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소비자 결제 멈추게 한 스타벅스의 부실 결재

  • 기획부터 대표 결재까지 검증 장치 미작동

  • 책임자 교체 이후 남은 과제는 리스크 관리

  • 브랜드 신뢰 회복, 재발 방지 체계가 우선

홍승완 산업2부 기자 [사진=아주경제DB]
홍승완 산업2부 기자 [사진=아주경제DB]

"해당 '알바'는 오늘부로 잘랐습니다. 저희도 막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부디 선처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알바 관리 잘하겠습니다."

과거 한 패밀리 레스토랑 알바생이 매장 손님을 조롱한 글을 온라인에 올려 논란이 되자 지점 매니저라고 밝힌 인물이 올린 사과문이다. 네 문장에 불과한 이 글은 지금도 기업과 연예계에서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사과문의 정석'처럼 회자된다. 군더더기 없는 잘못 인정, 책임자 조치, 재발 방지 약속이 단 네 문장에 담겨 있다는 이유에서다. 사과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고, 무엇을 고쳤는지 보여줄 때 힘을 얻는다.

이 기준에서 보면 지난달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 대응은 신속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논란 당일 손정현 스타벅스코리아 대표와 담당 임원을 경질했고, 이튿날에는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해 오신 모든 분의 고통과 희생을 가볍게 여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라며 "모든 책임이 저에게 있음을 통감한다"는 그룹 회장 명의 사과문도 발표했다. 이어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역사 인식과 윤리 기준 교육도 약속했다. 책임자 조치,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이라는 사과문의 기본 요소는 모두 갖춘 셈이다.

문제는 앞선 사례와 달리 스타벅스 '5·18 탱크데이' 마케팅 사태에는 "막을 방법이 없었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해당 행사는 스타벅스코리아 커머스팀에서 기획하고 팀장→담당→본부장→대표이사 결재를 거쳐 확정됐다. 이 과정에서 '탱크데이'나 '책상에 탁' 같은 표현에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없었다. 첨부파일을 열지 않고 결재한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기업 이미지 훼손과 불매운동을 막을 수 있었던 기회가 분명 여러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내부 장치는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실무자의 단순 실수나 감수성 부족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더구나 과거에는 이같은 마케팅 문구에 대해 법무팀 검증 절차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 과정마저 생략됐다. 전상진 신세계그룹 경영총괄부사장은 "마케팅의 즉시성을 우선시한 까닭에 과거에 진행되던 법무팀의 검증 프로세스도 진행되지 않았다"며 "스타벅스코리아 내부의 사회적·역사적 민감성 부재를 드러냈다"고 인정했다. 빠른 실행을 앞세우다 기본적인 검증 절차를 건너뛴 셈이다. 그간 커피 프랜차이즈 '부동의 1위'라는 타이틀과 달리 내부 프로세스는 허술했던 셈이다.

리스크 관리는 위기 이후 사과문을 쓰는 일이 아니다. 위기가 터지기 전에 내부에서 멈출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무엇보다 스타벅스는 마케팅이 잦은 브랜드다. 계절 행사, 굿즈, 프로모션 등에서 문구 하나가 곧 소비자와 만나는 접점이 된다. 작은 표현 하나도 사회적 맥락과 부딪힐 수 있다는 뜻이다. 역사적 사건을 희화화하거나 혐오 표현으로 읽힐 수 있는 문구를 걸러내지 못한다면 '제2의 탱크데이' 논란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정 회장은 지난달 26일 직접 고개 숙이며 '오늘의 사과를 끝이 아닌 시작으로 삼을 것'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국민 신뢰를 다시 얻을 것'이라는 두 가지를 약속했다. 정 회장의 약속이 소비자에게 설득력을 얻기 위해선 그 시작은 내부 시스템 점검이어야 한다. 결재 라인을 더 늘려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문제를 발견하고 멈출 수 있는 절차, 이견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 사회적 감수성을 반영한 검증 체계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의 말대로 소비자 신뢰는 사과만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행동을 동반해야 한다. 다시는 같은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쌓일 때 브랜드 신뢰는 회복된다. 스타벅스가 이념적 갈등의 장이 아니라 커피를 즐기는 공간으로 다시 받아들여지려면 사과 이후 무엇을 바꿨는지부터 보여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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