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숙 이화여자대학교 전자전기공학전공 교수]
두어 달 전 주가지수가 빠르게 오르고 있을 때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주식 이야기가 나왔다. 보유하고 있는 주식이 올라서 기뻐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더 크게 벌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은 아닌가”, 혹은 “나만 이런 상승장에 올라타지 못한 것은 아닌가”라는 불안감을 말하는 친구도 있었고, 투자 여력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주식이나 부동산의 급격한 상승으로 인해 심해질 자산 격차에 대해 우려하는 친구도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사회적 동물’로 규정한 인간은 공동체를 이루어 다른 이들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특성은 문명을 발전시킨 원동력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인간을 끊임없는 비교의 굴레에 놓이게도 했다. 오늘날 그 비교는 디지털 기술을 통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는 실시간으로 타인의 삶을 보여주고, 코인이나 주식은 시시각각 승자와 패자를 가려낸다. 과거에는 직장 동료나 이웃 정도가 비교의 대상이었다면, 이제는 스마트폰 속에 수많은 비교 대상자가 있다.
개인이 자신과 타인을 끊임없이 견주며 평가하는 현상과 그러한 성향이 구조화된 현대 사회를 사회학자들은 '비교 사회(comparison society)'라 부른다. 이런 사회에서는 절대적 성취가 아닌 타인을 통해 자신의 상대적 위치를 가늠하게 되는데, 동질성이 강한 한국 사회는 물질적 자산의 소유 정도가 주요 비교 잣대가 되어 버렸다. 비교 성향이 강할수록 자신이 이미 가진 것이나 객관적 조건과는 무관하게 삶의 만족도와 행복감은 낮아지게 되고, 다른 사람이 누리는 기회와 성공을 나만 놓치고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를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라 부른다.
문제는 FOMO가 개인의 심리적 불안을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여 사회적 연대를 해치고 과시적 소비 경쟁이나 시장 교란 등의 사회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데 있다. 소외되지 않기 위하여 무리하게 유행을 따르는 오픈런이나 명품 구매 등의 과시 문화와 경제적 능력을 초과하는 소비로 나타나기도 하고, 주식이나 코인, 부동산 급등기 시 “지금 아니면 평생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무리한 대출을 통해 ‘묻지마 투자’를 강행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은 자산 거품을 키우고, 청년층의 조기 부채 축적이나 시장 침체 시 대규모 신용 불량자를 양산하는 금융 위험을 초래하기도 한다.
타인의 자산 증식이나 성공 사례를 끊임없이 접하면서 “열심히 일해 버는 근로 소득으로는 격차를 좁힐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하여 성실한 노동의 가치가 평가 절하되고, 사회 전반에 무력감을 남기기도 한다. 더 나아가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수치심이나 상처는 사회를 향한 이유 없는 분노나 혐오 범죄로 표출되기도 하여 공동체의 신뢰가 무너지고 집단 간의 갈등 및 극단주의가 심화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인간은 경제·사회·문화적 자본뿐 아니라 상징자본(symbolic capital)을 축적한다고 말한다. 개인이 가진 다양한 자본이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아 형성된 신뢰, 명예, 명성, 사회적 평판 등을 상징자본이라 부르는데 이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개인의 권위와 영향력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사람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전문성을 쌓고 인격을 수양하며 상징자본을 축적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런데 요즘은 SNS에서의 가시성을 상징자본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화려하게 연출된 일상과 자극적인 콘텐츠가 만들어낸 '좋아요', 조회 수, 팔로워 수를 사회적 명성이나 신뢰를 의미하는 상징자본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 결과 실질적인 성취보다 숫자로 측정되는 관심을 축적하는 데 더 큰 가치를 두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노력하지 않고 얻은 것에 대해 자랑하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을 성찰하기보다 타인의 시선을 관리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쓰며, 남들보다 뒤처진 것처럼 보이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이러한 문화는 특히 청년 세대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SNS에서는 단기간 투자로 큰돈을 벌었다는 사람이 많은 관심을 받고, 한 번의 '인증'으로 화제가 된 사람이 큰 영향력을 얻는다. 자신의 시간과 노력, 실패와 인내를 통해 얻은 성취가 아닌, 우연이나 외부 환경이 만들어준 결과를 자신의 노력으로 이룬 성취인 양 소비하는 문화는 결국 사회 전체의 가치 기준을 왜곡한다.
포모가 일상이 된 시대일수록 타인과 나를 비교하지 말고 내 삶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SNS에서 접하는 수많은 정보와 콘텐츠는 과장되거나 선택적으로 편집된 단면일 뿐임을 인식하고, “지금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에 휩쓸리기보다, 자신이 추구해야 할 삶의 가치와 목표를 스스로 정립하고 꾸준한 노력을 통해 경험과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건강한 사회는 결과보다 과정을 존중한다. 배우고 익히며 실패를 견디는 과정만큼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오롯이 개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가졌는가"가 아닌 "무엇을 견뎌냈고, 무엇을 스스로 쌓아 올렸는가"를 묻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순간적인 관심과 유행은 사라지지만, 실력과 인격을 통해 쌓아온 진정한 상징자본은 오래 지속되는 자산이 된다.
필자 주요 이력
△이화여대 전자전기공학전공 교수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 전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 제50대 대한전자공학회 회장 △IEEE Fel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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