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없이 우주 한복판에서 깨어난 그레이스(라이언 고슬링)는 자신이 완전히 혼자라는 사실부터 마주한다. 현실을 부정하고, 죽은 동료들을 애도하고, 상황을 감당하지 못한 채 흔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종말의 위협 앞에 놓인 인류를 구해야 하는 임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우주 생존극으로 보긴 어렵다. 이 작품이 끝내 오래 붙드는 건 거대한 미션의 장엄함이 아니라, 타인과 연결되며 조금씩 달라지는 한 남자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처음의 그레이스는 영웅과 거리가 먼 인물이다. 죽음은 두렵고, 인류를 구해야 한다는 대의에도 결코 뜨거워지지 않는다. 지구에 목숨 걸고 지키고 싶은 누군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비주류적 견해를 굽히지 않아 학계의 미운오리새끼가 됐지만, 그렇다고 세상을 구할 사명감으로 들끓는 인물도 아니다. 그저 자신이 사랑하는 과학을 탐구하고, 그것을 가르치는 일에 몰두해온 외골수에 가깝다.
그런 그레이스가 외계 존재 로키를 만나며 변하기 시작한다. 처음은 생존 본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낯선 우주에서 마주한 또 하나의 생명체. 손을 뻗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상황. 그러나 영화는 둘의 관계를 단순한 공조 이상의 것으로 밀고 나간다. 서로의 언어 체계를 익히고, 문화와 습관을 이해해가는 과정 속에서 그레이스의 표정은 분명히 달라진다.
처음에는 미지와의 조우가 주는 흥분이었을 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감정은 호기심을 넘어선다. 서로가 속한 세계를 이해하고, 각자의 사정을 알게 되고, 생존과 귀환을 향한 목표를 함께 짊어지면서 둘의 관계는 점점 깊어진다. 그레이스는 그제야 누군가와 함께 살아남는다는 감각, 즉 연대의 감각을 배워간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분명해진다. 인류 전체를 위해서라면 죽음을 결심하지 못했던 남자가, 단 한 존재(로키)를 위해서는 기꺼이 위험 속으로 들어간다. 거대한 명분은 그를 끝까지 움직이지 못했지만, 관계는 해냈다. 지킬 것이 없을 때 그는 누구를 위해서도 목숨을 걸 수 없었다. 그러나 진심으로 연결된 타인이 생긴 순간, 그는 마침내 자신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우주를 배경으로 하지만, 실은 관계의 형성에 더 가까운 영화다. 누군가에게는 이 점이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다. 스펙터클한 우주 모험이나 속도감 있는 전개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다소 느슨하고 밋밋하게 느낄 가능성이 크다. 과학적 설정의 엄밀함보다 감정의 흐름과 관계의 축적에 더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호흡이 늘어지는 구간도 분명 있다.
그럼에도 영화가 쉽게 힘을 잃지 않는 건 필 로드와 크리스토퍼 밀러가 구축한 감각적 리듬 덕분이다. 동화 같은 색감과 아기자기한 미장센, 테마파크를 경유하듯 다채롭게 배치된 OST는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서사에 숨통을 틔운다. 우주의 고독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영화 전체가 지나치게 침잠하지 않는 건 이 연출 감각 덕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영화가 가장 미래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삼아 가장 오래된 가치 가운데 하나를 꺼내 든다는 점이다. 연대, 공동체, 함께 버티는 마음 같은 것들 말이다. 자칫 낡은 관념처럼 들릴 수 있는 이 감정을 영화는 그레이스와 로키의 관계를 통해 구체적인 체온으로 복원한다.
결국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보여주는 것은 인류애의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누군가를 이해하게 되고, 그 존재를 잃고 싶지 않아지는 마음이다. 그리고 때로 사람을 끝까지 움직이는 것은 세계를 구해야 한다는 대의보다, 바로 그 단 한 존재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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