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기본·원칙·상식] 참사 겪고도 또 불탄 쿠팡 물류센터, '땜질 대책'으론 안전 못 지킨다

19일 오전 인천 서해구 석남동 쿠팡 물류센터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다사진연합뉴스
19일 오전 인천 서해구 석남동 쿠팡 물류센터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잊을 만하면 터진다. 이번엔 인천 서해구 석남동에 위치한 쿠팡 물류센터다. 거대한 건물의 일부 구조물이 붕괴할 위험성까지 제기되면서 관할 지자체의 주민 대피령이 내려지고, 인근 초등학교와 어린이집이 휴업·휴원에 들어가는 소동마저 벌어졌다. 지난 18일 오전 발생한 대형 화재로 20일 현재까지 사흘째 주불 진화 및 잔불 정리 작업이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다.

인근 지역 주민들은 며칠째 사방으로 번지는 유독가스와 검은 연기로 심각한 고통을 받았고, 내부 작업자들과 소방대원들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여야 했다. 화재 초기 현장 작업자들의 신속한 대피로 다행히 직접적인 인명 피해는 면했으나, 이번 화재로 인한 막대한 물류 차질과 경제적 손실을 떠나 초대형 물류시설의 안전망이 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던지는 충격과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우리를 더욱 분노케 하는 것은 이번 사태가 결코 ‘예견되지 않은 불운’이 아니라는 점이다. 불과 몇 년 전인 2021년 6월, 경기 이천의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로 소방관이 안타깝게 순직하고 건물이 완파되는 참담한 비극을 겪었다. 당시 쿠팡과 정부는 “철저한 안전관리”와 “혁신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일제히 약속했지만,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판박이 참사가 되풀이됐다. 말뿐인 호언장담과 형식적인 점검이 결국 껍데기에 불과했음이 천하에 드러난 셈이다. 참사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고 같은 과오를 반복하는 것은 기업의 안전불감증이 낳은 예고된 비극이자 명백한 인재(人災)다.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우리 사회는 늘 비슷한 패턴을 답습해 왔다. 초반에는 요란스러운 현장 조사와 소방 특별점검이 이어지고 대책들이 쏟아지지만, 여론의 관심이 식으면 관련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방치되기 일쑤였다. 산업 현장에서 비용 절감과 경영 효율성이라는 논리에 밀려 안전 가이드라인이 형식적인 수순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소방 설비 작동 여부와 초동 대응의 부실함 등 이번 화재에서 드러난 의구심 역시 지난 이천 참사 때 지적된 문제점들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소 잃고도 외양간을 제대로 고치지 않는 ‘땜질식 처방’과 '소나기 피하기식 대응'이 산업 현장의 대형 참사를 끊임없이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근본적인 체질부터 바꿔야 한다. 수사당국은 화재 원인 규명은 물론 소방 시설 작동 여부와 평소의 안전관리 실태를 한 치의 의혹도 없이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안전기준 위반이나 예산 절감을 이유로 안전관리를 후순위로 미룬 정황이 적발된다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법이 허용하는 최대의 엄벌을 내려야 한다. 안전 소홀로 얻는 이익보다 사고 시 부담할 사회적·경제적 비용과 책임이 훨씬 크다는 점을 확실히 각인시켜야만 현장의 안전불감증이 사라질 것이다.

글로벌 첨단 기업이라 할지라도 작업자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면 그것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정교한 물류 네트워크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을 지켜낼 견고한 안전망이다. 정부 역시 일회성 점검을 넘어 샌드위치 패널 구조 개선과 대형 물류시설에 특화된 소방 기준 수립 등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차원 높은 안전체계를 즉각 구축해야 한다.

안전은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최고의 가치이며, 사후약방문식 대책으로는 소중한 생명과 사회적 자산을 지킬 수 없다. 이번 화재를 마비된 안전 감각을 깨우는 마지막 경종으로 삼아야 한다. 더 이상의 비극적 되풀이를 막기 위해 정부와 기업, 우리 사회 모두가 비장한 각오로 근본적인 안전 패러다임 전환에 나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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