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월세 100만원도 없어요"...'빌라 성지' 화곡동도 공급 끊겼다

  • 신축·기축 빌라 임대 물량 동반 감소…"1년 새 월 임대료만 30% 가까이 올라"

 
강서구 화곡동 일대 빌라촌 전경 사진우주성 기자
강서구 화곡동 일대 빌라촌 전경. [사진=우주성 기자]

“그나마 엘리베이터가 있거나 지어진 지 10년 이내 연립은 지난달부터 월세가 무조건 100만원을 훌쩍 넘어간다니까요. 작년에도 제법 올랐지만 요즘은 체감상 물량도 없어서 이마저도 2~3개월은 기다려야 합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빌라촌에서 만난 50대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사무실에 걸린 화곡동 일대 지도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한때 서울 신축 빌라 공급의 중심지였던 화곡동은 업계에서 ‘빌라 성지’로 불렸다. 비교적 저렴한 토지 가격과 소규모 필지가 촘촘한 주거지 구조 덕분에 다세대·연립주택 신축이 대거 이뤄지며 서민 주거의 대표적인 공급지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세 사기 사태와 규제 강화 여파가 겹치면서 이런 민간 공급 생태계가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지난 13일 찾은 화곡8동 역세권 빌라촌. 골목마다 공인중개업소 간판이 줄지어 있었지만 실제 거래 가능한 매물은 쉽게 찾기 어려웠다. 중개업소 창문에는 ‘신축빌라’, ‘신축 월세 문의’ 등의 낡은 광고 문구가 붙어 있었지만 신축은 물론 구축 빌라의 임대 물량조차 부족한 상황이었다. 특히 주차 시설이 열악한 언덕 지역일수록 양질의 월세 매물을 구하기는 사실상 ‘별 따기’ 수준이다. 이날 기자가 방문한 중개업소에서도 주차 가능한 임대 물량을 찾는 고객과 업자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현지 중개업자들에 따르면 강서구 일대 빌라 착공 물량은 2021년과 비교하면 70~80% 가까이 감소했다. 사실상 민간 공급 생태계가 멈춰 선 셈이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강서구뿐 아니라 인근 지역에서도 빌라 시행업자와 임대사업자들이 전업하거나 폐업하는 사례가 늘면서 민간 공급이 사실상 끊겼다”며 “땅값은 올랐는데 지어봤자 팔리지도, 전세를 놓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누가 새로 짓겠느냐”고 말했다.

실제 공급 감소 흐름은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의 빌라(연립·다세대) 준공 물량은 4329가구로 전년(5550가구) 대비 22% 감소했다. 특히 연립주택 준공 물량은 같은 기간 1183가구에서 613가구로 48% 가까이 급감했다.

공급의 선행지표인 인허가와 착공 실적 역시 크게 줄었다. 지난해 서울 비아파트 인허가 물량은 6442가구로 최근 5년 평균(1만6147가구)보다 60% 이상 감소했다. 착공 물량도 5년 평균 1만5873가구에서 지난해 4985가구로 줄었다. 인허가부터 착공, 준공까지 모든 단계에서 공급 감소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현장에서는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금융·세제 규제 역시 비아파트 임대 공급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화곡동에서 7년째 중개업을 하고 있는 A씨는 “빌라는 실거주 수요보다 임대 공급자 역할을 하는 다주택자들이 시장을 떠받치는 구조인데 정책적으로 퇴로가 막히면서 공급이 빠르게 줄고 있다”고 말했다.

 
강서구 화곡동 역세권 인근 빌라촌 사진우주성 기자
강서구 화곡동 역세권 인근 빌라촌. [사진=우주성 기자]
 
공급이 줄어들자 부담은 결국 세입자에게 돌아가고 있다. 전세 사기 여파로 전세 수요는 크게 줄었지만 이를 대체할 월세 가격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연립·다세대 월세가격지수는 올해 1월 103.32를 기록하며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까치산역 인근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요즘 빌라 전세가 귀한 데다 임차인들이 잘 나가지 않으니 월세 구하기가 사실상 전쟁”이라며 “전세와 월세가 동시에 오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 한도가 주택 공시가격의 126%로 제한되면서 보증금을 크게 올리기 어려워 월세를 20~30만원 추가해 내놓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특히 소득 수준이 낮은 지역일수록 주거비 부담이 더 높게 나타나는 ‘주거비 역설’도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 서울 서남권(강서·관악·구로)의 30㎡ 이하 초소형 빌라 전월세 전환율은 평균 5.2~5.5%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는 고가 주택이 밀집한 강남4구(4.4~4.6%)는 물론 서울 전체 아파트 평균(4.7~4.8%)보다 높은 수치다.

현장에서는 비아파트 시장이 무너지면 결국 아파트 시장으로 수요가 이동하면서 전세난이 더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강서구청 인근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역세권 기준으로 방 두 개에 옵션이 있는 매물이 1년 전에는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70~80만원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같은 조건에도 월세가 110만원 이상을 요구하는 상황”이라며 “민간 비아파트 시장에서도 임대주택 공급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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