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자의 사람이야기] 사람의 무게를 향기로 묻다, 언론인 한명규, 첫 시집 '사람의 무게는 향으로 잰다' 출간  

사진독자제공
[사진=독자제공]
사람의 무게를 무엇으로 잴 수 있을까. 직함일 수도 있고, 살아온 이력의 길이일 수도 있으며, 세상에서 이룬 성취의 크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한 사람의 진짜 무게를 모두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결국 오래 남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오면서 주변에 남긴 기억과 마음의 흔적, 말하자면 사람에게서 풍기는 ‘향기’인지 모른다. JTV 전주방송 한명규 부회장이 첫 시집 ‘사람의 무게는 향으로 잰다’(신아출판사)를 펴냈다. 제목부터 한 사람의 삶을 오래 들여다본 이의 생각이 묻어난다.
 
한명규라는 이름 앞에는 언론인, 행정가, 기업인, 방송 경영인이라는 여러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전주고와 전북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공부한 그는 미국 UC버클리대학교 방문학자를 거쳐 신문기자의 길에 들어섰다. 매일경제신문 편집국장을 지내며 언론 현장의 한복판에서 시대의 흐름과 사람들의 삶을 기록했고, 세계한상대회의 창립을 이끌었다. 이후 전북 정무부지사로 지역경제와 새만금 사업을 맡았고, 라오스 코라오그룹 부회장으로 7년을 보내며 낯선 나라의 시장과 사람들을 만났다. 귀국한 뒤에는 JTV 전주방송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다. 신문과 행정, 기업과 해외 사업, 방송을 거쳐온 삶이다. 돌이켜보면 이번 시집은 그 긴 여정의 어느 한 지점에서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 그동안 보고 듣고 겪었던 수많은 사람과 풍경이 오랜 시간 그의 안에 쌓인 끝에 비로소 문장으로 흘러나온 것에 가깝다.
 
그의 이력에서 흥미로운 것은 직함의 화려함만이 아니다. 라오스 기업의 부회장으로 일했던 그는 귀국 후 고향 전주에서 직접 라오스 미술품을 전시한 갤러리카페를 운영하기도 했다. 방송 경영에서도 JTV를 일취월장 성장시켜 전국적으로 주목 받는 경영 능력을 보여줬다. 언론인은 세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사람이고, 경영인은 현실 속에서 선택하고 결과를 책임지는 사람이다. 한명규는 평생 두 역할을 동시에 경험했다. 그러니 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한 시인의 감상을 따라가는 일이라기보다, 신문기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경영인의 손으로 현실을 헤쳐온 한 사람의 내면을 함께 들여다보는 일에 가깝다.
 
시집은 「껍질을 벗기다」, 「잠시 왔다 가는 것들」, 「발 딛고 선 자리에서」, 「다시 쓰는 나」 등 네 부로 구성됐다. 시 95편과 노래 가사 2편이 실렸으며, 저자가 직접 촬영한 사진을 함께 담아 ‘읽는 시집’이면서 ‘보는 시집’으로 꾸몄다. 작곡가 김정호와 함께 만든 「잊으셨나요」와 「회상」은 QR코드를 통해 음악으로도 들을 수 있다. 시와 사진, 노래가 한 권 안에서 어우러지는 형식이다. 그러나 형식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그 안에 담긴 삶의 깊이다.
 
시 발자국에서
시 '발자국'에서
한명규 시인은 머리글에서 “시는 늦게 온 손님 같다”고 썼다. 오래전부터 문밖에 서 있었지만 때가 아니라는 이유로 미뤄두었던 시를 이제야 맞아들였다는 뜻이다. 그는 시를 쓰는 일을 젊은 날의 꿈을 다시 만나는 일이자, 살아온 시간을 어루만지고 미처 전하지 못했던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움을 조용히 건네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이번 시집의 성격이 분명해진다. 이것은 문학적 재능을 새롭게 과시하기 위한 책이라기보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한 사람이 그동안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놓은 책이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삶의 껍질을 한 겹씩 벗겨내는 듯한 절제가 있다. 거창한 수사로 삶을 설명하기보다는 일상의 작은 풍경에서 의미를 길어 올리고, 사람과 시간과 자연을 바라보면서도 쉽게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때로는 날카롭고, 때로는 서정적이며, 그 사이에 위트와 풍자가 스며든다. 무엇보다 소박하고 솔직하면서도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긍정적이다. 가까운 지인이 시집을 읽은 뒤 “날카로운 삶의 통찰을 보여 주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서정적이면서도 절제돼 있으며, 위트와 풍자, 소박하고 솔직하면서도 긍정적인 모습들이 함께 있다”고 한 평가가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급하게 한참을 읽어 내려갔다가 이제는 천천히 아껴 읽겠다는 말도 시집이 주는 여운을 잘 보여준다.
 
