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허위정보와 가짜뉴스를 민주주의의 적으로 규정하며 강한 문제의식을 드러낸 것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지난 대선 국면에서 제기됐던 이른바 ‘조폭 연루설’과 관련해 대법원이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 유죄를 확정한 이후 한국 사회는 다시 한 번 거짓 정보가 정치와 공론장을 얼마나 오래, 얼마나 깊게 오염시키는지를 확인했다.
정부도 지난 2월 말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인공지능(AI)을 악용한 허위조작정보와 선거 가짜뉴스 대응을 범정부 차원에서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검찰과 경찰 역시 허위사실 유포를 중대한 선거범죄로 규정하고 무관용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이 문제는 단순한 정쟁의 장면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기초 체력과 공동체의 정신 건강을 묻는 문제다.
말은 칼보다 빠르고 불보다 멀리 번진다. 인간 사회의 문명은 결국 말의 질서 위에 세워진다. 국가도 정치도 언론도 시장도 결국은 말로 움직인다. 말이 바르면 공동체가 바로 서고, 말이 흐트러지면 공동체의 기초는 무너진다.
이 단순한 진리를 인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불가는 이를 구업(口業)이라 불렀다. 몸으로 짓는 업을 신업, 생각으로 짓는 업을 의업이라 한다면 입으로 짓는 업은 구업이다. 불교 전통에서 널리 독송되는 천수경이 맨 앞에서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으로 시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구업진언은 말 그대로 입으로 지은 업을 깨끗이 하자는 다짐이다. 잘못된 언어생활을 씻고 진실한 말을 하겠다는 수행의 출발점이다.
이 가르침은 오늘의 정치 현실을 놀랄 만큼 정확하게 비춘다. 몸으로 저지른 폭력은 눈에 보이고, 문서로 남긴 위조는 증거가 남는다. 그러나 말로 퍼뜨린 거짓은 그보다 더 넓고 깊게 번진다.
허위의 말은 귀를 타고 마음으로 스며들며 분노와 혐오를 일으키고 공동체의 신뢰를 갉아먹는다. 숲은 불이 지나간 뒤 다시 자랄 수 있지만 거짓말이 휩쓸고 간 공론장은 복구가 훨씬 어렵다. 신뢰가 무너지면 제도도 흔들리고, 제도가 흔들리면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는다.
최근 한국 정치가 바로 그 위험한 구업의 늪에 빠져 있다.
특정 인물을 겨냥한 의혹 제기가 사실 확인보다 먼저 정치적 무기로 사용되고, 한 번 던져진 의혹은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일부 온라인 매체를 거치며 증폭된다. 나중에 법원이 허위라고 판단해도 이미 퍼질 만큼 퍼진 뒤다.
실제로 대법원은 지난 3월 12일 2022년 대선 국면에서 제기된 이재명 대통령의 ‘조폭 연루설’과 관련해 장영하 씨에게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 유죄를 확정했다.
그러나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내려졌다고 해서 이미 사회에 퍼진 오염까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거짓은 순식간에 달리고 진실은 늘 뒤늦게 도착한다.
이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문제 삼은 것은 단지 개인의 명예훼손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토대를 갉아먹는 구조적 병폐다.
대통령은 최근 대한상공회의소의 왜곡성 자료 논란과 관련해서도 “의도적 가짜뉴스는 민주주의의 적”이라는 취지로 비판했고 이후 대한상의는 사과문을 내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이 사례는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떠나 공적 공간에서 왜곡된 정보가 생산·유통되는 관행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
거짓이 정치적 목적을 띠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 된다.
공자는 정명(正名)의 중요성을 말했다. 이름이 바로 서지 않으면 말이 바로 서지 않고 말이 바로 서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치는 본래 말의 예술이다. 그러나 동시에 말의 책임을 지는 영역이어야 한다. 정치 지도자가 던지는 한 문장, 정당이 내놓는 한 장의 논평, 후보가 SNS에 올리는 한 줄의 글은 수백만 국민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오늘의 정치권은 이 책임을 너무 쉽게 잊는다. 논리로 설득하기보다 의혹으로 몰아붙이고 사실로 경쟁하기보다 프레임으로 상대를 공격한다. 그 과정에서 말은 공론의 도구가 아니라 선동의 무기가 된다.
이것이 바로 구업의 정치화다.
정치권의 문제만이 아니다. 언론의 책임은 더 무겁다. 민주주의에서 언론은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검증자다. 정치가 주장하면 언론은 사실 여부를 따지고 근거를 확인하며 공론장을 정화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일부 언론은 ‘누가 이렇게 말했다’는 따옴표 뒤에 숨어 검증 책임을 회피한다.
