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멋진 신세계'의 회차가 거듭될수록 시청자들은 충격에 빠졌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차세계의 대사 때문이었다. 자기애로 가득한 직설과 능글맞은 표현이 쉴 새 없이 쏟아졌지만, 허남준을 거치면 완벽히 '차세계화'되곤 했다. "텍스트만 보고 배우들의 연기력에 새삼 감탄했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고, 대사 하나하나가 온라인에서 다시 회자됐다. 자칫 과하거나 느끼하게 들릴 수 있는 표현도 제 방식대로 소화하며 웃음과 설렘을 끌어냈다. 거침없는 매력의 차세계를 시청자들에게 납득시키는 데는 배우 허남준의 공이 컸다.
"걱정이 됐죠. 잘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로맨틱 코미디는 오히려 연기할 때 더 섬세해야 할 것 같았거든요.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자극적인 지점이 있는 게 아니니까 고민이 많았어요. 초반에는 질문도 많이 했고요. 같은 글을 읽더라도 각자 상상하는 게 다르기 때문에 초중반까지는 감독님과 계속 맞춰갔던 것 같아요."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부터 차세계의 화법은 평범하지 않았다. 자기애가 넘치는 직설적인 표현과 능글맞은 농담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허남준 역시 잠시 한숨이 나올 만큼 쉽지 않은 대사라고 느꼈지만 곧 이를 재미있게 구현해보고 싶다는 도전 의식이 생겼다.
차세계의 능글맞은 말투가 아주 낯설지만은 않았다. 허남준은 평소 주변 사람들의 대화 방식과 자신이 매력을 느꼈던 말투를 떠올리며 인물에게 다가갔다.
"친구들을 만나면 저마다 쓰는 말투가 있잖아요. 정제되고 여유롭게 말하는 친구도 있고, 능글맞게 농담하는 친구도 있어요. 저는 그런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매력적이라고 느꼈고, 그 말투에 동기화된 적도 많았어요. 그래서 차세계의 능글거리는 말투를 쓰는 데 큰 거부감은 없었습니다. 그동안 보고 배운 말투들이 도움이 됐어요."
끝까지 풀리지 않았던 고민은 '로맨스 남자 주인공이 이렇게 직설적이어도 되는가'였다. 높은 자기애를 드러내는 발언을 어느 정도의 수위와 말투로 표현할지를 두고 고심했다. 허남준은 차세계의 과감한 대사가 후반부까지 힘을 얻을 수 있었던 배경으로 작가의 설계를 꼽았다.
"자기애가 높은 발언부터 시작해서 이런 대사를 어느 정도의 말투와 수위로 해야 할지 고민했어요. 로맨스 남자 주인공이 너무 직설적인 건 아닐까 싶기도 했고요. 그래도 작가님께서 촘촘하게 설계해놓으셨기 때문에 뒤로 갈수록 더 과감한 대사도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야기가 깊어질 것 같으면 산뜻해지고, 한쪽으로 막힐 것 같으면 다시 시원하게 풀렸어요. 서리와 김두한을 비롯한 인물들의 대사와 장면을 보면서 어려운 만큼 잘 구현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반에는 차세계의 감정과 행동을 이성적으로 분석하며 접근했다. 대본을 반복해 읽으면서 자신이 장면 안에서 해야 할 역할을 찾았고, 현장에서는 감독에게 자신의 방향이 맞는지 계속 확인했다. 그러나 촬영이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반응하는 순간이 늘어났다.
"대본을 볼 때는 최대한 본능보다 이성적으로 보려고 해요. 하나의 감정에 빠지면 그쪽으로 치우쳐서 볼 수밖에 없으니까요. 처음에는 제 역할을 읽고, 제가 해줘야 할 지점이 무엇인지 생각했어요. 촬영장에서도 '여기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리를 쓰고 감독님께 '이런 결이 맞을까요'라고 물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경우가 생기더라고요. 몰입감이 생기면서 차세계를 믿고 따라온 것 같아요."
배우의 고민은 작품의 성과로 돌아왔다. 지난 20일 방송된 '멋진 신세계' 최종회는 전국과 수도권 시청률 모두 11.8%를 기록했다. 순간 최고 시청률은 14.1%까지 치솟으며 자체 최고 기록을 경신했고, 동시간대와 토요일 미니시리즈, 주간 미니시리즈 시청률 1위로 종영했다.
"작품이 잘돼서 기분 좋게 지내고 있어요. 저도 방송을 재미있게 봤고, 시청자분들이 관심을 많이 가져주셔서 좋았어요. 차기작이 바로 정해져 있어서 어디를 다니지는 못하고 있는데 촬영장에서도 저를 알아봐 주시는 분들의 비중이 높아진 것 같아요. 주변에서 연락이 오는 걸 보면서도 작품의 인기를 느끼고 있습니다."
완성된 방송을 보며 허남준 스스로 감탄한 장면도 있었다. 3회와 9회 엔딩이었다. 현장에서 몰입해 연기한 장면 위로 연출과 음악이 더해지며 예상보다 큰 힘이 생겼다.
"3회 엔딩과 9회 엔딩이 정말 좋았어요. 특히 계약을 체결하는 장면은 앞에서 쌓아온 빌드업이 있고 음악이 들어오면서 감정이 터지잖아요. 클리셰적인 상황일 수도 있지만 현장에서 저도 많이 몰입해서 연기했어요. 편집된 방송으로 보니 신선하게 느껴졌고, 음악까지 더해지면서 훨씬 멋있어졌어요. 제가 연기한 장면이지만 보면서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허남준은 배우로서 자신의 눈과 턱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특히 자신의 눈에는 선과 악이 함께 담겨 있어 서로 다른 성격의 인물을 모두 표현할 수 있다고 봤다.
"제 눈과 턱을 좋아해요. 연기할 때 장점이 되는 것 같아요. 제 눈에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두 가지를 모두 연기할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멋진 신세계'는 작품의 성과뿐 아니라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현장으로도 기억에 남았다.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히는 순간에도 서로 상처를 주는 말을 삼가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던 현장이었기에 작품의 성공이 더욱 기뻤다.
"모든 작품이 그렇지만 이번 작품도 현장 분위기가 정말 좋았어요. 일을 하다 보면 누구나 체력의 한계에 부딪히잖아요. 그래도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고 좋은 말과 따뜻한 말을 건넸어요. 각자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고요. 물론 현장 분위기가 좋다고 작품이 무조건 잘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작품까지 잘돼서 정말 행복했어요. 제 인생을 조금 더 바꿔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허남준은 '멋진 신세계'에 이어 차기작 tvN '고래별'로 시청자들과 만난다.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인 만큼 원작 팬들의 기대와 부담도 함께 짊어져야 한다. 그는 원작을 그대로 복제하기보다 캐릭터가 가진 매력과 자신이 가진 매력이 맞닿는 지점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다.
"모든 작품에는 부담감이 있어요. 이번에도 어느 정도 있지만 애써 없애려고 해요. 웹툰을 그대로 구현하려고 하면 오히려 일차원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원작 팬들이 원하는 걸 모두 맞출 수도 없고요. 제 연기를 더하면서도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게 가장 좋겠지만 쉽지는 않잖아요. 캐릭터가 가진 매력과 제가 가진 매력이 닿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웹툰도 천천히 읽었고, 우선 글을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멋진 신세계'에서도 최선을 다했듯 다음 작품도 열심히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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