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을 말할 때 ‘철통’이나 ‘찰떡’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곤 한다. 든든한 표현인지 모르나 정책과는 상관없다. 수사가 화려해질수록 실질적인 질문은 사라진다. 비용은 누가 지불하는지, 위험은 누구의 몫인지, 위기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인지와 같은 핵심 질문들 말이다. 겉으로는 고개를 숙이면서도 생존을 위해 치밀하게 계산기를 두드렸던 조선의 대명 외교는 오늘날 한·미동맹을 비판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조선의 대명 관계는 ‘사대’라는 단어로 치부되곤 한다. 하지만 사대는 맹목적인 정신적 예속이라기보다 냉혹한 국제 질서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었던 측면이 있다. 조선은 책봉과 조공, 연호와 의례를 지키며 질서에 순응하는 외양을 갖췄다. 그 대가로 충돌을 피하고 정권의 정통성을 확보하면서 실질적인 외교와 국가 경영에서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려 애썼다. 요컨대 조선은 ‘의례를 내주고 자율을 사는’ 거래를 했던 셈이다. 거래가 매번 성공적이지는 않았을지언정 그 논리만큼은 명확했다.
그러나 이 모델에는 치명적인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명청 교체기라는 거대한 전환점에서 조선은 ‘대명의리’를 절대적인 나침반으로 삼았고, 그 의리가 현실의 변화를 읽는 감각을 마비시켰다는 것이다. 청이 부상하는 구조적 재편을 수용하기를 거부하거나 대응 전략을 세우는 데 실기한 대가는 혹독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라는 국가적 재난의 결과로 조선은 굴욕적인 방식으로 새 질서에 편입되어야 했다. 교훈은 냉정하다. 의례적 정렬이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외교는 엄청난 재난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미국이 보이는 모습은 질서를 수호하는 패권국의 여유라기보다 조급함에 사로잡힌 제국의 무도한 몸짓에 더 가깝다. 스스로 만들고 주도해 온 국제질서를 스스로 허물면서까지 힘으로 국면을 되돌리려는 태도는 오히려 제국의 쇠락을 드러내는 징표다. 반대로 세계는 이미 중국의 부상과 함께 다극화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명말청초의 동아시아에서 조선이 인정하기 싫어도 새로운 힘의 등장을 직시해야 했던 것처럼 오늘의 한국 역시 감정이나 의리의 언어가 아니라 구조의 변화를 먼저 읽어야 한다.
한·미동맹이 한국 안보의 핵심축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동맹은 전략이지 신앙이 아니다. 조선이 의례를 지켰다 해서 변방의 안위까지 포기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동맹의 상징을 지키기 위해 정책의 설계권까지 무비판적으로 넘겨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미·중 간의 분쟁에 휘말릴 것이 뻔함에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허용하는 쪽으로 애써 눈을 감으려는 것은 아닌지. 동맹은 고정된 조각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설치예술이어야 한다. 세 가지 필수적인 고려사항이 있다.
첫째, 동맹에는 상징이 필요하며 국가 간 신뢰는 언어를 통해 유지되기도 한다. 문제는 상징이 실무를 압도할 때 발생한다. 정상회담의 문구와 수사가 어떤 사안의 실체를 가리는 사례가 허다하다. 예컨대 “한·미동맹의 강화”라는 표어는 우리가 미국의 요구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함을 의미한다. 근사한 표어 뒤에 엄청난 해악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상징이 과잉되면 동맹의 비용과 편익을 따져보겠다는 이성은 동맹에 대한 의심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외교는 상대에 대한 신념의 고백이 되고 만다. 결과로 국가의 전략적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둘째, 정책적 자율성이다. 동맹의 본질은 이익의 중첩일 뿐 결코 이익의 동일함이 아니다. 미국의 거대 전략과 한국의 우선 목표가 일치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가정하는 순간 우리의 자율성은 증발한다. 자율성은 선언적인 구호가 아니라 위기 시에 동원할 수 있는 선택지의 목록이다. 한국의 최우선 과제는 한반도에서의 억지와 위기관리다. 조선이 명분을 지키면서도 여진과 일본을 상대하는 실무 트랙을 별도로 설계했듯이, 우리 역시 동맹의 큰 틀을 유지하면서 핵심 이해 영역에서 ‘운용의 자율’을 어디까지 확보할지 선을 그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난 2월 중순 주한미군 전투기들이 서해 공해 상공으로 출격해 중국 전투기와 한때 대치한 사례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우리 공군이 참여하지 않은 채 주한미군이 사실상 독자적으로 움직였고 우리 측에는 훈련 사실만 통보됐을 뿐 구체적 목적과 의도는 충분히 공유되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동맹이 한국의 안보를 지키는 장치여야 하는데 오히려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한국을 미·중 군사적 긴장의 전면에 세울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이런 구조라면 동맹은 보호막이 아니라 예기치 않은 위험의 통로가 될 수 있다.
