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사' 김재중 "박수무당 役, '고정관념' 버리는 게 숙제였죠"

신사 주연 배우 김재중 사진라이브러리컴퍼니
'신사' 주연 배우 김재중 [사진=라이브러리컴퍼니]
배우 김재중이 14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2012년 '자칼이 온다' 이후 선택한 작품은 한일 합작 오컬트 호러 영화 '신사: 악귀의 속삭임'이다. 무대 위에서는 화려한 퍼포먼스와 강한 존재감으로 익숙한 김재중이지만 스크린 속에서는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감췄다. 표정과 목소리, 감정의 발산을 눌러가며 과거의 상처와 비밀을 품은 박수무당 명진을 완성했다.

'신사: 악귀의 속삭임'은 일본 고베의 폐신사로 답사를 떠난 대학생 3명이 사라진 뒤 박수무당 명진이 사건을 파헤치며 기이한 악귀와 맞서는 이야기다. '658km, 요코의 여행' '#맨홀'의 구마키리 가즈요시 감독이 연출을 맡아 일본 특유의 음산한 공포와 한국 샤머니즘을 결합했다. 앞서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특별 섹션 '매드 맥스'에 초청되며 장르 팬들의 관심을 모았다.

"배우라는 직업도 너무 오랜만이었고 심지어 영화였어요. 늘 낯섦과 두려움,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도전하지 못한 것도 있었죠. 연기할 때 느끼는 즐거움이 굉장히 크다는 걸 알고 있지만 많은 분이 큰돈과 시간을 들여 만드는 작품에 '잠깐 시간이 났으니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접하는 호러 오컬트 장르와 구마키리 감독의 참여는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한국어로 번역된 시나리오를 읽으면서는 일본어와 한국어 사이의 미묘한 표현 차이가 영상에서 어떻게 구현될지도 궁금했다.

"호러나 오컬트 장르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면을 보여주고 연기해볼 수 있다는 점이 호기심을 자극했어요. 구마키리 감독님이 참여하신다고 했을 때도 기대가 컸고요. 저는 텍스트로 먼저 봤기 때문에 이것을 어떤 영상으로 표현하실지 궁금했어요. 같은 말이어도 일본 특유의 표현 방식이 있잖아요. 저는 한국어로 읽지만 감독님은 다르게 받아들이실 수도 있으니 표현과 해석의 차이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신사 주연 배우 김재중 사진라이브러리컴퍼니
'신사' 주연 배우 김재중 [사진=라이브러리컴퍼니]

명진은 시나리오가 수정되는 과정에서 성격이 크게 달라진 인물이다. 첫 대본 속 명진은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말하고 즐거우면 웃을 수 있는 평범한 청년에 가까웠다. 그러나 영화의 분위기와 미스터리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말과 감정을 모두 억누르는 인물로 변했다.

"처음에는 조금 혼란스러웠어요. 첫 대본의 명진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은, 잘 차려진 밥상 같은 캐릭터였어요. 극단적으로 외롭고 고독한 사람이 아니라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하고 즐거우면 즐겁다고 할 수 있었죠. 그런데 점점 아주 어둡고 무거운 짐을 가진 인물로 바뀌었어요. 계속 의문을 유발해야 하는 캐릭터가 되면서 말수도 적어졌고 대사도 많이 줄었습니다."

감정을 발산하기보다 묵묵히 극을 끌고 가야 한다는 점은 김재중에게도 쉽지 않은 과제였다. 인물의 과거와 감정을 알고 있는 배우와 아무런 정보 없이 영화를 따라가는 관객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좁힐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정말 힘들었어요. 영화 전체의 흐름에서 명진이 어떤 태도로 끌고 가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고 감독님께서 판단하신 것 같아요. 명진의 표현을 전부 누른 상태였죠. 영화 안에 많은 것을 숨기고 장치처럼 만들고 싶어 하셨던 것 같아요. 저는 모든 이야기를 알고 있으니까 '이렇게 연기하면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컸습니다."

구마키리 감독은 촬영 초반부터 명진의 과거를 모두 알려주지 않았다. 배우가 정보를 미리 알고 연기할 경우 드러내지 않아야 할 감정까지 표정과 목소리에 묻어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재중은 더 표현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감독이 요구한 미스터리를 유지해야 했다.

"감독님께서 초반에는 많은 걸 설명해주지 않으셨어요. 중후반부에 알려주신 이야기도 많았죠. 명진이 영화 안에서 궁금한 인물로 남아야 하는데 제가 모든 걸 알면 초반부터 드러내지 않아야 할 감정까지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감독님께서는 계속 누르려고 하셨어요. '여기서 표정을 더 쓰면 안 된다' '목소리와 발성을 더 쓰면 안 된다'고 하셨죠. 저는 명진도 사람인데 왜 표현하면 안 될까 싶어서 답답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신사 주연 배우 김재중 사진라이브러리컴퍼니
'신사' 주연 배우 김재중 [사진=라이브러리컴퍼니]

일본인 감독과 한국 배우들이 한국어 대사를 완성하는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고민이 필요했다. 감독은 배우가 불편하게 느끼는 표현을 자유롭게 바꾸도록 했지만 배우 개인에게 자연스러운 말과 제삼자가 듣기에 자연스러운 말이 반드시 같지는 않았다.

