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자동차에서 낯선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운전자는 속도가 붙으면서 생기는 정상적인 마찰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엔진 출력이 올라가고 있다면 그 소음은 더 빠른 곳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그러나 타이어가 이미 마모되어 있고 브레이크가 한계에 가까워진 상태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때의 마찰음은 성장의 부산물이 아니라 사고를 예고하는 경고음이다.
최근 고금리·고물가·고환율, 이른바 ‘3고(高)’ 현상을 두고 청와대 정책실장이 “한국 경제가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성공의 비용이자 마찰음”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반도체와 AI 기업의 유례없는 호황, 코스피 상승세에 따른 자본 시장의 변동성을 ‘성공의 역설’로 읽는 시각 자체를 틀렸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성장하는 경제에는 어느 정도의 열과 소음이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설명이 매달 이자 부담을 감당해야 하는 영끌 가계와 원가 상승에 신음하는 중소기업의 현실까지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거시 지표의 상승이 곧바로 체감 경기의 개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의 마찰음이 정말 도약을 위한 진통인지, 아니면 바닥에서 이미 균열이 시작됐다는 신호인지 냉정하게 구분하는 일이다.
금융감독원 통계에 따르면 최근 대기업 대출 연체율은 0.1% 수준에 머무는 반면, 중소기업 연체율은 0.6~0.8%대로 올라 대기업 대비 6~8배 수준의 격차를 보이고 있다. 숫자 자체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자금 조달 비용과 부실 부담이 취약 부문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수출 대기업들은 고환율과 글로벌 수요 회복의 수혜를 흡수하고 있지만, 고금리와 원가 상승의 직격탄을 맞은 중소기업과 자영업 다중채무자들은 점점 버틸 여력을 잃어가고 있다.
지금 들리는 마찰음이 더 이상 성장의 열기가 아니라 바닥의 균열에서 비롯된 소리가 아닌지 점검해야 하는 이유다. 이 마찰음이 파열음으로 바뀌지 않고 진짜 도약의 신호가 되기 위해서는 말의 성찬을 넘어선 몇 가지 선제 조건과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가장 시급한 것은 정교하고 차별화된 금융 방파제의 구축이다. 고금리 압박을 무조건 누르는 포퓰리즘적 접근도 위험하지만, 시장 논리라며 방치하는 것은 더 위험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일률적인 만기 연장이나 퍼주기식 상생금융이 아니다. 일시적 유동성 위기를 겪는 유망 중소기업과 회생 불가능한 한계기업을 냉정하게 가려내는 송곳 대책이 필요하다. 링거만 계속 꽂아두는 것은 부실의 시한폭탄을 미래로 미루는 폭탄 돌리기에 불과하다.
그 다음은 K자형 자금 쏠림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금융의 유연성 복원이다. 최근 국민성장펀드가 출시 직후 한도를 채울 만큼 높은 관심을 얻은 것은 시장 자금이 성장 기대가 높은 첨단 산업과 우량 자산으로 집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혁신 산업 육성은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유통·건설·전통 제조 중소기업까지 자금 조달에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정책금융은 첨단 산업 투자와 병행해 이들 업종의 유동성 경색을 완충하고 산업 간 자금 순환이 단절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민간 자본을 대외 건전성의 방어막으로 활용하는 구조적 체질 개선이다. 환율 상승이 외화 부족이 아닌 외국인 주식 매도세에 따른 일시적 변동이라면, 대외 충격을 이겨낼 가장 확실한 완충 장치는 결국 내국인의 자본력이다. 퇴직연금의 전향적 활성화와 청년형 ISA 등 세제 인센티브를 통해 국내 자금의 증시 유입을 유도해야 한다. 외환보유고라는 곳간만 지키고 있을 것이 아니라, 기초체력 자체를 키워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수 자본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혼란은 마찰음을 위기 신호로 오독할 때 생긴다”는 당국의 경고는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더 큰 혼란은 실제 경고음을 단순한 소음으로 치부할 때 시작된다.
자동차는 속도를 올릴수록 더 큰 마찰을 견뎌야 한다. 그러나 점검 없는 가속은 전진이 아니라 고장으로 이어진다. 지금 한국 경제에 필요한 것은 안이한 낙관도 무조건적인 비관도 아니다. 철저한 옥석 가리기와 정교한 금융 지원, 그리고 자본 시장의 체질 개선이라는 세 가지 정비다. 그래야 지금의 마찰음은 도약의 신호가 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언젠가 그 소리가 이미 시작된 파열음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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