이른바 따옴표 저널리즘이다.
자극적인 발언을 그대로 제목으로 뽑고 클릭을 모은 뒤 나중에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져도 조용히 묻어버리는 보도 관행은 언론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디지털 공간이다.
오늘날 허위조작정보는 더 이상 전단지나 유언비어 수준이 아니다. 유튜브와 SNS, 메신저, 그리고 인공지능 기술이 결합하면서 가짜뉴스의 생산 속도와 확산 범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정부는 AI 기반 허위조작정보 대응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관계부처 협의체를 가동했고 방송통신위원회 등을 중심으로 플랫폼 책임 강화와 팩트체크 체계 정비를 추진하고 있다. 검찰과 경찰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딥페이크와 허위사실 유포를 집중 단속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그러나 자유는 책임과 분리될 수 없다.
허위 정보를 조직적으로 유포하고 선거와 정책 판단을 오염시키며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악의적으로 낙인찍는 행위까지 언론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할 수는 없다.
특히 스스로를 언론이라 부르면서 등록도 편집 책임도 사실 검증 절차도 없이 음모론을 생산하는 유사 언론은 더 엄격하게 다뤄질 필요가 있다.
기성 언론이든 1인 유튜버든 플랫폼 채널이든 공적 영역에서 허위사실을 조직적으로 퍼뜨려 사회적 피해를 낳았다면 법과 원칙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것은 검열이 아니라 공동체의 자기 방어다.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도 이미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디지털 플랫폼의 허위정보 대응 책임을 강화하고 있으며 독일과 프랑스 역시 선거 가짜뉴스에 대해 강한 규제와 신속한 차단 장치를 도입했다.
자유방임은 자유주의가 아니다.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질서를 세우는 것이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다.
여기서 다시 불가의 지혜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정구업진언은 단순한 종교 의식의 서두가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 언어 윤리에 대한 선언에 가깝다. 진리를 말하려면 먼저 말하는 자의 입이 정결해야 한다는 요구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의를 말하는 입이 거짓에 젖어 있다면 그 정의는 선동이 된다. 자유를 외치는 입이 왜곡과 혐오를 퍼뜨린다면 그 자유는 방종이 된다.
정치 지도자는 말의 무게를 알아야 한다. 정당은 논평의 품격을 회복해야 한다. 언론은 클릭보다 검증을 앞세워야 한다. 플랫폼 역시 유통자로서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허위 폭로를 정치 기술로 쓰는 관행, 검증되지 않은 의혹을 받아쓰는 보도 관행, 조회 수를 위해 선동과 증오를 거래하는 디지털 생태계는 이제 멈춰야 한다.
물론 기준은 명확해야 한다. 권력을 비판하는 정당한 의혹 제기와 고의적 허위조작정보는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 가짜뉴스 논리가 비판을 봉쇄하는 수단으로 악용돼서도 안 된다.
그러나 이런 우려가 있다고 해서 명백한 허위와 악의적 유포 행위까지 방치할 이유는 없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결국 신뢰의 질에 달려 있다. 국민이 정치인의 말을 믿지 못하고 언론 보도를 신뢰하지 못하며 온라인 정보를 늘 의심해야 하는 사회는 장기적으로 발전할 수 없다.
신뢰는 경제와 외교, 사회 질서를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자본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가짜뉴스 추방 의지가 진정성을 가지려면 특정 사건에 대한 분노를 넘어 제도 개혁과 언론 윤리 회복, 플랫폼 책임 강화, 정치권의 자정 노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동시에 여야와 진영을 막론하고 같은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가짜뉴스는 진영의 무기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적이다.
불경은 말의 청정을 먼저 요구한다.
입으로 지은 업을 씻지 못하면 아무리 거창한 진리도 입술에서 더러워진다.
오늘의 한국 정치는 다시 그 원초적 가르침 앞에 서야 한다. 정치의 말이 거짓으로 흐르면 정치의 마음도 이미 병든 것이다.
진리 위에 정치가 서고, 정의 위에 권력이 서며, 자유 위에 공동체가 서야 한다.
그 출발점은 멀리 있지 않다.
정치권의 거짓말 잔치를 끝내고 기성 언론과 1인 유튜버, 유사 언론과 디지털 플랫폼까지 모두 법과 윤리의 동일한 기준 아래 세우는 것, 바로 거기에서 시작된다.
거짓을 정치와 언론, 그리고 정보 시장 전체에서 추방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도 안전할 수 없다.
이제는 지양해야 한다.
구업의 정치, 허위의 언론, 선동의 시장을 끝내고 사실과 책임의 공론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진리와 정의, 그리고 자유를 함께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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