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JP 데스크 칼럼] 봉쇄된 바다, 대한민국의 결단 시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 대해 ‘사전 통행 허가제’를 공식 도입하며 사실상의 주권적 해상 통제를 강화하는 가운데, 호르무즈 해협에서 폭발과 화재가 발생했던 HMM 운용 화물선 나무호가 예인선에 의해 두바이항으로 향하고 있다.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약 20%가 지나는 전략 요충지에서 한국 선박이 실제 피해를 입었고, 한국 선박 26척과 한국인 선원 160명이 여전히 해협 안에 묶여 있다. 

호르무즈 위기는 더 이상 먼 중동의 분쟁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에너지 안보와 국민 안전, 그리고 국가 위신이 동시에 걸린 현실적 위기로 변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제 이 해협은 더 이상 자유로운 바다가 아니다. 이란은 모든 통과 선박에 사전 허가를 요구하고, 지정 항로 외 운항 시 군사 대응 가능성까지 경고하고 있다. 이는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이 보장해온 국제 해협의 ‘통과통항권’을 사실상 자의적으로 제한하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미국과 이란이 서로를 향해 호르무즈를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해협은 단순한 긴장 수역을 넘어 사실상의 준전시 상태로 진입했다. 그러나 정작 미국은 명확한 전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프로젝트 프리덤’을 통해 해협 내 민간 선박 탈출 지원 의지를 밝히면서도, 동시에 작전 중단 가능성과 협상 가능성을 번갈아 언급하고 있다. 강경 압박과 출구 전략 사이를 오가는 워싱턴의 메시지는 동맹국들에 확신보다 혼선을 더 키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신중론은 이해할 수 있다. 섣부른 군사 참여는 중동 지역 내 한국 기업과 교민 안전 문제, 이란과의 외교 관계 악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중함과 무행동은 다르다.

두 달 넘게 봉쇄 상황이 이어지면서 일부 선박에서는 식량과 식수 부족 우려까지 제기된다. 정부는 다국적 공조 체계와 별개로 이란과의 직접 외교 채널을 총동원해 우리 선박과 선원의 안전 통항을 확보해야 한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지정학적 명분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다. 

동시에 국제 공조에도 실질적으로 참여할 준비가 필요하다. 이미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44개국이 호르무즈 정상화를 위한 방어적 성격의 다국적 임무를 논의 중이다. 핵심은 이란 공격이 아니라 상업 선박 보호와 기뢰 제거, 안전 항행 확보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소해함 전력이 현실적 해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소해 작전은 공격용 군사 행동이 아니라 민간 선박 안전을 위한 대표적 방어·구난 활동이다. 한국 해군은 기뢰전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한미 연합 기뢰전 훈련에서도 높은 탐지 정확도와 빠른 제거 능력을 보여줬다. 

대한민국이 가진 소해 역량은 단순한 군사 자산이 아니다. 국제 항행 질서를 지키는 공공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전략 자산이다. 동시에 K-방산과 조선 산업 경쟁력을 국제사회에 입증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다만 모든 기여는 명확한 원칙 아래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한국은 미국의 대이란 압박 전략에 자동 편입되는 것이 아니라, 자국민 보호와 국제 해상 안전이라는 목적 아래 움직여야 한다. 그것이 국제사회도 납득할 수 있는 명분이며, 동시에 이란과의 외교 공간을 남겨두는 길이다. 

지금 호르무즈에서 벌어지는 충돌은 단순한 중동 분쟁이 아니다. 미국의 패권과 이란의 생존 전략, 국제 해상 질서와 자원 안보가 충돌하는 지정학적 시험대다. 그리고 그 한복판에 대한민국이 들어와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외교적 정교함과 단호한 실행력이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이란과 협상하고, 국제사회와 공조하며, 필요하다면 제한적 안보 기여도 감당하는 것. 그 복합적 균형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이 보여줘야 할 진짜 국력이다. 
 

미국과 이란이 충돌한 호르무즈 해협에서 한국 선사 HMM 운용 선박이 폭발과 화재 사고를 당한 지 이틀째인 5일 사고 원인에 대한 의문을 중심으로 상황이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다 지난해 9월 광저우에서 열린 HMM나무호의 진수식 202655
미국과 이란이 충돌한 호르무즈 해협에서 한국 선사 HMM 운용 선박이 폭발과 화재 사고를 당한 지 이틀째인 5일 사고 원인에 대한 의문을 중심으로 상황이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다. 지난해 9월 광저우에서 열린 HMM나무호의 진수식. 2026.5.5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