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명의 역사를 돌아보면 위대한 문명은 언제나 두 개의 축 위에서 성장해 왔다. 하나는 물질문명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문명이다. 물질문명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다면 정신문명은 인간이 왜 살아야 하는지, 사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 국가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로마의 도로와 군단이 제국을 만들었지만 로마를 로마답게 만든 것은 법과 철학이었다. 중국을 지탱한 것은 황하와 장강만이 아니라 유교와 도교, 불교가 만들어낸 정신문화였다. 인도 역시 광대한 영토보다 베다와 우파니샤드, 바가바드 기타가 남긴 사상적 유산으로 더 오래 기억되고 있다.
오늘날 인류는 또 하나의 거대한 문명 전환기를 지나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언어를 배우고,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며, 알고리즘이 인간의 판단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오히려 더 근원적인 질문 앞에 선다.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 했던 것이 종교이고 철학이며 경전이었다. 한민족 역시 오랜 세월에 걸쳐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질문에 답해 왔다. 천부경은 우주의 질서를 설명했고, 삼일신고는 인간 안의 하늘을 이야기했으며, 참전계경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쳤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문화의 전통을 근대에 계승하고자 했던 대표적 운동이 바로 대종교였다.
대종교를 단순히 하나의 종교로만 이해하는 것은 그 역사적 의미를 지나치게 축소하는 일일 수 있다. 대종교는 국권을 잃어가던 시대에 민족의 혼을 지키기 위해 일어난 정신운동이었고, 독립운동의 중요한 사상적 기반이었으며, 홍익인간이라는 한민족 고유의 이상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려 했던 문화운동이기도 했다.
1909년 중광조 나철 선생이 대종교를 다시 세운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대한제국은 붕괴 직전에 있었고 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았다. 일본은 군사력으로 조선을 압박하고 있었고, 민족의 자존감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나철은 이 위기를 단순한 정치적 위기로 보지 않았다. 그는 민족정신의 위기로 보았다. 총칼로 국토를 빼앗을 수는 있어도 민족의 혼까지 빼앗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단군을 신화 속 인물이 아니라 한민족 정신사의 상징으로 재조명하였다.
이후 대종교는 단순한 종교단체를 넘어 독립운동의 정신적 거점이 되었다. 특히 만주와 북간도 지역에서 그 역할은 매우 컸다. 대종교는 학교를 세우고 청년들을 교육했으며 민족의 정체성을 가르쳤다. 나라를 잃은 백성들에게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 답을 단군과 홍익인간의 정신 속에서 찾고자 했다.
나철의 뒤를 이은 서일 선생은 이러한 흐름을 더욱 발전시켰다. 서일은 대한독립선언과 북로군정서 활동에 깊이 관여했으며 독립군 양성과 민족교육에 헌신했다. 청산리대첩의 영웅 김좌진 장군 역시 이러한 정신적 토양 속에서 성장했다. 독립군이 혹독한 만주의 겨울을 견디며 싸울 수 있었던 것은 무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가슴속에는 민족을 되찾아야 한다는 사명감과 정신적 신념이 있었다.
대종교 지도자 윤세복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독립운동과 더불어 민족문화 부흥을 평생의 과제로 삼았다. 윤세복은 정치적 독립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보았다. 정신적 독립과 문화적 자립이 함께 이루어져야 진정한 민족 부흥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훗날 우리 역사학과 민족문화 연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다석 유영모를 떠올리게 된다. 다석은 특정 종교에 갇힌 사상가가 아니었다. 그는 기독교와 불교, 유교와 노장사상, 그리고 우리 민족의 전통정신을 두루 탐구하였다. 다석이 평생 추구한 것은 인간 안에 깃든 하늘이었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깨우고 내면의 영성을 회복하는 것을 삶의 중요한 과제로 보았다.
다석이 자주 강조했던 말 가운데 하나는 진리는 하나이나 그 길은 여럿이라는 정신이었다. 이는 천부경의 '일시무시일'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 하나에서 시작되어 다시 하나로 돌아가는 우주의 질서, 인간 안에 깃든 신성, 그리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삶이라는 대종교의 가르침은 다석의 사유와도 적지 않은 접점을 가진다. 윤세복이 민족의 얼을 이야기했다면 다석은 인간의 얼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근원적 가치를 찾고자 했다는 점에서는 같은 길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도 대종교 정신은 다양한 형태로 이어졌다. 초대 문교부 장관 안호상 박사는 홍익인간을 대한민국 교육이념으로 정착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늘날 교육기본법에 명시된 홍익인간 정신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한민족이 오랜 세월 동안 축적해 온 정신문화의 핵심 가치가 국가 교육철학으로 제도화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홍익인간은 단순히 민족주의적 구호가 아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이 정신은 인간 존엄성과 공동체 윤리, 자유와 책임을 함께 담고 있는 보편적 가치이다. 이러한 점에서 홍익인간은 오늘날 세계 시민사회가 추구하는 지속가능성과도 연결될 수 있다.
최근 들어 중국 요서 지방과 내몽골 일대에서 발굴된 홍산문화 유적은 동북아 고대문명 연구에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부 연구자들은 홍산문화가 한민족 고대문화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홍산문화와 천부경, 삼일신고를 직접 연결하는 문제는 여전히 신중한 학문적 검토가 필요한 영역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고대사의 뿌리와 동북아 문명의 기원을 탐구하려는 노력이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는 과거를 밝히는 학문이지만 동시에 미래를 준비하는 작업이다. 뿌리를 잃은 나무가 오래 살 수 없듯이 역사와 정신을 잃은 국가도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대한민국이 산업화와 민주화, 정보화를 이루어냈다면 이제는 정신문화의 선진화를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오늘날 대종교 역시 새로운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과거를 기념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천부경과 삼일신고, 참전계경의 정신을 오늘의 언어로 재해석하고 현대사회와 연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특히 AI 시대에는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보다 왜 사용하는가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능을 모방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양심까지 대신할 수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기술은 강력한 도구이지만 스스로 목적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결국 인간이 방향을 정해야 한다.
그 방향을 제시하는 가치 가운데 하나가 바로 홍익인간이다. AI가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인간과 AI가 함께 인류를 이롭게 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21세기 홍익인간의 새로운 해석일 수 있다.
대종교가 앞으로 해야 할 일도 여기에 있다. 국가의 영혼을 바로 세우고, 역사와 문화의 뿌리를 탐구하며, 미래 세대에게 인간다운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일이다. 그것은 과거 회귀가 아니라 미래 창조이다.
천부경은 우주의 질서를 말하고, 삼일신고는 인간 안의 하늘을 말하며, 참전계경은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삶을 말한다. 그리고 그 모든 가르침은 결국 홍익인간이라는 한마디로 귀결된다.
AI 시대가 깊어질수록 인류는 더 많은 기술보다 더 깊은 철학을 필요로 한다. 수천 년 전 우리 조상들이 남긴 질문은 오늘도 유효하다.
우주는 무엇인가.
인간은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 답은 결국 하나로 모인다. 자신을 밝히고 세상을 이롭게 하라. 홍익인간.
그것은 한민족이 남긴 가장 오래된 미래이며, 대한민국이 세계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정신유산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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