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건의 심리렌즈] 정준원은 왜 그런 태도를 보였을까?

  • 수행 압박과 동결 반응, 시청자의 투사와 그림자가 맞물린 순간

배우 정준원 사진MBC 놀면 뭐하니 방송 캡처
배우 정준원 [사진=MBC '놀면 뭐하니?' 방송 캡처]

배우 정준원은 예능에서 좀처럼 입을 떼지 못했다.

지난 1일 방송된 MBC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 그는 질문을 받으면 한참 동안 답을 고르거나 공효진을 바라봤다. 의자 끝에 걸터앉은 채 주변을 살폈고, 출연진의 상황극이 이어지자 "이 모든 게 연기냐"고 물었다.

결정적인 장면은 "몇 살이야?"라는 문장을 여러 감정으로 표현하는 '4단계 연기 챌린지'였다. 정준원은 "어딜 보고 하면 될까요?"라며 자세를 잡았지만 좀처럼 대사를 시작하지 못했다. 눈을 질끈 감았고, 재차 기회가 주어졌지만 결국 공효진이 대신 챌린지를 마무리했다.

방송 후 반응은 차가웠다. 작품을 홍보하러 나온 배우가 지나치게 소극적이었고, 선배인 공효진과 진행자들이 대신 분위기를 떠받치게 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내향적인 성격을 태도 문제의 핑계로 삼지 말라"는 지적도 나왔다.

시청자의 불편함은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정준원의 내면이 아니라 질문이 계속 끊기고, 다른 출연자가 대신 답하고, 준비된 코너가 중단되는 결과를 본다.

다만 방송에서 나타난 모습을 정준원의 태도나 본성으로 단정할 수 있을까.

 
배우 정준원 사진MBC 놀면 뭐하니 방송 캡처
배우 정준원 [사진=MBC '놀면 뭐하니?' 방송 캡처]

정준원의 행동을 이해하는 첫 번째 단서는 "이 모든 게 연기냐"는 질문이다. 이날 출연진은 숏폼 드라마 제작진이라는 설정 안에서 서로를 탓하고 언성을 높였다. 예능 문법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웃음을 위한 상황극이라는 사실을 빠르게 알아차린다. 하지만 정준원은 자신이 어느 수준까지 진지하게 반응하고, 어디서부터 콩트에 합류해야 하는지 판단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상황에는 보이지 않는 규칙이 있다. 지금 하는 말이 진담인지 농담인지, 상대가 실제 대답을 원하는지 웃긴 반응을 원하는지, 어느 정도까지 과장해도 되는지를 실시간으로 파악해야 한다. 이 틀을 놓치면 할 말을 잃는 것을 넘어, 그 자리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잃어버릴 수 있다.

정준원은 배우로서 연기를 보여줘야 하는 동시에 홍보 담당자처럼 작품을 소개하고, 예능 출연자처럼 웃음에도 기여해야 했다. 솔직해야 하지만 프로그램을 깎아내려서는 안 되고, 웃겨야 하지만 배우로서 우스워 보여서도 안 된다. 상황극에 참여해야 하지만 경솔하게 반응해서도 안 된다. 그의 입장에서는 '한마디 하면 되는 자리'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틀리지 않을지를 계속 계산해야 하는 자리였을 수 있다.

 
사진MBC 놀면 뭐하니 방송 캡처
[사진=MBC '놀면 뭐하니?' 방송 캡처]

이속에서 유재석과 멤버들의 농담도 양면적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예능식 핀잔은 어색함을 웃음으로 전환하고, 반응이 없는 출연자에게 캐릭터와 분량을 만들어주는 기술이다. "왜 의자 끝에 걸터앉았냐", "떨어지겠다"는 멘트도 정준원의 긴장한 모습을 캐릭터로 만들어주려는 시도였지만, 이미 자신의 행동을 지나치게 의식하던 사람에게는 '지금 내가 이상하게 보이고 있다'는 공개적 확인처럼 들릴 수 있다.

 
사진MBC 놀면 뭐하니 방송 캡처
[사진=MBC '놀면 뭐하니?' 방송 캡처]

이는 자신의 표정과 행동을 과도하게 점검하는 '자기초점적 주의'로 설명할 수 있다. 한번 대답하지 못한 뒤부터 정준원의 머릿속에는 "이번에는 제대로 해야 한다", "또 공효진 선배가 대신 말하게 해서는 안 된다" 등의 생각이 겹쳤을 수 있다.

