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 칼럼] 스타벅스도, 정치권도 선을 넘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사진신세계그룹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사진=신세계그룹]

처음에는 기업의 마케팅 사고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번 스타벅스 ‘탱크데이’ 논란은 단순한 이벤트 실패를 넘어 한국 사회의 가장 민감한 균열이 한꺼번에 드러난 사건으로 변해갔다. 

사태의 출발점은 비교적 명확하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당일 스타벅스코리아가 ‘탱크데이’, ‘책상에 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매우 부적절했다. 기업의 역사 감수성이 심각하게 부족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광주와 5·18 유가족들에게는 단순한 마케팅 문구가 아니라 과거의 상처를 다시 건드리는 문제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스타벅스는 곧바로 행사를 중단했고 대표이사를 해임했으며,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과 미국 본사까지 직접 사과에 나섰다. 신세계그룹 창사 이후 처음으로 총수가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서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정 회장은 자체 진상조사 결과와 재발 방지 대책까지 발표하기로 했다.
 
기업이 책임져야 할 부분은 분명히 책임져야 한다. 특히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연결된 문제를 상업적 이벤트 언어처럼 소비한 것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글로벌 기업일수록 역사와 사회적 기억을 다루는 기준은 훨씬 더 엄격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논란은 순식간에 정치의 영역으로 빨려 들어갔다. 여당 지도부와 정부 부처, 대통령실까지 동시에 움직였고 일부 부처는 사실상 스타벅스 사용 자제나 협업 중단 조치에 들어갔다. 민주당은 5·18 특별법 개정안 발의까지 연결했다. 반면, 야당은 “관제 불매운동”, “정치폭력”, “지방선거용 인민재판”이라고 반발했다. 결국 스타벅스 논란은 기업의 위기관리 문제가 아니라 진영 정치의 전장으로 변했다.
 
물론 5·18은 결코 가볍게 다룰 수 없는 역사다. 광주는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적 공간이다. 특히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정치권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자체는 어느 정도 이해 가능한 측면도 있다. 한국 정치에서 5·18은 단순한 과거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현재진행형의 정치·사회적 상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에도 지켜야 할 선은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비자의 자발적 불매는 자유다. 시민사회가 기업을 비판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정부 부처와 권력이 직접 나서 특정 기업 사용 자제를 압박하는 방식까지 가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자칫 국가 권력이 시장과 소비의 영역에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논란에서는 대통령 발언 이후 정부 부처와 여당의 압박 수위가 빠르게 높아졌다는 점에서 정치적 과잉 대응 논란도 커지고 있다. 일부 장관들은 스타벅스 사업 중단이나 구매 내역 점검 수준의 대응까지 언급했다. 그러자 야당은 “커피 브랜드까지 정치 진영 논리로 판단하는 사회가 됐다”고 반발했다.
 
지난 21일 광주 서구 광천동 이마트 광주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광주·전남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5·18 탱크데이 행사로 물의를 빚은 스타벅스 코리아와 정용진 회장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 21일 광주 서구 광천동 이마트 광주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광주·전남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5·18 '탱크데이' 행사로 물의를 빚은 스타벅스 코리아와 정용진 회장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번 사태는 단순히 스타벅스의 잘못만으로 커진 것이 아니다. 정용진 회장의 정치적 이미지 역시 강하게 작용했다. 과거 ‘멸공’ 해시태그 논란 등으로 형성된 보수적 이미지가 이번 사태에서 증폭 효과를 만들었다는 분석이 많다. 실제로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공격은 스타벅스 실무진을 넘어 정 회장 개인에게 집중됐다. “무릎 꿇고 사과하라”, “석고대죄하라”, “퇴진하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기업의 마케팅 실패가 어느 순간 기업 총수 개인의 정치적 심판 문제처럼 번져간 것이다.
 
이제 대기업 총수의 SNS 발언과 정치적 이미지, 사회적 메시지는 단순한 개인 표현 수준으로 끝나지 않는다. 소비와 브랜드, 정치와 여론이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시대에는 기업인의 이미지 자체가 기업 리스크가 될 수 있다. 특히 한국처럼 진영 대립이 강한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동시에 정치권 역시 역사 문제를 지나치게 정치화하는 유혹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역사를 지키겠다는 명분이 정치적 압박 경쟁으로 흐르는 순간 국민 피로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기업 책임을 묻는 것과 선거 국면에서 정치적 상징 전쟁으로 확대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역사 문제를 진영 결집의 소재로 반복 소비하기 시작하면 결국 역사 자체도 정치의 언어 속에 갇히게 된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모든 사회 이슈가 너무 빠르게 진영 정치로 흡수되는 현재의 구조다. 이제는 커피 브랜드 하나, 광고 문구 하나, 기업인의 SNS 글 하나까지도 곧바로 정치적 해석의 대상이 된다. 기업은 소비자보다 정치권 눈치를 먼저 살피게 되고, 소비 역시 점점 정치적 선택처럼 변질된다. 이런 사회는 건강하다고 보기 어렵다.
 
기본과 원칙, 상식은 의외로 단순하다. 기업은 역사를 가볍게 다루지 말아야 한다. 정치권은 역사 문제를 과잉 정치화하지 말아야 한다. 국가 권력은 시장과 소비의 영역에 신중해야 한다. 그리고 시민은 분노하더라도 냉정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이번 스타벅스 논란은 한국 사회가 얼마나 빠르게 모든 문제를 진영 정치로 흡수하는 구조 속에 들어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커피 한 잔의 이벤트가 대통령과 장관, 여야 지도부, 특별법 개정안, 불매운동, 정치 공방으로 번지는 사회. 그것이 지금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강한 분노가 아니다. 기업은 책임 있게 반성하고, 정치권은 책임 있게 절제하는 일이다.


“기·원·상 칼럼은 아주경제의 사시인 ‘기본·원칙·상식’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와 세계 흐름의 본질을 짚어내는 대표 오피니언 칼럼입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2026_외국인걷기대회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