필요한 광원∙스테이지∙침지장치∙계측∙광학 등 개별 대표기업의 분산된 노광장비의 핵심기술을 모아 하나의 대표팀을 만든 것이다. 중국은 미국의 첨단산업 제재에 막혀 있는 병목기술 대부분을 대표선수를 규합하는 '산업 통합형 시스템'을 구축해 해결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중국의 기술자립은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중 기술격차의 함정과 초격차의 환상에서 벗어나 한국만이 제공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기반의 산업주권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결국 생태계 구축 경쟁력의 속도전이 향후 한·중 기술격차의 정확한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한국 기업이 초격차를 통해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옮겨가는 속도가 중국이 범용 반도체에서 첨단공정으로 올라오는 속도보다 빠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주중 한국대사관에서 경제통상전문관을 역임했다. 미국 듀크대(2010년)와 미주리 주립대학(2023년) 방문학자로 미·중 기술패권을 연구했다. 현재 사단법인 한중연합회 회장 및 산하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더차이나> <딥차이나> <미중패권전쟁에 맞서는 대한민국 미래 지도, 국익의 길> <알테쉬톡의 공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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