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돈줄 풀면서 집값 잡기, 정부 부동산 정책 시험대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정무위 업무보고에 참석했다 사진국회방송
이억원 금융위원장

정부가 가계대출 총량 증가 목표를 1.5%에서 3%로 두 배 높이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금융지원도 확대하기로 했다. 상반기 대출 총량이 빠르게 소진되면서 잔금·이주비 대출까지 막히고 정상적인 주택 사업도 자금난을 겪는 상황을 더는 방치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실수요자의 돈줄은 풀면서도 투기 수요와 집값 상승 기대는 차단해야 하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시험대에 올랐다.

가계대출 총량을 늘리면 금융권의 연간 대출 증가 여력은 약 30조원 더 생긴다. 정부는 이를 재건축·재개발 이주비와 신축 아파트 중도금·잔금대출, 청년 등 실수요자의 주거자금에 우선 공급하겠다고 한다. 총량 관리 때문에 실제 집을 사거나 입주해야 할 사람들까지 대출을 받지 못하는 부작용은 바로잡는 것이 맞다.

문제는 시장이 정부 의도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출 여력이 두 배로 늘었다는 사실 자체가 “정부가 결국 돈줄을 푼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집값 상승 기대가 살아 있는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늘어난 자금이 실수요를 넘어 다시 주택 매수 열기로 번지지 않도록 은행별·용도별 대출 흐름을 세밀하게 관리해야 한다. 풀었다가 집값이 뛰면 다시 조이는 식의 냉온탕 정책은 시장의 내성만 키운다.

PF 지원도 같은 원칙이 필요하다. 정상적인 주택 사업장이 자금 경색 때문에 멈추는 것은 막아야 한다. 그러나 사업성이 떨어지는 사업장까지 금융 지원으로 연명시킨다면 그동안 추진한 PF 구조조정의 의미가 퇴색한다. 정상 사업장은 살리고 부실 사업장은 정리한다는 선별 원칙을 지켜야 한다.

금융 규제의 이런 미세조정이 정부 부동산 정책 전체의 후퇴로 비쳐서는 더 곤란하다. 특히 최근 발표한 부동산 세제 개편을 둘러싸고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실거주 중심으로 세제를 바꾸고 초고가 주택의 과도한 양도세 혜택을 줄이겠다는 큰 방향까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직장 이전이나 부모 봉양, 자녀 교육 때문에 자기 집에 살지 못하는 1주택자나 소득이 적은 고령 장기보유자에게는 합리적인 예외와 보완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예외를 보완하는 것과 정책 원칙을 뒤집는 것은 다른 문제다. 실제 거주하는 집은 두텁게 보호하되 거주하지 않는 주택이나 막대한 양도차익에까지 과도한 세제 혜택을 주지 않겠다는 원칙은 타당하다.

정치권의 반발에 밀려 이런 원칙까지 후퇴한다면 시장에는 “버티면 결국 규제는 풀린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대출 총량을 늘린 시점에 세제마저 후퇴하면 그 신호는 더욱 강해진다. 정부가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돈줄을 무조건 죄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실수요와 정상적인 주택공급에는 필요한 자금이 흘러가야 한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투기 억제와 실거주 중심이라는 부동산 정책의 큰 원칙까지 느슨해져서는 안 된다. 필요한 곳에는 돈을 풀면서도 집값을 안정시키는 것, 지금 정부가 보여줘야 할 것은 바로 이런 정교한 정책 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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