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늘 위험의 언저리에 서 있지만 한국 자본시장은 마치 그 위험을 잊은 듯 질주하고 있다. 반도체와 AI, 방산과 원전, 로봇과 K-뷰티까지 한국의 주요 산업은 세계 자본을 빨아들이며 사상 최고 수준의 관심을 받고 있다. 오랫동안 한반도와 남북 관계의 구조적 리스크를 연구해온 사람으로 이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정말 코리아 컨트리 리스크가 줄어든 것인가? 아니면 시장이 다른 방식으로 이를 흡수하고 있는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컨트리 리스크(Country Risk)’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컨트리 리스크’는 원래 국제금융에서 출발한 개념이다. 특정 국가가 투자 대상이 될 때 그 나라 특유의 정치·경제 및 안보 등 요인 때문에 발생하는 위험 프리미엄이 ‘컨트리 리스크’다. 정권 교체의 불확실성이나 외환의 부족, 자본 통제와 전쟁 가능성, 제도적 예측 불가능성 등도 이에 포함된다.
한국의 경우 ‘컨트리 리스크’는 남북 군사적 긴장, 급변 사태 가능성, 동북아의 복잡한 지정학과 자연스럽게 결합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개념은 변형되기 시작했다. 한국 자본시장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코리아 컨트리 리스크’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뒤섞여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기업 지배구조, 낮은 배당 성향, 정책 일관성 부족, 낮은 시장 투명성 등 기업과 금융시장 수준의 밸류에이션 문제를 가리키는 말이다. 국가 차원의 구조적 위험을 의미하는 ‘컨트리 리스크’와는 기본적으로 개념이 다르다. 물론 두 개념은 서로 영향을 주지만 결코 동일한 개념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이 둘이 뒤섞여 “한국은 ‘컨트리 리스크’가 크다”는 단순한 문장으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이 둘을 분명히 구분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래야만 한국이 가진 펀더멘털(기초체력), 기회, 리스크를 균형 있게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듯 한국의 펀더멘털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반도체와 ·AI, 방산과 로봇 등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기술 패권 경쟁의 중심에 서 있다. 교육 수준, 기술력, 제조 경쟁력, 금융 분야의 안정성도 선진국 수준이다. 이런 펀더멘털은 한국이 가진 코리아 오퍼튜니티, 즉 기회의 크기를 결정짓고 있다. 컨트리 리스크가 있는데도 자본이 들어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투자자는 리스크 자체가 아니라 기회 대비 리스크를 보기 때문이다. 투자자는 한국의 첨단산업이 제공하는 기회가 충분하게 크다고 판단하면 일정 수준의 리스크는 감수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한반도 지정학 리스크도 갑자기 생긴 변수로 보지 않는다. 수십 년간 누적된 상수로 본다. 시장도 이를 완전히 제거될 수 없는 배경 리스크로 받아들이고, 그 위에서 기회를 계산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현재의 한국 자본시장에 대한 투자 열기가 컨트리 리스크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리스크의 ‘관리 가능한 상수화’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안심해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닐 것이다. 한국의 산업 경쟁력은 세계 최고지만 그 산업이 갖는 밸류에이션은 결국 국가의 안정성과 함께 정책의 일관성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코리아 컨트리 리스크’를 계속적으로 줄여나가는 정책이 아주 중요하다.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까? 무엇보다도 한반도와 동북아의 지정학적 리스크 감소가 한국 자산의 장기적 밸류에이션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로 작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첫째, 억지력과 대화를 통한 신뢰 구축이 중요하다. 대북 억지력은 강화하되 남북 대화 채널은 상시로 열어두는 투트랙 전략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동시에 위기관리 프로토콜을 정권과 무관하게 유지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외국 투자자가 가장 높게 평가하는 대상이다. 정책의 일관성을 바탕으로 “한국은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나라”라는 신뢰가 쌓이면 극단적 상황에 따른 위기의 프리미엄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다. 완전한 해결이 아니어도 좋다. 긴장을 조절할 수 있는 정치·외교적 레버리지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투자자에게 “전쟁 가능성은 낮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 적대적 관계를 실질적인 평화 관계로 전환해 남북한이 교류와 협력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단순히 ‘흡수통일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만으로는 북한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둘째, 동북아 지역의 다층적 안정망 구축이 절실하다. 미·중·일·러와의 관계를 제로섬이 아니라 다층적 네트워크로 설계해야 한다. 어느 한 축의 변화가 위기로 직결되지 않도록 구조적 완충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특히 남북 관계와 동북아 전략이 정권 교체 때마다 흔들려서는 안 된다. 정책의 일관성은 곧 ‘리스크 프리미엄’을 줄이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미·중 경쟁 속에서도 한국이 흔들리지 않는 외교적 레버리지를 확보하는 한편 중국·러시아와의 실용적 협력 채널 유지 등과 같은 구조적 안전망이 북한 및 한반도 상황의 변화가 곧바로 한국의 ‘컨트리 리스크’로 전이되는 것을 막아줄 것이다.
셋째, 남북 관계와 동북아 전략이 국내 정치 일정에 흔들리지 않는 중장기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북·대중·대일 정책이 급변하면 시장은 이를 불확실성으로 받아들인다. 정책의 일관성이 리스크 프리미엄을 줄이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지금 한국의 산업은 세계가 주목하는 기회의 중심에 서 있다. 그러나 기회가 크다고 해서 리스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산업 호황은 기회가 큰 것이라는 증거이지 리스크가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 한국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한국이 이 기회를 지속 가능한 ‘컨트리 프리미엄’으로 바꾸어야 한다. 기회를 지키기 위해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 그 핵심은 걸맞은 정책을 제때 추진하는 데 있다.
필진 주요 이력
▷독일 브레멘대학 세계경제연구소 연구원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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