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탐사보도 현장에서 배운 것

박승호 기자
박승호 법조·탐사팀 기자

 

언론계 전반에서 탐사기획팀이 점차 위축되고 있다. 속보 경쟁과 일 업무에 치인 뉴스룸. 탐사보도는 빠듯한 인력과 예산 앞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탐사보도에 강점을 보였던 주요 신문사들이 관련 부서를 폐지했고, 대형 방송사들도 수년 새 탐사 조직을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당장 오늘 처리해야 할 업무가 산더미처럼 쌓인 뉴스룸에서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탐사보도가 뒷전으로 밀리는 흐름은 당분간 바뀌기 어려워 보인다. 매일 쏟아지는 속보와 단신 사이에서 긴 호흡으로 하나의 문제를 깊이 파고드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는 환경이 됐다.

그럼에도 새로운 방식을 찾는 움직임은 이어지고 있다. 동아일보 '히어로 스쿼드',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이 대표적이다. 일선 기자들과 기획 발제 권한을 나누고, 아이템이 채택되면 수개월간 전담팀에 파견해 디지털 인력과 함께 취재하게 하는 방식이다. 데일리 업무에 치여 서랍 속에 묻어뒀던 아이템이 빛을 볼 수 있는 구조를 만든 셈이다. 스트레이트 기사가 평준화되는 환경에서 차별화된 기사는 결국 깊이 있는 기획에서 나온다는 판단이 이런 시도를 뒷받침한다. 독자들의 반응도, 일선 기자들 사이의 호응도 결국 그 지점에서 나온다.

아주경제가 탐사보도팀 '발품'을 꾸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3월 전월세 허위 매물 실태를 들여다본 취재가 첫걸음이었다. 보증금 100만원짜리 방을 찾는 청년 구직자로 직접 현장을 찾았다. 서울 시내 부동산 30곳을 돌며 살펴본 현실은 부동산 애플리케이션에 올라와 있는 것과 달랐다. 올려놓은 매물이 아니라 실제로 보여주는 방은 따로 있었고, 조건은 현장에서 바뀌었다. 앱 화면과 실제 현장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컸고, 그 간극 속에 청년들이 놓여 있었다. 서면 자료나 통계로는 담아낼 수 없는 것들이 그곳에 존재했다.

창문까지 닫힌 차 안이었다. 매캐한 전자담배 연기 속에서 중개보조원이 건네는 말, 방을 보여주는 순서와 태도에는 서류로는 포착되지 않는 맥락이 있었다. "어차피 딴 데 가도 똑같다"는 말 한마디에 집을 구해본 청년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압력이 배어 있었다. 계약을 서두르게 만드는 분위기와 질문을 막는 말투, 그 자리에서 느껴지는 체념의 무게는 어떤 통계 수치로도 표현되지 않는 종류의 것이었다. 일일 발제에 쫓기는 일상이었다면 그 자리에 그만큼 오래 앉아 있지 못했을 것이다. 현장에서만 읽히는 것들이 있었다.

보증금 100만원짜리 월세방을 찾는 청년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그 시간은 한 번 지나면 돌아오지 않는다. 탐사보도가 그 시기와 맞닿을 때 현장에서 건져 올릴 수 있는 것들이 달라진다는 걸 이번 취재를 하며 실감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만 보이는 것들이 있고, 지금 이 시기에만 들을 수 있는 말들이 있다. 그 사실이 탐사보도를 계속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비용과 효율 앞에서 탐사보도의 입지는 계속 좁아지고 있다. 공들인 취재가 허탕으로 돌아갈 위험도 있고, 시간 대비 조회 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단건의 기사로는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 긴 호흡의 취재 끝에 모습을 드러낼 때가 있다. 파편처럼 흩어진 사실들이 하나의 구조로 이어지는 순간 그게 결국 기자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게 더 분명해진다. 시류에 밀려 사라지는 것처럼 보여도 묻혀 있던 진실을 끄집어내는 그런 취재거리는 여전히 곳곳에 있다.

직접 밟아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고, 지금 이 시기에만 들어설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걸 탐사보도를 하며 점점 더 느낀다. 세상이 빠르게 바뀌어도 현장의 언어는 발로 뛰는 사람에게만 들린다. 지금 그 자리에 서서 감춰진 이면을 기록하는 것,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해서 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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