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대통령이 약속한 원융회통(圓融會通)의 정치

 24일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이재명 대통령이 서울 조계사 봉축법요식에서 “국민의 목숨을 살리는 정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더 세심하게 살피고, 가장 낮은 곳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고도 했다.
 
특히 불교의 화합 정신인 ‘원융회통’을 언급하며 국민과 나라의 위기를 하나 된 힘으로 극복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치적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이 깊어진 지금, 대통령이 화합과 상생의 가치를 내세운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이 24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불기 2570년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과 헌등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4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불기 2570년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과 헌등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원융회통은 서로 다른 주장과 입장을 억지로 지우자는 뜻이 아니다. 차이를 인정하되 극단으로 치닫지 않고, 갈등을 조정해 공동체가 함께 나아갈 길을 찾자는 정신이다. 민주주의의 본질도 이와 다르지 않다. 민주주의는 상대를 제거하는 체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을 제도 안에서 조정하는 시스템이다.
 
문제는 현실 정치가 그 방향과 멀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야는 상대의 실수와 막말에는 즉각 반응하지만 민생과 경제를 위한 협치에는 인색하다. 지방선거 국면에서도 정책 경쟁보다 진영 대결과 감정적 언어가 앞서는 모습이 적지 않다. 정치적 비판은 필요하지만 상대를 악마화하는 말이 반복되면 사회 전체가 적대의 정치에 익숙해진다.
 
 
불교는 중도(中道)를 강조한다.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찾으라는 뜻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지만, 소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민주주의는 오래가기 어렵다. 대통령과 여당은 힘이 있다고 독주해서는 안 되고, 야당도 무조건적 반대만으로 국민 신뢰를 얻기 어렵다. 상대를 굴복시키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설득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지금 한국 사회는 경제적으로도 쉽지 않은 국면에 있다. 저성장, 고물가, 고령화, 지역소멸, 청년 불안, 산업 재편이 동시에 밀려오고 있다. 미·중 전략 경쟁과 공급망 재편, AI 혁명까지 겹치면서 국가적 불확실성도 커졌다. 이런 시기에 정치마저 분열과 대립에 빠지면 국가 전체의 대응 능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역사를 돌아봐도 국가가 위기를 극복한 순간에는 갈등보다 통합의 힘이 컸다. 외환위기 때의 금 모으기 운동은 국민적 연대의 상징이었다. 코로나19 위기에서도 의료진과 시민의 협력이 사회를 지탱했다. 반대로 정치가 극단적으로 갈라질 때 경제와 사회의 불안은 더 커졌다. 정치는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안심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대통령이 말한 “국민의 목숨을 살리는 정부”도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은 재난 대응만을 뜻하지 않는다. 안전한 일터와 거리, 약자를 보호하는 복지, 갈등을 줄이는 제도, 혐오와 폭력을 막는 정치 문화까지 모두 포함된다. 국민의 삶을 살리는 정치는 말보다 제도와 실천으로 증명돼야 한다.
 
 
원융회통의 정신은 여야 모두에게 요구된다. 정치권은 선거 때마다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지지층 결집에만 몰두하는 습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가적 과제에는 협력하고, 정책 차이는 공개적으로 토론하며, 국민 앞에서는 절제된 언어를 써야 한다. 그것이 기본이고 상식이다.
 
 
부처님오신날의 메시지는 종교 행사의 축사로 끝나서는 안 된다. 화합과 상생은 정치권 전체가 실천해야 할 공적 약속이어야 한다. 지금 국민은 싸움 잘하는 정치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를 원한다. 원융회통은 어려운 불교 용어가 아니라, 오늘 대한민국 정치가 가장 절실하게 배워야 할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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