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히지 않는 책을 만들라는 명령이라는 생각도 들었죠."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4일 서울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한길그레이트북스 200권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 대표는 "한길그레이트북스는 느리게 만들고, 느리게 읽는 책"이라며 "변함없이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주는 책이라고 믿고 출간해왔다"고 밝혔다.
1976년 설립된 한길사는 '한 권의 책이 한 인간과 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신념 아래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힘썼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김 대표는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사상이 무엇인가"를 고민했고, 1996년 장기 기획 시리즈 한길그레이트북스를 시작했다.
한길그레이트북스는 동서고금의 고전과 명저를 원전으로 번역하고 충실한 해설을 붙인 총서다. 화이트헤드의 <관념의 모험>을 시작으로, <일상적인 것의 변용>,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인간의 조건>, <슬픈 열대>, <야생의 사고>, <삼국사기> 등 굵직한 고전을 잇달아 출간했다. 번역에는 짧게는 3~4년, 길게는 10년 이상이 걸렸다.
한 권 한 권 공을 들인 끝에, 지난달 <인류세 시대의 자본주의>를 출간하며 시리즈는 200권을 돌파했다. 첫 권 출간 이후 30년 만에 이룬 성과다. 그동안 총 100만부가 발행됐다.
김 대표는 "어느새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며 "200권은 한 출판사의 역량이라기보다 우리 국가 사회 전체의 역량"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길사의 꾸준한 노력, 번역자들의 헌신, 고전을 읽고 받아들인 독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일부 책은 시대적 상황과 맞불리며 새롭게 조명받기도 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2016~2017년 촛불집회 당시 '악의 평범성'으로 큰 관심을 모았다. 또 일본어 중역이 일반적이던 시절에도 <봉건사회> 등 주요 고전을 원전에서 직접 번역했다.
다만, 한길그레이트북스의 책 다수는 시장성이 높은 책은 아니다. 김 대표는 "출판사로서는 이러한 책들을 내는 것은 비즈니스 차원에서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며 "그럼에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처럼 오늘의 우리 사회를 관찰하는 데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했기에 시리즈를 이어올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김 대표는 AI 시대를 맞아 인문학과 독서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AI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처럼 이야기들 한다"며 "하지만 AI 시대를 창조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종이책을 읽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AI 시대에는 '질문할 수 있는 사유'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하면서 "(질문하는 힘을 기르는 것은) 독서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독자 대표로 참석한 최명용 씨는 그레이트북스를 통해 "사회 문제를 깊이 있게 바라보는 힘을 기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1996년 <관념의 모험>을 시작으로 200권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사유의 여정은 감동이었다"며 "동서를 넘나드는 사유의 편린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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