대니얼 웨그너의 역설적 사고 통제 이론에 따르면 어떤 생각을 억누르려 할수록 오히려 그 생각을 계속 확인하게 된다. 긴장하지 않으려 할수록 자신의 목소리와 표정, 주변의 반응을 더 세밀하게 감시하고, 자연스럽게 대답하는 데 필요한 주의는 줄어든다. 처음의 긴장이 수행 실패를 만들고, 그 실패가 수치심과 더 큰 긴장으로 이어지는 순환이다.

'놀면 뭐하니?' 출연진과 공효진은 정준원을 보호하려 했다. 다만 이들이 상황을 살리려 할수록 카메라와 대화의 초점은 정준원의 긴장에 더 강하게 맞춰지는 역설이 벌어졌다. 그를 향한 배려가 정준원에게는 더 커진 스포트라이트로 느껴졌을 수 있다.

 
사진MBC 놀면 뭐하니 방송 캡처
[사진=MBC '놀면 뭐하니?' 방송 캡처]

연기 챌린지는 이 압박이 가장 높아진 순간이었다.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던 배우가 저러는 게 말이 되냐"는 비판도 있지만, 촬영 현장에서의 연기와 예능에서 갑자기 요구받은 연기는 같은 과제가 아니다.

드라마에는 배역과 상대 배우, 장면의 맥락, 감독의 지시가 있다. 반면 예능 챌린지는 맥락이 제거된 한 문장을 즉석에서 표현하면서 연기력과 예능감까지 보여줘야 한다. 진지하면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 수 있고, 과장하면 본업이 우스워 보일 수 있다. 이미 여러 배우의 연기력이 비교된 콘텐츠라는 점도 부담을 키웠을 것이다.

정준원은 연기를 처음부터 거부하지 않았다. 어디를 보고 해야 하는지 물었고,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시선이 집중되자 눈을 감고도 시작하지 못했다.

 
사진MBC 놀면 뭐하니 방송 캡처
[사진=MBC '놀면 뭐하니?' 방송 캡처]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는 힘과 실패를 피하고 싶다는 힘이 충돌하면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지도, 완전히 거부하지도 못한 채 멈춘다. 정준원은 연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기보다, 연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과 망칠지 모른다는 두려움 사이에서 몸이 굳었을 수 있다.

눈을 질끈 감은 행동 역시 거부로 보기 어렵다. 감당하기 어려운 자극이 한꺼번에 들어올 때 시각 정보를 잠시 차단하고 대사에 집중하려는 자기조절 행동일 수 있다. 또는 압도적인 위협 앞에서 몸이 굳는 동결 반응일 가능성도 있다. 무성의와 동결은 화면에서 비슷해 보이지만, 무성의는 하기 싫다는 의지에서 나오고 동결은 하고 싶어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나온다.

"정준원이 다른 예능에서는 이러지 않았다"는 지적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를 거꾸로 해석하면, 정준원에게 문제가 된 건 예능 출연 자체가 아니라 '놀면 뭐하니?'라는 특정 환경이었을 수 있다. 베테랑 예능인들의 빠른 질문과 상황극을 즉시 파악하고, 그 흐름에 맞는 반응을 내놓아야 하는 공간. 내향적인 성격이 문제였다기보다, 낯선 환경에서 요구되는 역할이 복잡해지고 기대되는 수행 수준이 높아지면서 심리적 부담도 함께 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대중은 왜 그의 침묵을 빠르게 태도로 받아들였을까. 

시청자가 직접 경험한 건 정준원의 불안이 아니라 어색함이다. 웃음과 활력을 기대하며 주말 예능을 켰는데, 출연자가 말을 잇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난처해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재미를 기대한 시청자에게는 프로그램이 약속한 감정적 휴식을 빼앗긴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여기에는 도덕적 판단이 들어있을 수 있다. 출연의 이익을 얻는 만큼 방송에 기여해야 한다는 공정성, 개인적으로 힘들어도 맡은 일은 수행해야 한다는 책임감, 선배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는데 후배가 호응하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기준 등이다.

