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환의 교육&시선] '정주(定住)'라는 호명(呼名)에 갇힌 지역 청년들

<교육&시선>은 무너져가는 공교육의 현장, 학령인구 감소, 요동치는 대입 제도 속에 초중등·고등교육의 이슈를 진단하고, 당면한 교육 현안·과제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짚어봅니다. 또 한편으론 지속 가능한 대안을 탐색합니다. 때로는 우리 사회에 대한 냉철하지만 따뜻한 시선도 담겠습니다.
교육부와 지방시대위원회 및 6개 시도서울 경기 인천 강원 전북 제주는 지난 8월 4일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2026년 수도권·3특 앵커 하계 포럼을 공동 개최했다 사진백두산 기자
교육부와 지방시대위원회 및 6개 시도(서울, 경기, 인천, 강원, 전북, 제주)는 지난 8월 4일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2026년 수도권·3특 앵커 하계 포럼'을 공동 개최했다. [사진=백두산 기자]
얼마 전, 고등교육 정책 포럼 취재를 마치고 참석한 뒤풀이 자리였다. 지역 청년 창업가와 졸업을 앞둔 대학생 서너 명이 섞여 앉은 테이블에서 자연스레 ‘앵커(Anchor)’, ‘글로컬대학’ ‘서울대 10개 만들기’ 등과 같은 고등교육 현안이 안줏거리로 올랐다.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한 정책 담론을 늘어놓던 중, 한 학생이 굳은 표정으로 불쑥 말을 끊었다. “기자님, 솔직히 저희는 관공서 플래카드나 보고서에 적힌 ‘지역정주’라는 단어만 보면 숨이 턱 막혀요. 마치 죄지은 것도 없는데 이 동네를 영원히 떠나지 말라고 찍어 누르는 ‘발목 채우기’ 같거든요.”

순간 뒤통수를 맞은 듯 멍해졌다. 교육부와 지자체, 대학이 한목소리로 외치며 수천억 원의 혈세를 쏟아붓는 핵심 정책 목표가 정작 그 혜택을 입어야 할 청년 당사자들에게는 섬뜩한 ‘가둠의 언어’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정책 공급자가 당연시해 온 행정 용어와 정책 수요자인 청년들의 삶의 언어 사이에 거대한 인지적 심연이 가로놓여 있음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정주(定住)’라는 말은 철저히 시혜적이고 관리자 중심적인 어휘다. 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고 머물러 산다는 사전적 정의와 달리, 탐색과 이행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20대 청년들에게 ‘정주’는 성장 잠재력의 거세를 뜻하는 ‘정체(Stagnation)’로 치환된다. 교육학적 관점에서 청년기는 자아를 확장하고 세상과 상호작용하며 심리사회적 유예기를 거쳐 잠재성을 꽃피우는 발달 단계다. 공간적·문화적 이동성은 이 시기 성장의 필수 자양분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고등교육 정책은 청년을 주체적 배움과 성장의 행위자로 보지 않고, 단지 지자체 인구 통계의 방어벽을 쳐줄 ‘인구 유지용 도구’로 타자화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 특유의 수도권 일극주의와 학벌 서열 구조가 결합하면 심리학적 ‘낙인 효과(Stigma)’까지 작동된다. 수십 년간 “성공하려면 서울로 가라”고 주입해 온 사회에서, 지역에 남는 선택은 종종 수도권 경쟁에서 탈락한 이들의 ‘어쩔 수 없는 잔류’로 폄훼된다. 사회적 인정 욕구가 최고조에 달한 청년들에게 “지역대학을 졸업했으니 지역에 정주하라”는 주문은 애향심을 빙자해 개인에게 패배주의적 꼬리표를 묵묵히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다.

노동경제학적 관점에서 접근해 보면 어떨까. 이러한 시각에서 본 현실은 더욱 참담하다. 청년들이 짐을 싸서 서울행에 몸을 싣는 이유는 단순한 허영심 때문이 아니다. 수도권과 지역 간의 절대적인 임금 격차, 커리어를 지속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소위 ‘괜찮은 일자리’의 절대적 부족, 문화·의료·주거 인프라의 단절이 만들어낸 합리적 선택의 결과다. 청년들이 마주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질적 미스매치는 방치한 채, 몇백만 원의 정착지원금이나 단기 월세 보조 같은 미봉책을 들이밀며 지역에 뼈를 묻으라는 것은 구조적 모순의 책임을 청년의 희생으로 덮으려는 전형적인 행정편의주의다.

이제 우리는 청년들을 호명하는 방식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강제로 주저앉히는 폐쇄적인 ‘정주’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청년이 스스로 삶의 터전을 닦고 싹을 틔우는 ‘지역 착근(Rooting)’이자 ‘주체적 정착’의 개념으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나아가 한곳에 평생 머물러야 한다는 낡은 결속주의를 깨고, 수도권과 지역을 넘나들며 유연하게 활력을 불어넣는 ‘관계인구’와 ‘생활인구’의 가능성을 고등교육 생태계 안에 적극적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물론 언어의 전환만으로 청년의 발길을 돌릴 수는 없다. 떠나지 못하게 울타리를 높게 치는 정책이 아니라, 타지로 떠났던 인재들조차 다시 돌아오고 싶게 만드는 ‘선택의 매력’을 만드는 것이 본질적 해결책이다. 지역 청년들이 미래에 베팅할 수 있는 양질의 앵커기업과 첨단 연구개발(R&D)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수도권 부럽지 않은 삶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지난한 구조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

인간은 머무르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성장하며 나아가기 위해 호흡하는 존재다. 흔히 ‘지역정주’는 수도권 일극주의에 맞선 ‘수도권 대 비수도권’의 균형발전 담론처럼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광역시·도로 잘게 분절된 사업단위에 갇혀 청년들을 각 지자체의 행정구역 경계선 안에 억지로 묶어두는 편협한 ‘가두기 행정’에 불과하다. 

광역 권역 간의 유기적 이동과 연계조차 가로막는 행정 칸막이에 갇힌 채, 청년의 발목에 ‘정주’라는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채워놓고 지역의 미래를 꿈꿀 수는 없다. 정부와 대학이 청년들에게 주어야 할 것은 결속의 족쇄가 아니라, 언제든 지역이라는 든든한 토대 위에서 더 넓은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단단한 발판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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