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기본·원칙·상식] 선수는 입국하고 팬은 막힌 월드컵, 정치가 스포츠를 삼켜선 안 된다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 장면 사진연합뉴스·로이터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 장면. [사진=연합뉴스·로이터]


2026 북중미 월드컵이 개막을 눈앞에 두고 뜻밖의 논란에 휩싸였다.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 여파가 월드컵 경기장까지 번진 것이다. 이란 축구대표팀 선수들은 미국 입국 비자를 받아 경기에 출전하게 됐지만, 이란 팬들은 경기장에 들어갈 수 없게 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란 축구협회는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조직위원회가 이란 팬들에게 배정된 티켓을 전량 취소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관계에 대한 최종 확인은 더 필요하다. 그러나 만약 특정 국가 팬들의 입장이 정치적 이유로 제한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단순한 행정 문제가 아니다. 스포츠의 기본 정신과 국제사회의 보편적 원칙을 흔드는 심각한 사안이다.

월드컵은 국가 간 경쟁의 무대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인류의 축제다. 국적과 인종, 종교와 이념을 넘어 같은 경기를 보고 같은 감동을 나누는 자리다. 국제 스포츠가 오랫동안 인류의 평화와 화합을 상징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대 올림픽은 전쟁 중에도 휴전을 선언하며 열렸다. 현대 올림픽 헌장 역시 정치적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FIFA 역시 정치와 종교, 인종에 따른 차별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규정을 운영하고 있다. 스포츠가 정치 갈등을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경기장 안에서는 누구나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 국제 스포츠의 오랜 원칙이다.


문제는 최근 들어 이 원칙이 점점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 스포츠계는 전례 없는 제재를 경험했다. 중동 전쟁과 미·중 갈등, 국제사회의 분열 역시 스포츠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선수들의 국적이 정치적 논란이 되고, 국제대회 개최 자체가 외교 문제로 연결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입국 심사를 강화할 수 있다. 주권국가로서 당연한 권리다. 그러나 월드컵은 일반적인 관광 행사와 다르다. 개최국은 대회를 유치하는 순간 국제사회와 특별한 약속을 맺는다. 참가국 선수와 관계자, 팬들이 차별 없이 대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최대한 보장해야 할 의무를 함께 떠안게 된다.

실제로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미국·캐나다·멕시코의 공동 개최가 확정된 당시 "어떤 팀이 출전하든 선수단과 팬들은 반드시 입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국제 스포츠 운영의 기본 원칙이었다.

만약 개최국과 외교적 갈등을 겪고 있는 국가의 선수단이나 팬들이 대회 참가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제약을 받는다면 국제 스포츠의 공정성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월드컵과 올림픽은 특정 국가의 국내 행사가 아니다. 국제사회 전체가 함께 만드는 공동 자산이다. 개최국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대회 운영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스포츠를 외교적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스포츠는 갈등을 확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존재한다. 경기장은 전쟁터가 아니라 소통의 공간이어야 한다.

월드컵은 지구촌 수십억 명이 함께 보는 축제다. 그 축제가 국적에 따라, 정치적 관계에 따라 참여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나뉜다면 월드컵의 의미는 크게 퇴색할 수밖에 없다. 정치는 정치의 영역에서 다뤄야 한다. 스포츠까지 정치의 전장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월드컵 경기장에는 응원가와 환호가 울려 퍼져야지, 국제 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져서는 안 된다. 그것이 FIFA가 지켜야 할 원칙이고, 개최국이 부담해야 할 책임이며, 국제사회가 함께 보호해야 할 스포츠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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