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답은 다음 질문을 위한 출발점일 뿐입니다."
2006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크레이그 멜로(Craig C. Mello) 미국 매사추세츠대 챈 의과대학 교수가 AI 시대 연구자가 가져야 할 태도를 이 한마디로 요약했다.
국립부경대는 개교 80주년을 맞아 지난 18일 오후 교내 대학극장에서 멜로 교수 초청 강연을 개최했다.
멜로 교수는 ‘RNAi: A Molecular Spark in an Information Inferno(RNAi: 정보의 홍수 속 생명조절의 분자적 불꽃)’를 주제로 강연했다.
이번 강연은 한국과학기술한림원과 노벨 프라이즈 아웃리치가 공동 주관하는 ‘노벨 프라이즈 다이얼로그 서울 2026’과 연계해 마련됐다. 해당 행사는 20일 서울에서 열린다.
멜로 교수는 강연에 앞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AI가 연구와 교육 환경에 가져올 변화를 짚었다.
그가 꼽은 AI의 가장 큰 무기는 속도와 정밀함이다. 방대한 데이터를 순식간에 분석하고, 인간의 눈으로는 감지하기 힘든 미세한 차이를 포착해 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연구자가 더 예리한 질문을 던지도록 돕는 도구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AI가 도출한 결과를 맹신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실제 AI와 대화하는 과정에서도 답변에 동의하지 않아 다시 질문하거나 반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소개했다.
결과물에 오류나 허점이 섞여 들어갈 수 있는 만큼, 최종적인 판단과 엄정한 검증은 오롯이 연구자의 몫으로 남겨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학생들의 AI 사용을 막는 교육 방식에는 반대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AI를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큰 실수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는 AI와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능력이 연구자에게 중요한 역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강연에서 멜로 교수는 RNA 간섭(RNAi)의 발견 과정과 그것이 의약 분야로 확장된 여정을 풀어놓았다.
RNAi 연구가 처음부터 치료제 개발을 염두에 두고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그와 앤드루 파이어 박사는 예쁜꼬마선충을 이용한 실험 도중 이중가닥 RNA(dsRNA)가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는 현상을 우연히 포착했다.
특정 유전정보가 단백질 생성으로 이어지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이른바 ‘유전자 침묵’ 현상이었다.
멜로 교수는 당시를 떠올리며 연구 비화를 상세히 전했다. DNA를 동물에 주입하는 실험을 하던 중 예상과 달리 유전자가 억제되는 현상을 목격했고, 여기에 RNA를 주입하자 훨씬 더 강력한 억제 효과가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연구 결과는 1998년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실렸지만 당시 연구진조차 정확한 작동 원리를 온전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멜로 교수는 “1998년 논문을 발표했을 당시에는 이것이 정확히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지 못했다”며 “어떤 유전자가 관여하는지, 구체적인 메커니즘조차 알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럼에도 예상치 못한 실험 결과를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끝까지 추적한 집념은 결국 RNAi의 작동 원리 규명으로 이어졌고, 두 사람은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0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멜로 교수는 이 극적인 과정을 예로 들며 작은 생물을 다루는 기초연구나 당장 활용처가 보이지 않는 실험도 장기적으로는 의학을 바꾸는 혁신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학자는 끊임없이 호기심을 깨워야 한다”며 “계속 실패할 수 있지만 도전한다면 답을 찾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RNAi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분야로는 의학을 꼽았다. 많은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부터 극소수 환자가 앓는 희귀 유전질환을 정밀하게 겨냥하는 의약품까지 RNA 기술의 적용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면역 분야에서도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멜로 교수는 siRNA가 면역세포에 비교적 접근하기 쉽다며 암 면역을 포함한 면역체계 조절 분야에서 임상·전임상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학 외 분야에서는 농업을 예로 들었다. 그는 “RNA 간섭은 식물과 모든 동물에서 발견되는 현상”이라며 농업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관련 연구와 응용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노벨상 수상 이후에도 연구의 관심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나는 여전히 생명체가 정보를 어떻게 사용하고 처리하는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수상 이후 미국 매사추세츠주가 RNA 연구를 실제 치료로 연결하기 위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면서 연구진과 인프라는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서울과 부산에서 만난 한국 청년들에 대한 인상은 긍정적이었다. 과학에 정말 열정을 가진 젊은이들이 많다"고 평가했다.
연구자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남긴 당부는 호기심과 도전이었다. 멜로 교수는 “과학자는 끊임없이 호기심을 깨워야 한다”며 “계속 실패할 수 있지만 도전한다면 답을 찾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멜로 교수는 1982년 브라운대에서 생화학 학사학위를, 1990년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레드 허친슨 암 연구센터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1995년부터 매사추세츠대 챈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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