다른 사람보다 유독 강한 분노를 느꼈다면, 현재 장면 위에 과거의 경험이 포개졌을 가능성도 있다. 말하지 않고 물러선 사람 대신 답하고, 결정을 미룬 사람 대신 책임지며 자신의 몫 이상을 감당해야 했던 기억. 소극적인 사람은 배려와 기회를 얻는데 정작 빈자리를 메운 자신은 당연한 사람처럼 취급됐던 경험이 있다면 분노는 더 커진다. 현재의 정준원에게 반응한다고 생각하지만, 오래전 자신만 참고 수습해야 했던 순간과 다시 싸우고 있을 수 있다.

 
사진MBC 놀면 뭐하니 방송 캡처
[사진=MBC '놀면 뭐하니?' 방송 캡처

자신에게 허용하지 않았던 모습을 정준원에게서 본 불편함도 섞일 수 있다. 힘들어도 내색해서는 안 되고, 맡은 일은 끝까지 해내야 하며, 남에게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지켜온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얼어붙고 도움을 받는 모습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자신 역시 멈추고 싶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지만 이를 나약함으로 여기며 억눌렀다면, 정준원에게서 그 모습을 발견했을 때 더 거세게 비난할 수 있다. 자신 안에서 인정하기 어려운 약함을 상대의 문제로만 발견하는 것이 '투사'라면, 스스로에게 금지한 모습을 타인에게서 보고 유독 강하게 반응하는 것은 '그림자'의 작동으로 설명할 수 있다.

물론 모든 비판을 투사로 돌릴 수 없다. "나도 내향적이지만 직장에서는 저렇게 하지 않는다"는 말에는 책임감과 경험이 담겨 있다. 단지 "나는 참았는데 왜 저 사람은 보호받는가"라는 불공정 감각과, 자신이 추방했던 나약한 모습의 발견이 비판의 강도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선입견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앞서 정준원은 원작에서 뛰어난 외모로 묘사된 MBC '유부녀 킬러' 남자주인공 역에 캐스팅되며 일부 원작 팬들의 반발을 샀다. 누군가를 이미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로 분류하면 애매한 행동도 부정적으로 해석되기 쉽다. 긴장은 무성의로, 침묵은 거만함으로, 어색한 표정은 불쾌한 표정으로 읽힌다.

특히 주연이라는 큰 기회를 얻은 사람은 보호받기보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위치에 놓인다. 이때 서툶은 순수함이나 귀여움보다 준비 부족과 자격 미달의 증거로 해석되기 쉽다.

이번 이슈에서 대표 내향인 배우 엄태구가 거론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주어진 일을 수행하려 해왔고, 자신의 서툶을 미안해하거나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작품을 통해 쌓은 호감과 배역 이미지와의 반전도 있었다. 그의 침묵은 무성의가 아니라 '노력하는 서툶'으로 받아들여졌다.

 
배우 엄태구 사진TEAMHOPE 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 엄태구 [사진=TEAMHOPE, 롯데엔터테인먼트]

정준원에게는 그런 신뢰가 충분히 쌓이지 않았다. 엄태구는 어느새 '진짜 내향인'을 판별하는 기준이 됐고, 정준원은 그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으로 분류됐다. 다만 내향성에는 정해진 행동이 없다. 부끄러워하면서도 할 일을 하는 사람만 진짜 내향인이고, 아예 얼어붙는 사람은 가짜라고 말할 수는 없다. 같은 사람도 관계의 친밀도와 평가 압박, 현장에 적응할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르게 행동한다.

'내향인 호소인'이라는 비난에는 연예인의 취약성마저 상품화된다는 대중의 피로도 들어 있다. 소심함과 낯가림이 호감을 얻는 캐릭터가 되면서, 새로운 배우의 서툶도 실제 감정이 아니라 성공한 이미지를 따라 하는 연출처럼 의심받는다. 정준원 개인을 향한 비판에 진정성에 대한 불신까지 더해진 것이다.

물론 정준원은 예능 출연자로서 더 준비할 수 있었다. 시청자 역시 불편했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준비가 부족했다는 평가와 무성의하다는 단정은 다르다. 우리는 정준원이 말하지 못한 장면을 봤지만 하기 싫었던 것인지, 너무 잘하고 싶어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인지는 보지 못했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아량은 잘못을 못 본 척하는 관용이 아닐 것이다. 불편했던 사람의 마음도 인정하고, 얼어붙었던 사람의 사정도 함부로 지워버리지 않는 태도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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