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 칼럼]정주영 회장이 자랑스러워 할 기업가정신

"정주영 회장께서 자랑스러워 하실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27일 전북 새만금에서 열린 ‘로봇·수소·AI 시티 투자 협약식’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의 대규모 투자 계획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현대차의 결단은 호남권 전체의 경제 지도를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라며 기업의 과감한 투자에 정부가 더 과감한 지원으로 화답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이 한 문장은 단순한 환영사가 아니다. 한국 산업을 움직여 온 기업가정신의 계보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정주영에서 정몽구를 거쳐 정의선으로 이어지는 세 세대의 경영은 단순한 기업사의 흐름이 아니라 한국 산업이 진화해 온 과정 그 자체와 겹쳐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27일 전북 군산새만금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새만금 로봇·수소·AI 시티 투자협약식에 앞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으로부터 자율주행휠로봇MobED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7일 전북 군산새만금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새만금 로봇·수소·AI 시티 투자협약식에 앞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으로부터 자율주행휠로봇(MobED)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 기업사에서 시대의 공기를 바꾼 질문이 있다.


“이봐, 해봤어?”


정주영의 이 한마디는 단순한 격려가 아니었다. 불가능을 계산하기 전에 가능성을 시험하라는 사고의 전환이었다. 조선소 하나 없던 나라에서 세계 최대 조선소를 세우고, 자동차 기술이 전무하던 시절에 글로벌 자동차 기업을 키워낸 힘도 결국 이 질문에서 시작됐다.


정주영에게 기업은 이익을 만드는 조직 이전에 국가의 미래를 개척하는 도구였다. 그는 남이 이미 닦아놓은 길을 따라가기보다 길 자체를 새로 만드는 데 인생을 걸었다.


울산의 백사장은 그 정신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당시 많은 사람에게 그곳은 모래뿐인 빈 땅이었다. 그러나 정주영의 눈에는 세계로 향하는 산업의 항구가 서 있었다.

그가 남긴 유산은 거대한 기업만이 아니다. 한국 경제가 스스로 길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그러나 기업가정신은 한 세대의 결단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다음 세대의 방식으로 진화해야 한다. 현대자동차그룹의 두 번째 장을 연 정몽구의 경영이 바로 그 과정이었다.


정몽구의 시대는 정주영의 개척정신을 ‘품질 혁명’으로 번역한 시기였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기업들은 생존의 시험대에 올랐다. 자동차 산업 역시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방향을 다시 정해야 했다. 정몽구는 그 해답을 분명히 했다.

“품질이 곧 생존이다.”


생산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혁신하고 글로벌 품질 기준을 강화한 결과 현대차의 브랜드 이미지는 세계 시장에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때 ‘값싼 차’로 인식되던 브랜드는 품질 경쟁력을 인정받으며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주요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정주영이 산업의 씨앗을 심은 창업가였다면, 정몽구는 그 씨앗을 세계 시장에서 자라게 만든 경영자였다.


그리고 이제 세 번째 장이 열리고 있다.


정의선이 이끄는 현대자동차그룹은 자동차 기업이라는 틀을 넘어 미래 기술 기업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전기차와 자율주행, 로보틱스와 인공지능, 그리고 수소 에너지까지. 산업의 중심이 기계에서 데이터와 소프트웨어로 이동하는 시대 속에서 현대차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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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노트북LM]


이번 새만금 투자는 그 변화의 상징적인 장면이다.


현대차그룹은 약 9조 원 규모의 투자를 통해 새만금에 로봇 제조 공장과 AI 데이터센터, 수소 에너지 기반 산업을 구축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공장에서 생산된 로봇이 AI 데이터센터와 연결돼 끊임없이 학습하는 산업 구조다. 제조와 데이터, 에너지와 인공지능이 결합하는 새로운 산업 모델이다.


이 장면은 자연스럽게 과거 울산의 백사장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울산 역시 아무것도 없는 공간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곳에서 시작된 조선 산업은 한국을 세계 조선 강국으로 만들었다.


오늘 새만금 역시 그런 가능성을 가진 공간이다. 여의도의 140배에 달하는 광활한 부지, 신산업 실증이 가능한 여지, 에너지 전환의 잠재력, 그리고 무엇보다 처음부터 새로 설계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정주영식 개척의 문법은 언제나 이런 ‘빈 땅’에서 강했다.

이미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공간에서는 도전이 속도를 잃기 쉽다. 반대로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공간은 가능성이 가장 많은 공간이다.


그러나 기업의 투자만으로 산업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산업이 성장하려면 정부와 지역 사회의 역할이 동시에 필요하다.


규제 체계는 명확해야 하고 행정은 신속해야 한다. 전력과 데이터, 물류 인프라가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하며 인재가 머물 수 있는 교육과 주거 환경도 갖춰져야 한다. 기업이 새로운 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투자만큼 중요한 것이 예측 가능한 환경이다.


이 점에서 대통령이 약속한 “규제와 행정 지원의 문턱을 파격적으로 낮추겠다”는 발언은 선언이 아니라 실행으로 이어져야 한다.

기업가정신 역시 시대에 따라 진화한다.


정주영의 시대가 산업 개척의 시대였다면, 정몽구의 시대는 품질 경쟁의 시대였다. 그리고 정의선이 맞이한 시대는 기술 전환의 시대다.


로봇과 인공지능, 수소 에너지와 자율주행은 단순한 신사업이 아니다. 산업 구조 자체를 다시 쓰는 기술이다. 이 변화 속에서 기업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공장을 세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데이터와 기술, 인재 생태계를 동시에 만들어야 한다.


결국 기업가정신은 개인의 결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국가의 제도와 금융의 투자, 지역의 수용성, 사회의 신뢰가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산업으로 이어진다.


정주영이 남긴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봐, 해봤어?”


그 질문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한국 경제가 앞으로도 계속 던져야 할 질문이다.


새만금에서 시작되는 이번 투자가 성공한다면 그것은 단지 새로운 공장이 들어서는 사건이 아닐 것이다.


한국 기업가정신이 세 세대를 거쳐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상징이 될 것이다.


모래밭에서 시작된 도전은 산업이 되었고 산업은 국가의 경쟁력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다시 그 질문 앞에 서 있다.

모래 위에서도 꽃을 피울 수 있는가.

정주영은 그 답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정몽구는 그것을 세계 시장에서 증명했다.

정의선은 이제 그것을 미래 산업으로 확장하고 있다.


새만금이 그 다음 무대라면, 한국 경제 역시 다시 답해야 한다.

“해봤는가.”

그리고 그 질문에 다시 도전하는 나라만이 다음 시대의 산업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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