이 문제는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하는 과제와도 직결된다. 한국으로서는 미·중 경쟁의 최전선에 무심코 올라타기보다 경제와 안보를 함께 고려하는 정교한 완충 전략이 필요하다. 더구나 우리에게 긴요한 것은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관리하고 대화의 여지를 되살리며 장기적으로는 한반도 평화체제의 조건을 축적해 가는 일이다. 그런데 동맹의 운용이 우리의 전략적 우선순위와 분리된 채 작동하면 우리는 원하지 않는 대립에는 더 깊이 끌려 들어가고 정작 필요한 대화의 공간은 더 좁아지는 역설을 겪게 된다.
국제 질서의 재편은 서서히 누적되는 힘의 이동으로 진행되며 한번 방향이 잡히면 되돌리기 힘들다. 조선이 도덕적 언어에 갇혀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을 때 선택지는 좁아지고 비용은 폭증했다. 현재의 동맹 관계도 마찬가지다. 격변하는 세계 속에서 동맹을 유지해야 한다면 충성이 아니라 조정이 필요하다. 바뀐 상황에 재빨리 적응하지 못하고 관성적으로 대응하는 수준의 동맹이라면 결국 해체를 피할 수 없다. 과거에 집착하는 행보는 재앙을 부를 뿐이다. 우리의 핵심 이익을 수호하는 민첩한 설계가 필요하다.
셋째, 비용과 위험의 분배 문제다. 동맹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방위비 분담금이나 관세와 같은 직접적인 비용은 물론이고, 미국 시장에서의 제약과 경제 보복 같은 간접적 비용도 커지고 있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위험의 분배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으로 초래될 재앙적 비용은 국민 전체로 분산되지만 허용 여부의 결정권은 소수에 집중되어 있다. 반드시 국민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만 하는 사안이다. 비용과 위험의 덩치가 커질수록 민주적 통제 메커니즘은 강화되어야 한다. 동맹의 대외적 신뢰보다 중요한 것이 국민적 지지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종료된 연합훈련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작년보다 야외기동훈련 횟수가 크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한·미가 최종적으로 확정한 올해 계획 자체가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규모 조정의 신호는 있었으나 동맹 운용의 주도권이 우리 쪽의 평화전략으로 충분히 수렴되지 못했다. 북한이 한국을 동족의 범주에서 밀어내겠다는 적대적 언어를 구사하는 상황에서 지금 한국에 절실한 것은 세심한 평화관리다. 결국 동맹은 국익을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가 절대적 가치일 수는 없다. 국가 전략의 우선순위가 바뀌면 동맹의 운용 방식도 조정되어야 한다.
동맹을 폐기하자는 논의가 아니다. 조선의 사례가 주는 교훈은 동맹에 더 정교한 접근을 요구한다. 동맹을 유지하느냐 마느냐의 이분법을 넘어 어떤 교환 계약으로 다시 쓸 것인가를 질문해야 한다. 상징정치의 거품을 걷어내고, 구체적인 조항을 통해 자율적 설계권을 확보하며, 비용과 위험의 구조를 투명하게 만드는 일이다. 의례는 결코 안전과 국익을 담보해주지 않는다는 명청 교체기 조선의 경고를 잊어서는 안 된다. 동맹이 진정으로 견고해지려면 변화된 환경에 맞춰 작동 규칙을 재설계하는 유연함을 갖춰야 한다.
필자 소개
직업 외교관으로 일했다. 1985년에 외무부에 처음 들어간 이후 약 15년 이상을 해외에서 지냈다. 보스턴, 파리, 텔아비브, 하노이, 워싱턴, 비슈케크(키르기스스탄), 바르샤바, 루안다(앙골라)가 그의 활동 공간이었다. 1962년에 태어난 저자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에 곧바로 외무부에 입부했다. 자연히 외무부 내에서의 경력도 경제외교 분야에 집중되었다. 코이카 창설, 우리나라의 OECD 가입, 한·미 FTA 협상의 과정에 관여했다. 아울러 한·미 원자력협정을 협상했고, 보건복지부에서 국제협력 업무를 총괄했으며, 2014년부터 2년간 앙골라에서 대사로 일했다. 이후 2018년 6월 외무부를 퇴직하고 국제기구인 세계스마트시티기구(WeGO)의 사무총장으로 행복도시를 창조하는 도시외교를 추진했다. 2021년 6월 말로 지난 36년간의 공직을 모두 마친 저자는 지금은 이창천이라는 필명으로 시, 소설, 에세이, 칼럼, 인류문명 비평서 등을 쓰는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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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 2026-03-23 07:59:56한미동맹이라는 프레임이 마치 종교처럼 작동하며 주권국가의 국익과 안보를 헤치고있는 개탄스러운 현실에 경종을 울리는 명 칼럼입니다. 국정 운영자들과 지식인들 모두 정신들 차려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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