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프리뷰] 엘리엇 ISDS 아직 안 끝났다…승부는 '환송 중재 인과관계'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를 상대로 한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 취소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약 1600억원 규모 배상 부담을 일단 덜어냈다. 영국 법원이 국민연금공단을 국가기관으로 볼 수 없다는 정부 주장을 받아들이며 기존 중재판정의 핵심 전제를 무너뜨린 것이다. 다만 판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고 사건이 다시 중재 절차로 돌아가면서 분쟁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번 승소의 의미와 한국 ISDS 대응 전략, 그리고 향후 환송 중재의 승부처를 짚어본다.
 
‘국가기관성’ 뒤집은 판결…왜 의미 있는 승소인가

이번 영국 법원 판결의 본질은 배상액 규모가 아니라 국가기관 범위에 대한 국제법적 판단 구조 변화에 있다. 기존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국민연금공단을 사실상 국가기관으로 간주하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의결권 행사를 한국 정부 행위로 평가했다. 이 전제가 유지되는 한 정부 책임 인정은 구조적으로 피하기 어려운 구도였다.

그러나 영국 법원은 국민연금공단이 정부와 별도의 법인격을 가진 점, 공적연금 운용이 치안·국방과 같은 국가 핵심 기능에 해당하지 않는 점, 일상적 의사결정이 정부에 완전히 종속돼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근거로 국가기관성을 부정했다. 이는 단순 사실 판단을 넘어 국가 책임 귀속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한 판례적 의미를 갖는다.

결과적으로 PCA 판정의 핵심 토대가 붕괴되면서 기존 배상 판단은 유지될 수 없게 됐다. ISDS 취소소송 인용률이 통상 3% 안팎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절차적으로도 드문 승소다. 특히 국민연금의 투자 의사결정이 곧바로 국가 행위로 귀속될 수 없다는 법리가 국제 재판 단계에서 확인됐다는 점은 향후 유사 분쟁 대응에도 중요한 선례로 평가된다.
 
‘지속적 주장’ 전략 통했다…한국 ISDS 대응 방식의 변화

이번 승소는 단순 법리 공방 결과라기보다 장기적 전략의 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중재 초기부터 국민연금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강조하는 논리를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국내 정치·형사 재판에서 제기된 국민연금 의결권 개입 사실과 별개로, 국제법상 국가 책임 귀속 요건은 엄격히 구분돼야 한다는 접근이었다.

이는 ISDS 분쟁에서 흔히 나타나는 ‘국내 위법성 → 국제 책임’ 자동 연결 구조를 차단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국제 투자중재는 국가 책임 인정 범위를 둘러싼 법리 경쟁 성격이 강하며, 공기업·연기금·공공기관의 행위가 어디까지 국가 책임으로 귀속되는지는 반복적으로 다뤄져 온 쟁점이다.

한국은 론스타 사건을 포함한 주요 ISDS 경험을 통해 대응 체계를 점차 정교화해 왔다. 범정부 협업 구조, 국제중재 전문 로펌 활용, 사건별 논점 집중 전략 등이 축적되면서 이번 사건에서도 핵심 쟁점을 선별해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방식이 작동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관할 및 국가기관성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전략은 비용 대비 효과가 큰 방어 방식으로 평가된다.
 
승부는 ‘환송 중재 인과관계’…본게임은 이제 시작

그러나 분쟁의 핵심은 이제 정부 개입과 투자 손해 사이 인과관계 입증 문제로 이동했다. 영국 법원은 국민연금의 국가기관성은 부정했지만, 청와대와 보건복지부의 합병 관련 개입 행위가 투자협정상 ‘관련성 있는 조치’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이는 환송 중재에서 정부 행위 자체의 존재 여부는 이미 일정 부분 전제된 상태임을 의미한다.

향후 중재의 쟁점은 정부 영향력이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에 실제로 어떤 수준으로 작용했는지, 그리고 그 의결권 행사가 엘리엇의 투자 손해와 어느 정도 인과관계를 갖는지에 집중될 전망이다. 즉 정부 개입 → 국민연금 의결 → 합병 성사 → 투자 손해라는 연결고리를 어느 쪽이 더 설득력 있게 설명하느냐가 승부처다.

엘리엇 입장에서는 국내 형사재판에서 인정된 압력 행사 사실, 합병 비율 논란, 주가 변동 분석 등을 결합해 영향력 구조를 강조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정부는 국민연금 의사결정 과정의 독립성, 합병 찬성의 투자 판단 요소, 시장 요인에 따른 주가 변동 가능성 등을 제시하며 인과관계 단절을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ISDS 특성상 경제 분석과 정책 판단, 법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만큼 환송 중재는 사실상 새로운 본안 심리 단계에 해당한다. 판정 이후에도 취소 또는 추가 소송이 이어질 수 있어 분쟁 종료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도 있다.

이번 판결은 한국 정부가 국제 투자중재에서 의미 있는 방어 성과를 거둔 사례로 평가되지만, 동시에 분쟁 구조가 보다 정교한 법리 경쟁 단계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국가기관성이라는 전장을 통과한 엘리엇 사건은 이제 정부 영향력과 투자 손해 사이 인과관계라는 보다 미세한 법리 전선에서 최종 결론을 향해 나아가게 됐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