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윤 칼럼] 평화적 두 국가 관계의 제도화, 이제 논의할 때다.  

김영윤
김영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최근 100만 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설문조사, 이른바 “평화통일 100만 국민인터뷰”를 시작했다.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통일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민주평통이 자체 조사한 제1분기 통일 여론동향에 따르면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65.9%로, 직전 분기 대비 2.1%포인트 감소했다. 이에 따라 자문위원 1명당 50명 이상 인터뷰를 권장하면서 각 지회는 경쟁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인터뷰’라고는 하나 실제로는 응답자가 설문에 답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질문 내용을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는 점이다. 구체적이지도 않고, 통일 여론을 실질적으로 파악하거나 제고하는 데 적합한지도 의문이기 때문이다. 질문은 다음 세 가지다. 1) 바람직한 남북관계의 모습과 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2) 이재명 정부의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3) 남북관계나 평화통일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나 정부에 바라는 바는 무엇인지? 등이다. 국민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겠다는 취지라고 하지만, 현재의 남북관계를 고려하면 이 설문이 핵심을 짚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100만 명이 각자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수준의 질문일 뿐, 정책적 방향을 도출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북한은 이미 남한을 ‘별도의 국가’로 규정하며 사회주의 헌법을 통해 두 국가 체제를 공식화했다. 남한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면서도 대화와 협력은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반면, 한국 정부는 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강조하며 이를 계승하겠다고 하지만, 법적으로는 기존의 남한식 통일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흡수통일을 배제한다고 반복해 왔지만 이를 제도적으로 명확히 한 적은 없다. 이러한 비대칭성은 남북 간 불신의 근원이 되고 있으며, 모든 정책이 ‘통일’로 수렴되는 구조 자체 또한 대화의 문을 좁히는 요인이 되고 있다.

북한이 남한을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며 대화를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해 남한의 압도적 우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남한의 국민소득은 북한의 약 50배 이상이며, 1인당 소득 격차도 20~30배에 달한다. 기술력에서도 남한은 세계적 수준이며, 군사력 역시 2024년 이후 3년 연속 세계 5위를 유지(글로벌파이어파워 2026)하고 있다. 한국은 명실공히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다음의 군사 강국이다. 북한은 31위다. 여기에 K-컬처의 세계적 영향력까지 더해지면서 한국은 경제·군사·사회·문화 전반에서 북한이 따라잡기 불가능한 국가가 되었다. 이러한 격차가 북한에게는 체제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북한은 핵무력 강화와 러시아·중국과의 밀착을 통해 체제 유지에 집중하고 있다.
 
현 남북관계에서 가장 먼저 인식해야 할 점은, 과거의 방식으로 남북관계를 복원할 수 있다는 기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남북대화, 정상회담, 공동성명, 교류·협력의 틀이 언젠가 다시 작동할 것이라는 전제 자체가 현실과 맞지 않는다. 현 정부가 제시한 ‘북한 체제 존중, 흡수통일 불추구, 적대행위 불추진’의 3대 원칙도 북한은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유럽 순방에서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밝힌 발언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은 G7 회의에서 북한의 러시아와의 군사협력과 핵무기 보유를 비판하면서도, 유럽 각국과의 대화에서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 의지를 강조했다. 북한은 이를 ‘위장 평화’라고 반발했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남북관계의 본질적 문제를 드러낸 것이다. 한국이 아무리 평화를 강조해도 북한은 남한의 헌법과 제도를 근거로 “흡수통일 위험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결국 남북관계의 교착은 군사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제도적 신뢰의 문제다. 대통령의 발언이 실질성을 갖기 위해서는 남북 간 상호 인정의 제도화를 향한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
 
과거의 틀을 반복해서는 남북관계가 진전되기 어렵다. 새로운 현실에 맞는 새로운 화두를 던질 때 비로소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의 길이 열릴 것이다. 이를 위한 첫 과제는 새로운 남북관계 조성을 위한 국민적 동의를 확보하는 일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적대적 두 국가 관계’에 대응해, 한국이 ‘평화적 두 국가 관계’의 실체를 제도적으로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여느 나라처럼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방문할 수 있는 관계, 북녘을 통해 중국·러시아로 이어지는 유라시아 인적·물적 이동이 가능한 관계를 만들기 위한 기반을 먼저 조성해야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해야 할 물음은 무엇일까? 민주평통은 최소한 다음과 같은 형태의 설문을 해야 할 것이다. “북한은 남한에 대해 두 국가 관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은 어떤 방식으로 대응해야 할까요?”라고 전제한 다음, 이의 수용 여부와 방법, 추진과제를 열거해서 100만 국민이 선택하거나, 아이디어를 보완·제시 가능한 방안을 찾아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여기에 다음과 같은 질문은 병행하면 어떨까? 1) 남북관계를 평화적 공존 단계로 전환하는 데 우리의 법·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2) 흡수통일 배제하는 두 국가로의 제도화에 동의하십니까? 3) 두 국가 현실을 법·제도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와 경제에 바람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등이다. 이처럼 현실을 반영한 질문을 통해 국민적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추상적 평화 담론을 반복하며 정부 정책에 대한 호응을 유도하는 방식의 ‘100만 국민인터뷰’라면 전시성 행사에 그칠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설문을 새롭게 구성해 추진할 것을 강력히 제안한다.

필진 주요 이력
▷독일 브레멘대학 세계경제연구소 연구원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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