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오너들의 고액 연봉과 밸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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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상장기업을 경영하는 그룹사 오너들과 최고경영자(CEO)의 연봉이 일제히 공개됐다. 다수 계열사에서 수백억 원대 연봉을 수령한 오너 경영인들에 대해 해당 기업은 "성과와 리더십, 책임의 무게에 따라 공정하게 보상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역대급 성과를 낸 기업의 평가도, 역대급 실적 악화를 겪은 기업의 해명도 모두 똑같다는 점이 흥미롭다.   

작년 재계 총수 가운데 가장 높은 연봉을 받은 인물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 한화솔루션, 한화 등 주요 계열사에서 받은 연봉이 248억원에 달한다. 이어 CJ·CJ제일제당 등 계열사에서 연봉 177억원을 받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2위, 3위는 현대차·기아· 현대모비스 등에서 175억원을 수령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차지했다.
 
지난해에는 역대급 성과를 바탕으로 연봉 100억원을 훌쩍 넘은 오너들이 많았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163억원), 조현준 효성 회장(157억원)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150억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146억원) 등은 주력 사업 악화에도 역대급 연봉을 챙겼다. 보수 총액이 전문 경영인보다  낮은 최태원 SK그룹 회장(83억원)과 전년 대비 상여급이 33% 삭감된 구광모 LG그룹(회장(71억원) 등은 비교적 납득할 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017년부터 무보수 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오너들의 고액 연봉이 유달리 눈에 띄는 이유는 올해 핵심 경영 화두가 '밸류업(Value-up)'과 '주주가치 제고'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주주총회에서 기업 가치를 높이고 주주에게 더 많은 이익을 돌려주겠다고 강조하지만 막상 공개된 오너들 연봉을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밸류업과 한국식 기업 문화인 오너 경영 체제가 애초에 공존할 수 없는 모순된 관계라는 지적도 나온다. 

밸류업의 핵심은 효율적인 자본 배분이다. 잉여 현금을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주에게 환원하거나 성장성이 높은 사업에 재투자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오너 중심의 보수 체계에서는 상당한 자원이 경영진 보수로 유출된다. 실제 오너 연봉은 단순한 인건비를 넘어 기업 내부에서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지출이다. 그만큼 주주환원 여력은 줄고 밸류업 정책은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오너 보수와 주주가치 간 괴리는 시장의 신뢰를 훼손한다. 투자자는 기업이 공정하게 운영되고 성과가 합리적으로 배분된다는 믿음을 전제로 투자한다. 오너가 기업 성과와 무관하게 과도한 보수를 수령한다면 소액주주들은 자신이 감내한 리스크에 비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불신이 쌓일 수밖에 없다. 이 불신은 결국 기업가치 할인,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이어진다.
 
밸류업은 장기적 기업가치 상승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투명한 지배구조, 독립적인 이사회, 합리적인 보수 체계가 필수적이다. 오너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한국식 기업 문화에서는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기 어렵다. 밸류업을 외치면서 동시에 오너 권한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양립하기 힘들다.

오너의 고액 연봉 문제를 외면한 채 주주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밸류업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기업 내부의 보상 구조부터 점검해야 한다. 내년에는 시장의 신뢰를 훼손하는 '미스터리한' 오너들의 연봉이 나오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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