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뷰] 지도자에게 에코체임버가 없다면…

김두일 선임기자
김두일 선임기자

권력은 사람을 바꾸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권력은 사람의 귀를 바꾼다. 권력이 커질수록 듣고 싶은 말은 많아지고, 듣기 싫은 말은 줄어든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지도자는 자신도 모르게 '에코체임버(Echo Chamber)'에 갇힌다. 자신의 생각이 메아리처럼 반복되는 공간이다. 민주주의 시대에 등장한 용어지만, 그 본질은 이미 2000년 전 중국의 정치사상가들이 간파한 문제였다.
 
중국 법가사상의 대표 인물인 한비자는 임금이 가장 경계해야 할 존재는 적국이 아니라 아첨하는 신하라고 했다. 군주는 모든 정보를 직접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신하의 보고에 의존한다. 그런데 보고가 권력자의 기분에만 맞게 가공되는 순간 국정은 현실이 아니라 착각 위에 세워진다. 한비자는 군주가 듣기 좋은 말만 듣기 시작하면 국가는 반드시 쇠퇴한다고 경고했다. 역사는 이를 수없이 증명했다.

당나라 최고의 성군으로 평가받는 당태종에게는 위징이라는 신하가 있었다. 위징은 황제 앞에서도 서슴없이 "폐하, 그것은 잘못된 판단입니다"라고 말한 인물이었다. 때로는 황제가 얼굴을 붉힐 만큼 거침없이 비판했고, 당태종 역시 여러 번 분노했다.

그러나 화가 가라앉으면 그는 항상 위징의 말을 다시 들었다. 위징이 세상을 떠나자 당태종은 이렇게 말했다. "구리로 거울을 삼으면 의관을 바로잡을 수 있고, 역사로 거울을 삼으면 흥망을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자신의 잘못을 알 수 있다. 이제 위징이 죽었으니 나는 거울 하나를 잃었다." 지도자에게 가장 귀한 자산은 충성스러운 사람이 아니라 진실을 말해 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정치에서는 이를 에코체임버라고 부른다. 권력 주변에는 늘 사람이 모인다. 그러나 그 모든 사람이 참모는 아니다. 자리를 원하는 사람, 승진을 원하는 사람, 공천을 기대하는 사람, 사업을 기대하는 사람, 인맥을 넓히려는 사람이 더 많다. 이들은 권력자의 기분을 상하게 할 이유가 없다. 결국 직언은 사라지고 박수만 남는다.

처음에는 작은 변화다. "잘하고 계십니다." "국민들이 좋아합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런 말이 반복되면 지도자는 현실보다 보고서를 믿고, 민심보다 측근을 믿기 시작한다. 그 순간부터 에코체임버는 완성된다.
 
정치는 회의실에서만 하는 일이 아니다. 기자실에서도 정치가 있고, 시장 골목에도 정치가 있으며, 술잔을 기울이는 자리에도 정치가 있다. 오래된 정치인일수록 이런 공간을 소중히 여긴다. 거기에는 정제되지 않은 민심이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때로 정치인의 가장 불편한 거울이다. 정치인은 기자를 통해 자신이 보지 못하는 세상을 본다. 마찬가지로 오랜 친구, 경쟁자, 심지어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도 지도자에게는 필요한 거울이다. 권력이 강해질수록 지도자는 더 많은 거울을 가져야 한다.
 
세계 정치도 다르지 않았다. 1961년 미국 케네디 행정부는 피그스만 침공이라는 치명적인 실패를 경험했다. 참모 대부분이 대통령의 생각에 동조했고, 반대 의견은 제대로 제기되지 않았다. 이후 케네디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회의 방식을 바꾸었다. 쿠바 미사일 위기 때는 의도적으로 반대 의견을 듣고 토론을 거듭했다. 그 결과 세계는 핵전쟁의 문턱에서 한 걸음 물러설 수 있었다.
 
반대 의견은 권력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권력을 오래가게 한다. 민주주의에서도 마찬가지다.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해서 민심을 모두 얻은 것은 아니다. 높은 지지율도 영원하지 않다. 정치는 끊임없이 변하는 민심을 읽는 과정이다. 어제의 지지자가 오늘도 같은 선택을 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지도자는 늘 자신의 발밑을 살펴야 한다. 정치인은 하늘을 바라보며 비전을 말해야 하지만, 동시에 발은 땅을 딛고 있어야 한다. 자신의 발바닥이 지금 어디에 닿아 있는지, 국민의 마음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해야 한다. 그 사실을 알려주는 사람이 곁에 없다면 지도자는 이미 현실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세계를 살고 있는 것이다.
 
권력의 몰락은 적이 강해서 시작되는 경우보다, 자신의 귀가 닫히는 순간 시작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지도자는 예스맨보다 직언하는 사람을 더 가까이해야 한다. 국민은 완벽한 지도자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가장 먼저 들을 줄 아는 지도자다. 에코체임버를 깨는 용기. 그것이 지도자의 마지막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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