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의 베이징은 묘한 긴장감으로 흔들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떠나자마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곧바로 베이징으로 향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겉으로 보면 익숙한 장면일 수도 있다. 푸틴 대통령의 방중 자체는 이미 여러 차례 있었고, 중러 정상회담 역시 낯선 이벤트가 아니다.
그러나 이번은 결이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미중 정상회담 직후, 숨 돌릴 틈도 없이 푸틴 대통령이 베이징으로 달려간다는 사실은 러시아가 그만큼 다급하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국제정치에서 강대국은 여유를 연출한다. 반대로 조급함은 곧 힘의 약화를 드러낸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민낯을 세계에 드러냈다. 냉전 시절 미국과 세계 패권을 다투던 초강대국 소련의 후예 러시아는 핵무기와 광대한 영토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전 속에서 경제력과 산업 기반, 기술력의 한계를 노출했다. 특히 첨단 반도체와 AI, 우주·드론·정밀유도무기 체계에서 서방과의 격차는 예상보다 훨씬 컸다.
더 심각한 문제는 경제 체력이다. 러시아는 여전히 원유와 천연가스, 광물 자원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 가격이 높을 때는 강해 보이지만, 산업 구조 자체가 미래형 첨단경제와는 거리가 멀다. AI와 바이오, 양자컴퓨터, 차세대 반도체로 재편되는 21세기 산업 질서 속에서 러시아 경제는 점점 변방으로 밀려나는 모습이다.
유럽연합(EU) 역시 비슷하다. 한때 EU는 미국에 맞설 수 있는 세계 최대 경제권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의 구조적 약점을 드러냈다. 값싼 러시아 에너지에 의존했던 산업 구조는 흔들렸고, 독일 제조업은 침체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은 정치적 리더십까지 약화됐다. 군사적으로도 유럽은 여전히 미국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크게 의존한다.
결국 오늘날 세계 질서를 움직이는 진짜 두 마리 호랑이는 미국과 중국이다. 미국은 여전히 달러 패권과 군사력, AI 플랫폼, 반도체 설계 기술,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제조업과 공급망, 희토류, 배터리, 전기차, 그리고 거대한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미국에 맞서고 있다.
그다음 단계의 호랑이는 오히려 일본과 한국일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반도체 소재·장비·정밀기계·로봇 기술에서 여전히 세계 최강급 경쟁력을 갖고 있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AI 인프라, 배터리, 조선, 디지털 문화 산업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TSMC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반도체 벨트는 사실상 AI 시대의 석유와 같은 전략 자산이 되고 있다.
반면 러시아와 EU는 군사력과 과거의 영광은 남아 있지만, 미래 산업과 AI 플랫폼 경쟁에서는 점차 밀려나는 형국이다. 거칠게 표현하면 “종이호랑이”가 되어가고 있는 셈이다. 겉으로는 거대하지만, 미래를 움직이는 기술과 플랫폼의 중심에서는 멀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 역시 그런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대만 문제와 북한 문제, 이란 핵 문제, 글로벌 공급망과 AI 패권 경쟁까지 모두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결국 세계 질서가 G2 중심 체제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냉전 시대의 미국·소련 양극 체제와는 다르다. 이번에는 경제와 기술, AI와 데이터, 공급망과 금융까지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G2 질서다.
이런 시대일수록 한국과 일본은 낡은 역사 갈등에만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물론 과거사는 결코 가볍지 않다. 식민지 시대의 상처와 역사 문제는 반드시 기억하고 성찰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21세기의 거대한 문명 전환 속에서 미래를 향한 전략적 협력 역시 필요하다.
특히 AI 시대는 단순한 기술 경쟁 시대가 아니다. 인간의 정신과 윤리, 문화와 철학이 기술을 통제해야 하는 시대다. AI가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성과 문명이 AI를 이끌어야 하는 시대다. 말하자면 ‘스피리추얼리티 센터드 AI(Spirituality-Centered AI)’의 시대다.
그런 점에서 한국과 일본은 놀라운 조합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역동성과 디지털 전환 능력, 콘텐츠와 반도체 경쟁력을 갖고 있다. 일본은 정밀 제조업과 기초 과학, 장인 정신과 시스템 안정성을 갖고 있다. 양국이 협력한다면 AI·반도체·바이오·에너지·문화 산업 전반에서 미국과 중국 다음가는 새로운 축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특히 한일 양국은 유교·불교·동아시아 공동체라는 문명적 기반까지 공유하고 있다. 서구식 패권 모델이 아니라, 공존과 질서, 절제와 균형의 철학을 가진 문명권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의 감정에만 머무는 정치가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정치다.
