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범죄와 이상 동기 범죄, 디지털 성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범죄 수법은 갈수록 정교해지고, 인공지능(AI)과 디지털 포렌식 기술은 수사 현장 깊숙이 들어왔다. 과학수사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 요소가 됐다.
하지만 국내 최초로 프로파일링 시스템을 도입한 윤외출 법무법인(유) 지평 고문은 기술보다 먼저 주목해야 할 변화로 사람 관계를 꼽는다.
30여 년간 강력 범죄 현장을 누빈 그는 지난 18일 아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범죄는 결국 사회가 만들어낸 결과"라며 "공동체가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리 수사 기술이 발전해도 범죄를 근본적으로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윤 고문은 한국 과학수사의 산증인으로 불린다. 경찰대 3기 출신인 그는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장과 강력계장, 경찰청 초대 수사연구관실장, 전북경찰청 수사부장, 경남경찰청 수사부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2000년 서울지방경찰청에 과학수사계를 신설하고 프로파일링 조직을 도입하면서 한국 범죄심리 분석 체계의 기초를 닦았다.
지금은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이 익숙하지만 당시만 해도 범죄심리 분석은 생소한 개념이었다. 수사는 진술과 자백에 의존할 때가 많았고, 범죄자 행동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수사 방향을 제시한다는 발상 자체가 낯설었다.
윤 고문은 해외 사례를 연구하며 국내 수사 환경에도 과학적 범죄 분석 체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범죄 현장의 물적 증거와 범죄자 행동 패턴을 분석해 사건 실체에 접근하는 방식이 미래 수사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봤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와 프로파일링 조직이다. 이후 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로 알려진 권일용 전 경위를 발탁하는 등 한국 프로파일링 체계 구축에도 깊이 관여했다.
윤 고문은 프로파일링에 대한 가장 큰 오해로 '직감 수사'를 꼽는다.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프로파일러가 현장을 둘러본 뒤 범인의 특징을 단번에 맞히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는 설명이다. 실제 프로파일링은 사건 현장과 범행 수법, 피해자 특성, 이동 경로, 범행 후 행동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이다. 수사관과 과학수사 요원,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 등이 함께 참여하는 협업의 결과물에 가깝다.
이에 대해 "프로파일링은 직감이 아니라 데이터와 경험의 축적"이라며 "수많은 사건과 현장을 경험한 사람이 더 정확한 분석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현장을 지켜본 윤 고문이 체감한 가장 큰 변화는 범죄의 얼굴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과거 경찰이 상대했던 대표적 강력 범죄는 연쇄살인과 연쇄강도, 조직폭력배 범죄였다. 범죄자는 낯선 사람을 공격했고 사회는 이들을 위험한 예외적 존재로 인식했다.
반면 지금은 가정폭력과 데이트폭력, 스토킹, 학교폭력, 아동학대 등 관계성 범죄가 수사 현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그는 진단한다.
윤 고문은 "범죄가 공동체 밖에서 공동체 안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가족과 연인, 친구, 직장 동료, 이웃 등 가까운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이 범죄로 이어지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단순한 범죄 유형 변화로 보지 않는다. 사회 구조 변화와 공동체 약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평가한다.
윤 고문은 "예전에는 범죄자를 사회 밖의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했다면 지금은 누구나 갈등 상황에 놓일 수 있다"며 "관계가 단절되고 공감 능력이 약해질수록 갈등은 폭력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최근 사회적 충격을 안긴 이상 동기 범죄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과거 연쇄범죄자 연구 과정에서 접했던 범죄자들은 비교적 명확한 위험 요인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가정 환경이나 학대 경험, 경제적 결핍, 사회 부적응 등이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성장 배경만으로 범죄 원인을 설명하기 어려운 사례들이 늘고 있다고 윤 고문은 분석한다.
그는 "과거에는 범죄자의 성장 과정에서 일정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며 "좋은 교육을 받고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이 성장했더라도 폭력성을 드러내는 사례들이 나타난다"고 언급했다.
범죄를 단순히 개인 문제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도 우려했다.
윤 고문은 경쟁 중심의 사회 구조와 인간관계 단절, 공동체 약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범죄 예방 역시 검거율을 높이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공동체 회복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상대방을 존중하고 공감하는 경험 역시 사회 구성원이 함께 키워가야 할 가치"라며 "범죄 예방은 결국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과 연결돼 있다"고 강조했다.
과학수사 환경은 지금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DNA 분석 기술은 미제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휴대전화 포렌식과 CCTV 분석, 위치정보 추적 기술도 수사의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는 AI 기술까지 도입되면서 수사 방식은 또 한번 변화를 맞고 있다.
그러나 윤 고문은 기술이 수사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범죄자의 행동을 이해하고 피해자의 고통을 공감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영역"이라며 "실체적 진실을 향해 집요하게 접근하려는 수사관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지평에 합류한 것도 이 같은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윤 고문은 과학수사와 프로파일링이 더 이상 수사 기관만의 영역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디지털 증거와 과학적 분석 결과가 형사 재판의 핵심 증거가 되는 시대인 만큼 변호인 역시 과학수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예전에는 진술이 증거의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휴대전화와 CCTV, 포렌식 자료가 사건을 설명하는 시대"라며 "수사 기관이 확보한 증거를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분석하는 역량은 변호인에게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과학수사의 역할 역시 유죄 입증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경계했다.
윤 고문은 "과학수사는 범인을 잡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억울한 사람을 보호하는 장치이기도 하다"며 "객관적 증거를 통해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과정은 수사 기관과 변호인이 함께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제언했다.
경찰 조직을 떠난 지 3년이 지났지만 경찰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다. 윤 고문은 "길을 걷다 순찰차나 교통경찰을 보면 지금도 가슴 한쪽이 따뜻하면서도 아련하다"며 "재직 시절 후배들에게 더 좋은 근무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 아쉬움이 늘 남아 있다"고 소회를 전했다.
그는 영국 정치인 로버트 필의 말을 인용하며 경찰과 시민의 신뢰 관계를 강조했다.
윤 고문은 "경찰은 그 나라 국민 수준에 맞는 경찰이 된다"며 "시민들의 신뢰와 애정 속에서 성장한 경찰은 그 믿음에 보답하듯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게 된다"고 역설했다.
이어 "일부 부족한 모습만 보기보다 매일 묵묵히 현장을 지키는 수많은 경찰관들에게 따뜻한 시선과 응원을 보내 주셨으면 좋겠다"며 "제복의 무게를 기꺼이 짊어진 그들의 삶도 함께 기억해 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윤 고문은 "범죄를 이해하는 일도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라며 "지금까지 쌓아 온 경험을 바탕으로 형사 사건에서 실체적 진실을 찾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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