허연 시인 역시 발문에서 한명규의 시에 “깨달음과 초월의 미학”이 있다고 평했다. 생의 가치와 아름다움의 근본을 향한 혜안 속에 해학이 녹아 있고, 읽을수록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아포리즘으로 가득한 시집이라는 것이다. 삶을 오래 살아온 사람이 얻는 지혜에는 젊은 날의 지식과는 다른 결이 있다. 무엇이 중요한지 알게 되고, 반대로 한때 그렇게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 세월 앞에서는 얼마나 가벼워지는지도 알게 된다. 한명규의 시에는 바로 그런 시간의 감각이 배어 있다. 삶의 무게를 알고 있지만 그 무게에 짓눌리지는 않는 것, 세상을 날카롭게 바라보면서도 끝내 사람에 대한 따뜻함을 놓지 않는 것이 그의 시가 가진 매력이다.
 
한 지인은 이 시집을 읽고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지난 40여 년 세월을 단숨에 훑고 감동받았다”고 했다. 이 말은 한명규의 시를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그의 시에 특정한 사건이나 경력을 일일이 기록해 놓은 것은 아니지만, 신문기자로 세상을 누비고 편집국장으로 수많은 문장을 다루던 시간, 행정가로 지역의 미래를 고민했던 시간, 라오스에서 기업을 경영하며 낯선 문화와 사람을 만났던 시간, 다시 방송사 경영을 맡아 조직과 현실을 책임졌던 시간이 곳곳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기사로 다 쓰지 못했던 생각과 숫자로만 표현할 수 없었던 경영 리더로서의 감정, 사람을 만나면서 마음에 남았던 수많은 장면들이 이제 시라는 다른 언어를 얻은 것이다.
 
언론인의 문장과 시인의 문장은 다르다. 기자는 사실을 분명하게 전달해야 하지만 시인은 반드시 모든 것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한 문장 뒤에 여백을 남겨 독자가 자기 경험을 가져와 그 의미를 완성하게 한다. 한명규는 평생 문장을 다루어온 사람이다. 기자로서, 편집국장으로서 수많은 사안을 기록하고 문장의 가치를 판단했으며, 방송 경영자로서 말과 영상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힘을 경험했다. 그런 사람이 시인이 되어서는 오히려 말을 아낀다. 많이 본 사람이 가진 절제이고, 많은 사람을 만나본 사람이 갖게 되는 여유일 것이다.
 
시집의 제목인 '사람의 무게는 향으로 잰다'도 그 연장선에서 읽힌다. 사람의 무게를 경력의 숫자로만 잴 수는 없다. 무엇을 이루었는가보다 어떻게 살아왔는가,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랐는가보다 누구의 기억 속에 어떤 사람으로 남았는가가 결국 한 인간의 무게를 결정한다. 향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오래 남는다. 사람도 그렇다. 곁에 있을 때보다 떠난 뒤 더 선명해지는 사람이 있고,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사람의 진면목을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다. 시인이 말하는 ‘향’은 어쩌면 그렇게 살아온 시간 뒤에 남는 사람의 흔적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첫 시집은 경력이 많은 한명규에게 또 하나의 이력이라기보다 지나온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이다. 젊은 날의 성취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일이었다면, 삶의 후반에 찾아온 시는 자기 안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다시 쓰는 나」라는 마지막 부의 제목처럼, 지나온 삶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시간을 끌어안고 새로운 언어로 다시 써보는 것이다. 신문기자였던 시간도, 편집국장이었던 시간도, 정무부지사와 기업 부회장으로 일했던 시간도, 라오스에서 보낸 7년과 고향 전주에서의 시간도, JTV를 경영하며 보낸 시간도 모두 그 안에 있다.
 
한명규
[한명규 JTV 부회장] 
시집 출간을 두고 한 지인이 “인생의 큰 성취”라고 축하한 것도 그래서 의미가 있다. 사회적으로 이미 여러 성취를 이룬 사람에게 첫 시집이 또 하나의 큰 성취가 된다는 것은, 인생 후반으로 갈수록 성공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남에게 무엇인가를 증명하는 일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오래 묻어두었던 것을 꺼내 세상에 건네는 일, 그것이 어쩌면 삶에서 얻을 수 있는 더 깊은 성취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무게는 향으로 잰다'는 그렇게 한 언론인의 늦은 문학적 출발이면서, 한 인간이 살아온 시간에 대한 조용한 결산이다. 사람과 시간, 자연을 바라보는 95편의 시 속에는 세상을 향해 쉼 없이 달려왔던 사람의 흔적과 이제는 잠시 멈춰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의 여유가 함께 들어 있다. 사진과 노래까지 더해진 책의 형식도 결국은 같은 곳을 향한다. 살아온 순간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붙잡아 두려는 마음이다.
 
시가 늦게 찾아온 손님이라면, 그 손님은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한명규의 삶과 함께 걸어왔는지도 모른다. 신문기자로 세상을 바라보던 때에도, 기업인으로 낯선 시장을 헤쳐가던 때에도, 경영자로 조직의 운명을 고민하던 때에도, 시는 그의 안에 조용히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이제야 그 문을 열어 맞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가 건네는 첫 시집의 제목은 말한다. 사람의 진짜 무게는 명함에 새겨진 직함이나 세상에 남은 업적만으로는 잴 수 없다고. 결국 사람에게 남는 것은 그가 살아온 삶의 향기라고.
 
그 향기를 한 권의 책으로 남겼다는 것. 그것이 한명규 시인이 삶의 후반에 얻은 가장 아름다운 성취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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