조만간 안동을 방문하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이재명 대통령의 회담은 단순한 외교 이벤트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한일 양국이 새로운 경제·기술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는 역사적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지금 세계는 거대한 블록화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은 북미 중심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고, 중국은 중화권 경제권을 강화하고 있다. 유럽은 EU 단일 시장을 기반으로 움직인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만 역사 갈등 속에서 서로를 소모하고 있다면 결국 가장 큰 피해자는 양국 자신일 수밖에 없다.
한일 경제 공동체는 단순한 자유무역 구상이 아니다. 그것은 AI 반도체 공동 공급망, 에너지 안보 협력, 공동 연구개발(R&D), 미래 인재 교류, 디지털 금융 협력까지 포함하는 미래형 전략 동맹이어야 한다.
‘주역(周易)’은 말한다. “같은 뜻을 품은 사람은 쇠도 끊는다(同心之言 其利斷金).” 지금 한일 양국에 필요한 것도 바로 그것이다. 과거의 상처를 기억하되 미래를 위해 손을 잡는 용기, 그리고 동아시아 문명의 새로운 질서를 함께 만들어가겠다는 결단이다.
특히 한일 관계의 가장 어려운 과제는 결국 과거사 문제다. 역사에는 피해와 상처가 존재했고, 그것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문명은 원한만으로 지속되지 않는다. 기억은 필요하지만, 증오만으로 미래를 만들 수는 없다.
‘도덕경(道德經)’은 이렇게 말한다. “원한에 원한으로 갚으면 원한은 끝나지 않는다(報怨以德).” 노자는 강함보다 부드러움이 오래가고, 복수보다 덕이 질서를 만든다고 보았다. 그것은 패배의 철학이 아니라 문명의 철학이었다. ‘법구경(法句經)’ 또한 말한다. “원한은 원한으로써 풀리지 않고, 자비로써 풀린다. 이것은 영원한 진리다.” 수천 년 전 석가모니의 이 가르침은 오늘날 동북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국가 간 관계 역시 끝없는 적대와 증오만으로는 지속될 수 없다. 결국 마지막에는 이해와 절제, 그리고 공존의 지혜가 필요하다.
성경 로마서에도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이 말은 망각하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상처를 넘어 더 높은 차원의 질서를 만들라는 뜻에 가깝다. 인류 문명의 위대한 경전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결국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증오의 반복이 아니라 화해와 공존, 그리고 미래를 향한 용기다.
트럼프와 시진핑, 푸틴이 움직이는 시대다. 그러나 진정 중요한 것은 강대국 사이에서 끌려다니지 않는 지혜다. 이제 한국과 일본은 스스로 하나의 축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AI 시대 동북아의 평화를 지키고, 미래 세대의 번영을 열어가는 가장 현실적인 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은 결이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미중 정상회담 직후, 숨 돌릴 틈도 없이 푸틴 대통령이 베이징으로 달려간다는 사실은 러시아가 그만큼 다급하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국제정치에서 강대국은 여유를 연출한다. 반대로 조급함은 곧 힘의 약화를 드러낸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민낯을 세계에 드러냈다. 냉전 시절 미국과 세계 패권을 다투던 초강대국 소련의 후예 러시아는 핵무기와 광대한 영토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전 속에서 경제력과 산업 기반, 기술력의 한계를 노출했다. 특히 첨단 반도체와 AI, 우주·드론·정밀유도무기 체계에서 서방과의 격차는 예상보다 훨씬 컸다.
더 심각한 문제는 경제 체력이다. 러시아는 여전히 원유와 천연가스, 광물 자원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 가격이 높을 때는 강해 보이지만, 산업 구조 자체가 미래형 첨단경제와는 거리가 멀다. AI와 바이오, 양자컴퓨터, 차세대 반도체로 재편되는 21세기 산업 질서 속에서 러시아 경제는 점점 변방으로 밀려나는 모습이다.
결국 오늘날 세계 질서를 움직이는 진짜 두 마리 호랑이는 미국과 중국이다. 미국은 여전히 달러 패권과 군사력, AI 플랫폼, 반도체 설계 기술,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제조업과 공급망, 희토류, 배터리, 전기차, 그리고 거대한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미국에 맞서고 있다.
그다음 단계의 호랑이는 오히려 일본과 한국일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반도체 소재·장비·정밀기계·로봇 기술에서 여전히 세계 최강급 경쟁력을 갖고 있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AI 인프라, 배터리, 조선, 디지털 문화 산업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TSMC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반도체 벨트는 사실상 AI 시대의 석유와 같은 전략 자산이 되고 있다.
