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솔로'를 보며 가장 자주 떠오르는 건 로마의 콜로세움이다. 로마 귀족들은 직접 싸우지 않았다. 대신 검투사들을 원형 경기장에 올려놓고 군중의 열광을 즐겼다. 피와 공포, 생존 경쟁은 가장 강력한 오락이었다.
귀족들은 늘 안전한 위치에 있었다. 칼을 쥔 건 검투사였고, 함성을 지른 건 군중이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한 발 뒤에 있었다.
'나는 솔로' 제작진도 누군가를 욕하지 않는다. 대신 욕먹기 좋은 환경을 설계한다. 공격은 대중에게 위임한다.
편리한 도덕적 이탈(Moral Disengagement)이다. 사람은 폭력을 직접 행사하지 않을 때 죄책감을 덜 느낀다. "그냥 보여줬을 뿐", "판단은 시청자의 몫"이라는 말은 위험하다.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책임에서는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13일 방송된 SBS Plus·ENA '나는 SOLO'에서 31기 순자는 여성 출연자들의 지속적인 뒷담화와 심리적 압박 속 무너졌다. 위경련으로 응급실까지 향했다. 논란의 중심에 섰던 옥순은 분량이 대폭 편집됐다. 대신 영숙이 새로운 '빌런'으로 부상했다. 영숙의 표정, 말투, 분위기에 시청자들의 공분이 터졌다.
누군가는 말할 수 있다. "출연자가 그런 행동을 했으니 욕먹는 것 아니냐"고. 그렇다. 출연자의 행동에 비판점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지금의 '나는 솔로'는 시청자가 특정 인물을 공격하도록 감정을 유도하는 단계에 와 있다.
'나는 솔로' 제작진은 방송 말미마다 말한다. "과도한 비난은 자제해달라", "출연자의 사생활을 침해하지 말아달라"… 참 묘한 당부다. 출연자를 가장 위험한 위치에 세워놓은 건 제작진인데 말이다. 욕먹기 좋은 장면은 몇 주에 걸쳐 반복 재생한다. 민망한 표정은 슬로우로 확대한다. 갈등은 자막과 효과음으로 증폭시킨다. 그러다 방송이 끝나면 말한다.
"악플은 안 됩니다."
검투사를 경기장 한복판에 세워놓고, 관객에게 돌을 던지게 만든 뒤 "폭력은 나쁜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초창기 '나는 솔로'는 인간 관찰 프로그램에 가까웠다. 서툰 사람들이 만나 사랑 앞에서 흔들리는 모습, 감정과 자존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인간군상을 보여줬다. 그래서 많은 시청자가 과몰입했다. 누군가의 실수 속에서 자기 모습을 봤고, 누군가의 서툰 표현에서 과거의 자신을 떠올렸다.
지금은 다르다. 누가 더 비호감인지, 누가 더 빌런인지, 누가 더 조롱당할 만한지 심판한다. 출연자들은 전문 방송인이 아니다. 그런데 방송은 이들에게 방송인 이상의 감정 통제력과 멘탈, 상황 대응 능력을 요구한다. 짧은 수면 시간, 극단적인 긴장 환경, 카메라 수십 대, 경쟁 구조, 집단 압박… 방송 후에는 전 국민 평가가 시작된다. 출연자들은 인격권 침해와 편견, 혐오까지 견뎌야 한다.
'나는 솔로' 제작진은 '리얼'을 말한다. 정말 리얼이 중요하다면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는 상황 설정부터 줄여야 한다. 출연자를 집단적으로 민망하게 만드는 연출도 경계해야 한다. 누군가가 무너지는 조짐이 보이면 서사를 조정해야 한다.
지금의 '나는 솔로'는 위태로운 장면일수록 더 오래 보여준다. 감정 충돌은 더 확대한다. 시청률과 화제성은 올라간다. 물론 출연자를 쉽게 빌런으로 만들고, 사적 영역까지 침범하는 시청자의 책임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작진의 책임이 사라지진 않는다. 칼을 쥐여준 사람이 "왜 저 사람들은 저렇게 잔인하죠?"라고 묻는 건 이상하다.
미디어윤리는 "악플 달지 마세요"라는 자막 한 줄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람을 벼랑 끝까지 몰아놓고, 안전벨트를 달아줬다고 말하는 건 위선이다.
지금의 '나는 솔로'는 인간을 이해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인간이 무너지는 속도를 구경하는 프로그램이 되어가고 있다.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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