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네 리뷰] '와일드 씽', 한때의 무대를 오늘의 응원으로

"낭만적이네요. 이 조명, 온도, 습도···." 한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남긴 말이다. 장소, 날씨, 몸 상태 등 하나하나가 모여 '분위기'를 만든다는 의미다. 영화도 마찬가지. 그날의 기분, 나의 경험이 영화의 '평가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최씨네 리뷰'는 필자의 경험과 시각을 녹여 관객들에게 영화를 소개하는 코너다. 조금 더 편안하고 일상적으로 담아내고자 한다. <편집자 주>
6월 3일 개봉하는 영화 와일드 씽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6월 3일 개봉하는 영화 '와일드 씽'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어떤 이의 '팬'이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책상 한쪽에 사진을 붙여두고 그의 노래 한 소절에 괜히 마음이 일렁이던 시절. 그가 서 있는 무대가 오래도록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믿었던 계절 말이다. 하지만 시간은 반짝이던 이름들까지도 결국 일상 한가운데로 데려다 놓는다. 화려한 조명 아래서 춤추던 이는 관리비를 걱정하는 생계형 방송인이 되고, 거칠게 랩을 뱉던 이는 어정쩡한 정장을 입은 보험 설계사가 된다. 영화 '와일드 씽'은 그렇게 한 시절의 무대를 지나 제각기 다른 삶으로 흘러온 사람들을 다시 무대 앞으로 불러내는 작품이다.

한때 가요계를 휩쓸었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하루아침에 해체된 3인조 혼성 댄스 그룹 '트라이앵글'. 20년 만에 리더 현우(강동원 분)에게 재기의 발판이 될 공연 제안이 들어오고, 생계형 방송인이 된 현우는 재벌가 며느리가 된 도미(박지현 분), 솔로 앨범 실패 뒤 빚더미에 앉은 상구(엄태구 분)를 다시 찾아 나선다. 제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세 사람은 마지막 무대를 위해 어렵게 다시 모이지만 과거 라이벌이었던 발라드 왕자 성곤(오정세 분)과 악연으로 얽힌 전 소속사 박대표(신하균 분)까지 모습을 드러내며 상황은 점점 더 걷잡을 수 없이 꼬여간다.
6월 3일 개봉하는 영화 와일드 씽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6월 3일 개봉하는 영화 '와일드 씽'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 '이층의 악당' '해치지않아' 등으로 자신만의 코미디 세계를 구축해 온 손재곤 감독은 이번에도 특유의 코미디 감각을 발휘한다. '왕년의 스타'라는 소재는 자칫 희화화나 연민으로 기울 수 있지만, '와일드 씽'은 그 감정에만 기대지 않는다. 대신 한때 빛났던 시절을 지나 지금의 삶을 버텨내는 인물들의 현재를 오래 붙든다. 과거의 영광을 끌어와 웃음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다시 무대에 오르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간절함까지 함께 따라간다. 관객들은 이들의 '웃픈' 상황에 웃다가도 어느새 그 무대가 무사히 성사되기를 바라게 된다.

그 시절 향수를 담은 아이돌의 음악과 풍광은 영화의 재미 포인트 중 하나다. 트라이앵글의 데뷔곡인 '러브 이즈(Love is)'부터 2집 타이틀곡 '샤우트 잇 아웃(Shout it out)', 최성곤의 솔로곡 '니가 좋아'까지, 영화 속 노래들은 그 시절 가요계의 공기를 충실히 담아내며 관객들의 향수와 몰입을 동시에 끌어낸다. 현재 K팝 신에서 독보적인 감각으로 활약 중인 심은지, 이진희 작곡가는 1·2세대 K팝의 문법을 가볍게 흉내 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들의 손을 거치며 한때 익숙했던 멜로디와 무드는 지금 다시 들어도 충분히 납득되는 세련된 방식으로 살아난다. 그 시절 음악과 무대의 정체성을 꽤 진지하게 붙들고 구현해낸 덕에 영화의 노래들은 단순한 패러디나 모사를 넘어선 음악적 실재감을 획득한다. 직관적인 멜로디와 당시의 정서를 정교하게 붙잡아낸 사운드는 영화에 탄력을 더하고 관객 역시 자연스럽게 그 리듬 안으로 끌려 들어가게 한다. 상영관을 나선 뒤에도 입에 붙어 흥얼거리게 되는 마력은 이 영화의 음악이 거둔 분명한 성취다.
6월 3일 개봉하는 영화 와일드 씽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6월 3일 개봉하는 영화 '와일드 씽'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그럼에도 '와일드 씽'은 과거의 영광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영화는 '트라이앵글'의 지나간 전성기가 아닌 다시 무대에 오르려는 현재의 발버둥에 집중한다. Y2K 감성과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가는 특유의 공기, 음악과 스타일링의 디테일이 반갑지만 영화는 결코 과거라는 이름의 향수에 매몰되어 안주하지 않는다. 대신 이들이 다시 온전한 자신으로 서기 위해 굳어버린 몸을 깨우고 질주하는 과정은 '와일드 씽'의 동력이다. 이 과정이 로드무비로 그려졌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들의 여정은 거칠고 투박하지만 멈추지 않는 생동감으로 가득하다. 각각의 개성이 뚜렷한 인물들이 '무대'라는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좌충우돌 달려 나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극에 경쾌한 리듬을 부여하며 관객을 동행시킨다.

그 간절함은 꼬여버린 상황 속에서도 묘하게 웃음을 만들고 끝내 응원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과거의 라이벌이던 발라드 왕자 성곤(오정세 분)과 악연으로 얽힌 전 소속사 박대표(신하균 분)까지 모습을 드러내며 길은 점점 더 험해지지만 영화는 그 소란마저 질주를 위한 추진력으로 바꿔버린다. '와일드 씽'의 질주는 경쾌하면서도 벅차다. 무사히 무대에만 서 달라는 마음, 그 단순하고도 간절한 바람이 영화의 후반부를 끌고 가는 가장 큰 힘이 된다.
영화 와일드 씽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와일드 씽'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들의 '다 내려놓은' 코미디 연기와 호흡도 인상 깊다. 강동원, 엄태구, 박지현은 '트라이앵글'로 다시 뭉쳐 한때 무대를 휩쓸었던 그룹의 리듬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노래와 랩, 춤을 위해 공들인 흔적도 자연스럽게 살아 있다. 세 사람이 다시 한 팀처럼 움직이는 호흡이 좋아 관객 역시 이들의 무대를 응원하게 된다. 오정세는 '와일드 씽'의 '킥'이다. 특유의 코미디 감각으로 최성곤이라는 인물을 살아 있게 만들며 장면마다 웃음의 포인트를 정확히 짚는다. 배우들의 앙상블 덕분에 영화는 끝까지 기분 좋은 리듬을 잃지 않는다.

결국 '와일드 씽'은 한때 누군가를 뜨겁게 좋아했던 마음을 다시 꺼내 보게 하는 영화다. 무대 위 조명이 꺼진 뒤에도 삶은 계속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조명 아래 서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은 생각보다 뭉클하다. 이 영화는 한때의 팬심을 추억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오늘의 응원으로 다시 바꿔놓는다.

'와일드 씽'은 6월 3일 극장 개봉한다. 러닝타임은 107분, 관람 등급은 12세 이상이다. 엔딩크레딧과 쿠키영상까지 보고 나오길 권한다. 트라이앵글의 '러브 이즈(Love is)'와 '샤우트 잇 아웃(Shout it out)'이 마지막 흥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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