반면 러시아와 EU는 군사력과 과거의 영광은 남아 있지만, 미래 산업과 AI 플랫폼 경쟁에서는 점차 밀려나는 형국이다. 거칠게 표현하면 “종이호랑이”가 되어가고 있는 셈이다. 겉으로는 거대하지만, 미래를 움직이는 기술과 플랫폼의 중심에서는 멀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 역시 그런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대만 문제와 북한 문제, 이란 핵 문제, 글로벌 공급망과 AI 패권 경쟁까지 모두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결국 세계 질서가 G2 중심 체제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냉전 시대의 미국·소련 양극 체제와는 다르다. 이번에는 경제와 기술, AI와 데이터, 공급망과 금융까지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G2 질서다.
이런 시대일수록 한국과 일본은 낡은 역사 갈등에만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물론 과거사는 결코 가볍지 않다. 식민지 시대의 상처와 역사 문제는 반드시 기억하고 성찰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21세기의 거대한 문명 전환 속에서 미래를 향한 전략적 협력 역시 필요하다.
특히 AI 시대는 단순한 기술 경쟁 시대가 아니다. 인간의 정신과 윤리, 문화와 철학이 기술을 통제해야 하는 시대다. AI가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성과 문명이 AI를 이끌어야 하는 시대다. 말하자면 ‘스피리추얼리티 센터드 AI(Spirituality-Centered AI)’의 시대다.
그런 점에서 한국과 일본은 놀라운 조합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역동성과 디지털 전환 능력, 콘텐츠와 반도체 경쟁력을 갖고 있다. 일본은 정밀 제조업과 기초 과학, 장인 정신과 시스템 안정성을 갖고 있다. 양국이 협력한다면 AI·반도체·바이오·에너지·문화 산업 전반에서 미국과 중국 다음가는 새로운 축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특히 한일 양국은 유교·불교·동아시아 공동체라는 문명적 기반까지 공유하고 있다. 서구식 패권 모델이 아니라, 공존과 질서, 절제와 균형의 철학을 가진 문명권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의 감정에만 머무는 정치가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정치다.
조만간 안동을 방문하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이재명 대통령의 회담은 단순한 외교 이벤트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한일 양국이 새로운 경제·기술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는 역사적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지금 세계는 거대한 블록화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은 북미 중심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고, 중국은 중화권 경제권을 강화하고 있다. 유럽은 EU 단일 시장을 기반으로 움직인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만 역사 갈등 속에서 서로를 소모하고 있다면 결국 가장 큰 피해자는 양국 자신일 수밖에 없다.
한일 경제 공동체는 단순한 자유무역 구상이 아니다. 그것은 AI 반도체 공동 공급망, 에너지 안보 협력, 공동 연구개발(R&D), 미래 인재 교류, 디지털 금융 협력까지 포함하는 미래형 전략 동맹이어야 한다.
‘주역(周易)’은 말한다. “같은 뜻을 품은 사람은 쇠도 끊는다(同心之言 其利斷金).” 지금 한일 양국에 필요한 것도 바로 그것이다. 과거의 상처를 기억하되 미래를 위해 손을 잡는 용기, 그리고 동아시아 문명의 새로운 질서를 함께 만들어가겠다는 결단이다.
특히 한일 관계의 가장 어려운 과제는 결국 과거사 문제다. 역사에는 피해와 상처가 존재했고, 그것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문명은 원한만으로 지속되지 않는다. 기억은 필요하지만, 증오만으로 미래를 만들 수는 없다.
‘도덕경(道德經)’은 이렇게 말한다. “원한에 원한으로 갚으면 원한은 끝나지 않는다(報怨以德).” 노자는 강함보다 부드러움이 오래가고, 복수보다 덕이 질서를 만든다고 보았다. 그것은 패배의 철학이 아니라 문명의 철학이었다. ‘법구경(法句經)’ 또한 말한다. “원한은 원한으로써 풀리지 않고, 자비로써 풀린다. 이것은 영원한 진리다.” 수천 년 전 석가모니의 이 가르침은 오늘날 동북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국가 간 관계 역시 끝없는 적대와 증오만으로는 지속될 수 없다. 결국 마지막에는 이해와 절제, 그리고 공존의 지혜가 필요하다.
성경 로마서에도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이 말은 망각하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상처를 넘어 더 높은 차원의 질서를 만들라는 뜻에 가깝다. 인류 문명의 위대한 경전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결국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증오의 반복이 아니라 화해와 공존, 그리고 미래를 향한 용기다.
트럼프와 시진핑, 푸틴이 움직이는 시대다. 그러나 진정 중요한 것은 강대국 사이에서 끌려다니지 않는 지혜다. 이제 한국과 일본은 스스로 하나의 축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AI 시대 동북아의 평화를 지키고, 미래 세대의 번영을 열어가는 가장 현실적인 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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