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과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일제히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보다 0.7%포인트 높인 2.6%로 상향 조정했다. 주요 30개국 중 가장 큰 폭의 긍정적 지표다. 2023년 이후 3년 만에 미국의 성장률(2.3%)을 다시 앞지르게 된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왔다.
5월까지 누적 경상수지 흑자 역시 1412억 달러를 기록하며, 이미 역대 최대였던 지난해 연간 기록을 단 5개월 만에 훌쩍 뛰어넘은 점도 고무적이다.
이 모든 반전의 중심에는 ‘반도체’가 있다. 단일 산업의 수출 호황이 국가 성장률마저 끌어올리며 한국 경제의 구원투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 강국의 지위는 우연히 얻어진 것이 아니다. 1980년대, 주변의 만류와 회의적인 시각 속에서 그룹의 명운을 걸고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했던 삼성전자의 결단이 있었다. 기술적 한계, 막대한 자본의 압박 속에서도 ‘초격차’를 이뤄낸 끈기가 지금의 글로벌 1위를 만들었다.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 숱한 우여곡절 속에서도 치열한 구조조정과 파산 위기를 넘기고 묵묵히 버텨내며 인공지능(AI) 시대를 주도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의 선도 기업으로 거듭난 SK하이닉스가 쌓아 올린 역사도 빼놓을 수 없다.
당장의 이익이 보이지 않을때도 이들은 묵묵히 수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감행했다. 임직원들 역시 반도체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것이라는 믿음 아래 헌신했다.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했던 분야에 과감히 뛰어들어 세계 표준을 만들어낸 과거의 도전이 오늘날 2.6%라는 성장률을 견인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의 반도체 호황 이면에는 AI라는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이 자리 잡고 있다. IMF 역시 이번 보고서에서 AI 투자가 생산성을 높이고 있지만, 그 기대가 꺾일 경우 언제든 경제 전반과 금융 시장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도체 사이클이 꺾이거나, 글로벌 패권 경쟁 속에서 우리의 독점적 지위가 흔들린다면 한국 경제 전체가 걷잡을 수 없는 위기에 빠질 수 있는 ‘원 포인트 경제’의 위험은 더 커졌다.
AI 시대를 맞아 ‘제2, 제3의 반도체’를 고민하고 발굴해야 할 때다. 과거 우리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메모리 반도체에서 신화를 썼듯, 이제는 시스템 반도체, 바이오헬스, 미래 모빌리티, 차세대 원전, 우주항공 등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신산업 분야에서 새로운 씨앗을 뿌려야만 한다.
세계 각국이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미래 먹거리 선점에 사활을 걸고 있는 지금, 기존의 성공 방정식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생존할 수 없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학계가 삼위일체가 돼 파괴적 혁신에 나서야 한다. 촘촘히 얽힌 거미줄 규제를 과감히 걷어내고, 파격적인 세제 지원과 핵심 인재 양성으로 기업의 도전을 뒷받침해야 한다. 기업과 학계는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10년, 20년 뒤의 대한민국을 내다보는 긴 호흡의 국가적 전략과 비전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
눈부신 경제 성과를 이끈 반도체 산업의 저력에 찬사를 보내지만 동시에 위기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된다. 선대들이 척박한 황무지에서 반도체라는 옥토를 일궈냈듯, 다가올 미래 세대가 넉넉히 수확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적 기둥을 세워야 할 의무가 있다. 제2, 제3의 반도체를 향한 절박하고 치열한 탐구와 도전만이 대한민국 경제의 지속 가능한 내일을 보장할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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