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뷰] 내가 잘못 본 정치인, 정원오

김두일 선임기자
김두일 선임기자


 나는 정치를 오래 지켜봐 왔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정치인을 만나고, 평가하고, 때로는 틀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난감한 순간은 따로 있다. 모르던 사람을 잘못 판단했을 때가 아니라, 안다고 믿었던 사람을 틀리게 봤을 때다. 나는 정원오를 이런 정치인으로 기억해왔다. 부드럽고, 온건하고,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유형.
 실제로 몇 차례 식사를 함께하며 본 그는 강성도, 과장도, 무리한 주장도 없는 '합리적인 정치인'으로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를 높이 평가했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때 '오세훈 대통령·정원오 서울시장論'이라는 칼럼을 썼다. 그만큼 나는 그를 신뢰했고, 그 가능성을 봤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 판단이 틀렸을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두 가지 일이 있었다. 폭설 대응을 둘러싼 발언 논란, 그리고 성동문화원장 인사를 둘러싼 책임 공방이다. 먼저 폭설 논란이다. 당시 현장 상황과 체감된 혼선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관련 발언은 책임 있는 설명이라기 보다 상황을 축소하거나
문제의 초점을 비켜가는 것으로 읽혔다. 재난 대응에서 중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정확한 인식과 책임이 있어야 한다. 그 점에서 당시 발언은 시민의 체감과 거리를 보였다.
 문화원장 인사 문제는 더 분명하다. 문화원장 인사를 둘러싸고 논란이 제기되자, 그는 서울시의 관리·감독 권한을 언급하며 책임의 축을 위로 올렸다. 형식적으로는 틀린 말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자치구 산하기관의 인사와 운영이 실질적으로 구청의 영향권 안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발언은 설명이라기보다 책임의 방향을 바꾸는 시도로 읽힐 수밖에 없다. 
 각각의 사건만 놓고 보면 정치권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일 수 있다. 문제는 사건의 크기가 아니다. 그 사건을 어떻게 대하느냐의 문제다. 나는 이 두 사건을 따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로 묶어 묻는다. 이것은 단순한 실수인가, 아니면 반복되는 방식인가.   정치는 완벽을 요구하지 않는다. 실수 없는 정치인은 없다. 그러나 정치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기준은 분명하다. 책임을 피하지 않는 태도다. 설명은 부족할 수 있다. 판단은 틀릴 수 있다. 그러나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순간, 정치는 신뢰를 잃는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정치의 책임은 단순한 사과나 해명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책임을 스스로 끌어안고, 결과에 대해 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의 문제다. 권한을 행사하는 순간, 그에 따르는 부담을 함께 떠안는 것, 그것이 정치가 최소한으로 요구하는 윤리다.

 나는 그를 가까이서 몇번이고 본 적이 있다. 그래서 더 당혹스럽다. 내가 봐왔던 정원오와 지금의 정원오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한다. 그 간극이 일시적이라면 다행이다. 그러나 만약 같은 방식이 반복된다면, 그때는 평가를 바꿀 수밖에 없다.
 정치는 권한의 예술이 아니라 책임의 기술이다. 권한은 나눌 수 있어도, 책임은 나눌 수 없다. 특히 서울시장이라는 자리는 더욱 그렇다.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도
마지막 책임은 결국 한 사람에게 귀속된다. 그래서 지금 이 질문은 가볍지 않다. 그는 책임을 지는 정치인인가, 아니면 책임을 설명하는 정치인인가.
 나는 한때 그를 순수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엄격하게 묻는다. 한 번의 논란은 실수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방식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실수가 아니라 스타일이 된다. 정치는 말로 시작되지만, 신뢰로 유지된다. 그리고 그 신뢰는 평상시가 아니라 문제가 발생했을 때의 태도에서 결정된다.
 나는 내 판단이 틀렸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판단을 바꾸는 일 역시 정치를 지켜본 사람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다. 이 정치인의 방식이 서울을 맡길 수 있는 수준인가. 그 판단은, 결국 시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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