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 김원훈은 지난 11일 JTBC '연애전쟁'에서 자신을 '회피형'이라고 소개했다. 싸울 때 표정 변화가 크지 않고, 바로 대화하기보다 하룻밤 감정을 가라앉힌 뒤 이야기하는 편이라는 이유였다. 8년 연애 끝에 결혼한 그는 아내와 갈등을 푸는 방식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지난 13일 ENA·SBS Plus '나는 SOLO, 그 후 사랑은 계속된다'에 출연한 26기 정숙은 이상형을 이야기하면서 "회피형은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연애 프로그램에서 이제 회피형은 낯설지 않은 단어다.
"회피형이네."
그런데 회피한다고 해서 회피형인 건 아니다. 어쩌면 오해는 '회피'라는 단어에서 시작됐을지 모른다.
일상어의 '회피'와 애착이론에서 말하는 '회피'는 엄연히 다른 의미다. 갈등 상황을 피한다고 해서 상대를 회피형이라 낙인 찍는 건, 감기와 폐렴을 모두 '기침병'이라 부르는 것과 같다.
단어의 겉뜻만 좇다가 개념의 맥락을 놓친 무지한 해석이다. 정의를 제대로 세우지 않으면 진단이 달라지고, 진단이 달라지면 관계를 바라보는 해석도 완전히 어긋난다.
현대 성인 애착 연구에서는 사람을 주로 '애착불안'과 '애착회피'라는 두 개의 연속적인 차원으로 설명한다. 대표적인 성인 애착 척도인 ECR과 ECR-R 역시 친밀감이나 타인에게 의존하는 것을 얼마나 불편해하는지에 해당하는 '회피'와, 거절·버림받음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에 해당하는 '불안'을 각각 측정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회피형'은 갈등을 피하는지가 아니라, 친밀함과 의존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핵심이다.
애착회피가 높은 사람은 관계가 가까워지고 정서적 의존이 필요해질수록 자율성과 독립성을 지키려는 경향을 보인다. 힘들 때 상대에게 기대기보다 혼자 해결하려 하고, 자신의 애착 욕구나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면서 심리적 거리를 확보하려는 '비활성화 전략'을 사용하기도 한다.
따라서 싸운 직후 입을 닫는 행동 하나만으로는 회피형을 판별할 수 없다. 화를 가라앉힌 뒤 다시 대화하기 위해 시간을 갖는 사람도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 감정을 언어화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관계를 더 이어갈 마음이 없어 거리를 두는 사람도 있다.
행동은 같아 보여도 그 행동을 만드는 내적 배경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는 반대로 추론한다.
답장이 늦으면 회피형, 주말에 혼자 있고 싶으면 회피형, 싸운 뒤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면 회피형, 헤어지고 설명을 충분히 하지 않으면 회피형… 회피형 빙고게임이 펼쳐진다. 단어가 현실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단어에 맞춰 현실을 재구성한다. 이런 진단은 편리하지만, 진실과 가까워지는 건 아니다.
관계가 끝나면 사람은 설명을 원한다. 어떻게 시작했고, 어디서 어긋났고, 왜 무너졌는지 납득할 만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제대로 만들려면 자신도 등장해야 한다. 내가 어떤 신호를 무시했는지, 어떤 순간 상대를 몰아붙였는지, 무엇을 견디지 못했는지, 내 불안을 얼마나 상대에게 해결해달라고 요구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길고 민망한 작업이다.
반면 '회피형'이라는 세 글자는 놀랍도록 경제적이다. 상대는 문제 있는 사람이 되고 나는 피해자가 된다. 관계가 실패한 이유도 상대의 성향 안에서 모두 해결된다.
이때 심리학의 언어는 위험해진다. 이해를 위한 개념이 상대를 유죄로 만드는 판결문으로 바뀐다.
"그 행동 때문에 내가 고통받았다"와 "저 사람은 회피형 인간이다"는 전혀 다른 문장이다. 더구나 관계는 한 사람의 애착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당신이 보고 있는 그 사람의 애착은 실제 성향이 아니라, 당신과의 관계에서 나타난 표정일 수 있다.
당신에게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느낄 수도 있고, 설명해도 바뀔 이유가 없다고 판단할 수도 있고, 그냥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그건 비겁함일 수도 있고, 그냥 '끝'일 수도 있다.
'요구-철수'(demand-withdraw)는 부부나 연인 관계에서 불만족과 갈등을 심화시키는 패턴이다. 갈등 상황에서 한쪽은 비판, 불만 제기, 변화를 촉구하며 '요구'하고 다른 한쪽은 침묵, 회피, 자리 피하기 등으로 대응하며 '철수'하는 악순환적 의사소통 방식이다.
반복해서 '나는 왜 회피형만 만날까'라는 생각이 든다면 자신에게도 질문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나는 상대가 거리를 둘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답을 당장 얻지 못하면 견디지 못하는지, 상대에게 계속 설명을 요구하는지,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을 거절의 신호로 받아들이는지, 정서적으로 쉽게 다가오지 않는 사람에게 유독 강한 매력을 느끼지는 않는지.
관계는 두 사람의 자동 반응이 서로를 자극하며 만들어내는 일종의 케미스트리다. 우리가 보는 그 사람의 애착에는 그 사람의 지속적인 성향뿐 아니라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라는 맥락도 함께 들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애착이론의 쓸모는 상대를 분석하는 데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견디지 못하고, 관계가 위협받을 때 어떤 행동을 반복하는지 알아차리는 데 있다.
내가 갈등을 바로 풀어야 하는 사람인지, 시간을 갖고 이야기하는 사람과도 지낼 수 있는지, 어느 정도의 연락과 친밀감을 원하는지. 나와 맞지 않는 관계에서 무엇까지 타협할 수 있는지를 판단한 뒤 선택하면 된다. 상대의 방식을 견딜 수 없다면 떠나면 된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상대가 바뀌길 원하고, 상대가 바뀌어야 했다고 말한다. 상대를 '회피형'으로 규정함으로써, 바뀌어야 하는 쪽을 상대에게 떠넘긴다. 그럼 나는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상대의 회피를 열심히 분석하는 동안 자신의 불안에서는 성공적으로 회피할 수 있다.
"회피형을 만났다"며 자신의 경험을 반복해 설명하는 데에는 상처를 인정받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도 있을 테다. 그 마음이 잘못된 건 아니다. 다만 위로를 얻기 위해 만든 이야기가 사실 전체를 대신하는 순간, 관계에서 내가 했던 선택과 실수까지 함께 지워질 수 있다.
우리의 일상과 미디어에는 회피형, 가스라이팅, 나르시시스트 따위의 심리학 용어가 넘쳐난다. 타인을 설명할 단어가 갈수록 많아진다. 예전에는 헤어진 친구에게 "걔가 나빴네"라고 위로했다면, 요즘에는 "회피형 아니야?", "나르시시스트네"라며 전문적으로 위로한다. 술자리의 어휘 수준이 한 단계 높아졌다.
그만큼 관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깊어졌을까. 단어 몇 개로 사람을 더 빨리 분류하게 됐을 뿐이라면, 새로운 욕설 사전을 얻은 것뿐이다. 상대를 단두대에 올릴 단어만 늘어나고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은 줄었다면, 심리학을 많이 알게 된 만큼 오히려 성숙한 관계에서는 멀어진 것이다.
애착유형 역시 상대를 때리라고 있는 망치가 아니다. 관계 속에서 반복되는 나의 모습을 보기 위한 거울이다. 애착유형의 언어를 타인을 탓하기 위해 쓰는 순간, 당신은 자신이 비난한 회피형보다 더 비겁한 위치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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