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이슈|중동 전쟁 2라운드 ③] '숨은 승리자' 중국, 이란 재건까지 노린다

  • 中, 이란 전쟁의 사실상 승리자 평가

  • 中, 중동 내 영향력 확대…이란 재건까지 주도 가능성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미국과 이란이 치고 받는 동안 조용히 움직인 나라가 있었다. 바로 중국이다.

지난 16일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외교부장 겸임)은 이샤크 다르 파키스탄 부총리 겸 외무장관과 전화 통화를 갖고, 파키스탄이 미국과 이란의 1단계 양해각서(MOU) 체결을 이끈 것을 공식 축하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중국은 자기 방식으로 이란과 미국을 각각 설득했다." 외교적 수사처럼 들릴 수 있지만, 중국이 이번 종전 협상의 '숨은 중재자'였음을 처음으로 공개 확인한 발언이다.

전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빌 에멋은 최근 기고문에서 이번 전쟁의 최대 패자는 미국과 이스라엘이며, 이란은 "다른 쪽보다 덜 나쁘게 졌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이 모든 구도에서 가장 조용히, 가장 실질적으로 이득을 챙긴 나라는 중국이라고 분석했다. 평화가 오든 오지 않든, 중동은 이제 중국 쪽으로 더 기울 것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시진핑의 다자 구도 구상

중국의 움직임은 이미 전쟁 초기부터 시작됐다. 이란 전쟁 발발 약 한 달 반이 지난 4월 중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을 방문한 칼리드 빈 모하메드 알 나얀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왕세자에게 4개 항목으로 구성된 중동 평화 및 안정 구상을 제시했다. 구상의 내용은 ▲평화공존 원칙 수호 및 지역 안보 강화 ▲국가 주권 원칙 수호 및 내정 간섭 거부 ▲국제법 원칙과 국제 관계의 기본 규범 준수 및 유엔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 체제 지지 ▲개발과 안보에 대한 총체적 접근 방식을 통해 지속적 평화 및 안정 방안 모색 등이다.

이는 시 주석이 2020년대 들어 주창하는 4대 글로벌 이니셔티브 중 하나인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GSI)의 일환이다. 표면적으로는 보편적 평화 원칙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날카로운 전략적 함의가 담겨 있다. '내정 간섭 거부'는 미국의 이란 제재와 군사 개입을 겨냥한 표현이고, '유엔 중심 국제 체제 지지'는 미국이 주도하는 일방주의적 행동에 대한 견제다. 사실상 트럼프 행정부를 향해 다자주의적 외교 해법을 정면으로 제시한 것이다.

왕 주임 역시 이 연장선에서 "국제 사회는 이란과 미국의 협상에 더 많은 지원을 제공해야 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 다자 기구 역시 더 큰 역할을 발휘해야 한다"며 "대화와 협상을 통해 지역의 모든 국가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평화 안보 프레임을 모색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독점해온 중동 안보 설계판에 중국이 공식적으로 자리를 요구한 셈이다.

미국의 퇴조, 중국의 부상

미국은 이란 전쟁을 통해 뼈아픈 타격을 입었다. 당초 목표로 했던 이란 핵 능력 무력화와 이란 정권 교체는 사실상 달성하지 못했고, 오히려 이란에게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막강한 카드가 있다는 것만 확인시켜 줬다. 또한 막대한 전비를 지출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 사회에서의 위신은 추락할 대로 추락했다.

반면 중국은 이 전쟁에서 에너지와 외교,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중국은 이미 러시아산 원유를 대거 수입하며 중동 원유 수입 비중이 낮은데다, 재생 에너지 비중까지 높은 덕분에 이란 전쟁 중 원유 가격 급등기에도 타격이 적었다. 아울러 외교전에서 잇따른 실책을 범한 미국과는 달리 중국은 중재자로서의 외교적 위상을 높였다. 이란의 최대 원유 구매국이자 최대 교역국으로서 이란에 대한 실질적 레버리지를 보유한 중국은, 미국과도 직접 고위급 채널을 유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다.

중국의 중동 외교 계보도 주목할 만하다. 2023년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국교 정상화를 중재한 것이 첫 번째 이정표였고, 2024년 팔레스타인 정파 화해를 위한 베이징 선언을 이끌어낸 것이 두 번째였다. 그리고 이번 미-이란 전쟁 중에서의 역할이 세 번째다. 왕 주임이 "처음부터 파키스탄을 지지하면서 각국을 향해 파키스탄이 신뢰할 수 있는 중재자라고 강조했다"고 밝힌 것도 이 맥락이다. 파키스탄의 미국-이란 중재 성공 뒤에는 중국의 국제적 지지 조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란 재건

장기적으로 가장 주목할 변수는 이란 재건이다. 종전 양해각서(MOU)는 이란 경제를 국제 사회에 재통합한다는 방향성을 담고 있으며, 3000억 달러 규모의 재건 기금도 언급됐다. 현실화 여부는 미지수이지만, 제재가 실질적으로 해제된다면 이란은 풍부한 원유와 함께 산업 현대화 수요를 갖춘 매력적인 투자처로 부상하게 된다.

그리고 이란과 중국의 밀접한 관계와 기술력 및 자본력까지 감안할 때 재건 사업 참여 기업은 중국 기업들이 가장 유력하다고 에멋 전 편집장은 분석했다. 중국이 이란 재건을 주도한다면 양국의 경제적 연결고리는 한층 깊어지고, 중국은 자연스럽게 이란의 핵 프로그램 재개 여부를 감시하는 사실상의 중재자 역할까지 맡을 수 있다. 미국이 군사력으로 이란을 압박해온 방식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다.

왕 주임도 이 대목을 짚고 있다. "되돌아가서는 안 되고 다시 무력을 행사해서는 더욱 안 된다"는 그의 발언은 미국식 강압 외교에 대한 우회적 비판이자, 경제적 상호의존을 평화의 기반으로 삼는 중국식 접근법의 선언이기도 하다.

중동은 서방을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지만, 이제 해마다 점점 더 중국을 바라볼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의 군사적 존재감은 여전히 크지만 그 정치적 신뢰도와 외교적 영향력은 이번 전쟁을 계기로 뚜렷하게 약화됐다. 반면 중국은 전쟁을 직접 치르지 않고도 중동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외부 행위자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물론 한계도 있다. 미국은 여전히 중동에서 압도적인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고, 이스라엘은 중국 주도의 안보 프레임에 편입될 의사가 없다. 걸프 국가들도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전략적 자율성을 추구하는 방향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중동 외교의 판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유일한 중재자이던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다.

결국 미래의 열쇠는 MOU 문서 자체가 아니라 이스라엘과 이란이 앞으로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행동을 가장 조용히, 가장 효과적으로 관리할 위치에 서 있는 나라는 이제 미국이 아닌 중국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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