"감독님께서는 한국어 대사를 많이 분석하고 숙지하고 계셨어요. 표현이 불편하면 편하게 바꿔보자고 하셔서 자유로운 편이었죠. 그런데 배우에게 자연스러운 말이 제삼자가 들을 때도 자연스러운지는 또 다른 문제잖아요. 한국 스태프분들도 계셨지만 대본을 쓴 분이 어투와 뉘앙스를 아주 세세하게 잡기는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배우들도 많이 고민하면서 수정해나갔습니다."

김재중이 연기한 명진은 한국 관객에게 익숙한 박수무당의 모습과도 거리가 있다. 한국 샤머니즘의 고증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여러 종교와 문화의 상상력을 한데 끌어온 판타지 속 인물이다. 김재중은 기존에 알고 있던 무당의 모습을 내려놓는 것부터 시작했다.

"고정관념을 버리는 게 숙제였어요. 우리는 무당이라면 이래야 한다는 익숙한 이미지가 있지만 일본인 감독님에게 무당은 조금 더 판타지적인 존재였던 것 같아요. '다른 걸 하면 안 되나'라는 시선이었던 거죠. 반드시 고증에 맞춰 고착된 캐릭터로 만들 필요는 없다고 보셨어요. 다른 국가와 종교에서 온 악귀를 무당의 신력으로 물리친다는 설정부터 판타지이기 때문에 상상력을 열어두신 것 같아요."

그는 명진을 특정 의식에 능한 무당이 아니라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히어로'로 이해했다. 익숙한 방울과 주문도 전통적인 방식 대신 작품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새로운 동작으로 구현해야 했다.

"저희 영화는 어떻게 보면 히어로물이에요. 이것저것 다 하는 녀석이 명진이죠. 무당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느냐를 따지기보다 정말 뭐든 다 할 수 있는 사람으로 기본값을 정하고 가야 했어요. 제가 알고 봐왔던 무당의 행동이 있는데 그걸 하지 못하는 게 힘들었죠. 감독님께서는 방울을 '콘스탄틴'의 십자가처럼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방울에 기합과 주문을 넣으면 신비한 힘이 생기는 판타지를 구현하려고 하신 거죠."

일본의 낡은 터널과 폐쇄된 공간은 영화의 공포를 만드는 미장센인 동시에 배우의 몰입을 돕는 장치가 됐다. 화면 밖에서도 흙먼지가 날리고 출입이 쉽지 않은 장소였지만, 현장이 주는 압도적인 분위기 덕분에 인물과 상황에 집중할 수 있었다.

"미장센은 정말 좋았어요. 현장에 직접 갔을 때 압도되는 분위기와 기운이 있어서 '공포영화를 찍으라고 대놓고 이런 곳에 데려왔구나' 싶었죠. 대본에서는 깊고 어두운 터널이라고만 상상했는데 태어나서 본 적 없는 공간이었어요. 상상하지 못했던 장소들을 직접 목격하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들어갔다 나오는 길이 험해서 배우들이 계속 현장에 붙어 있었는데, 그런 장소였기 때문에 모두 집중력 있게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신사 주연 배우 김재중 사진라이브러리컴퍼니
'신사' 주연 배우 김재중 [사진=라이브러리컴퍼니]

14년 만에 다시 경험한 연기의 즐거움은 여전했다. 쓰인 문장을 몸과 목소리로 바꾸고, 존재하지 않던 인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부담스러우면서도 그에게 큰 쾌감을 안겼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잖아요. 쓰여 있는 것을 연기로 승화시켜 표현해나가는 과정은 굉장히 부담스럽죠. 그런데 무언가에 집중하고 고민하는 과정만큼 큰 쾌락을 안겨주는 일이 또 있을까 싶어요."

가수와 배우, 예능인에 이어 소속사 대표로도 활동 중인 김재중에게 새로운 도전은 선택이라기보다 자신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방식에 가깝다. 어느 하나의 분야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익숙해진 순간 다시 어려운 일을 찾아 나선다.

"저는 어느 한 카테고리에만 속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고, 하고 싶은 걸 하지 않으면 병에 걸리는 병이 있어요. 나중에 너무 후회할 것 같거든요. 그런데 또 너무 잘하고 싶어요. 제가 가장 싫어하는 건 제 마음이 하나에 안주하는 순간이에요. '어차피 잘하잖아. 원래 했던 일이니까 쉽게 할 수 있잖아'라고 생각하는 순간 노력을 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저 자신에게 '이건 힘든 일이야'라는 독을 주고 싶어요. 연기도 같은 맥락인 것 같습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