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정부·국회가 정책 실패를 인정하는 것도 용기다

강일용 기자 사진아주경제DB
강일용 기자 [사진=아주경제DB]

대한민국은 규제 공화국이다. 기업이나 스타트업이 신사업에 진출하려면 사업 아이디어로 돈을 벌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보다 법에 어긋나지 않는지 법령을 뒤져보는 게 우선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한국이 이렇게 규제 공화국이 된 배경에는 국회가 ‘입법 공장’식으로 법안을 쏟아낸 것이 있다. 21대 국회 기준 4년 동안 법안이 총 2만5000건 발의됐다. 국회의원 1인당 연평균 22건을 발의한 것이다. 20년 전과 비교해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이 가운데 약 10건 중 1건이 최종 가결됐다.

법안이 증가하는 게 바로 규제 증가로 이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 법안 중에는 기업 활동을 돕는 진흥 법안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흥 법안은 정부와 긴밀히 소통해 예산을 우선 확보해야 하는 이슈가 있는 만큼 발의와 통과가 상대적으로 쉬운 규제 법안이 늘어날 가능성이 큰 것만은 사실이다.

지난해 7월 기업 활동을 옥죄는 대표적인 악법으로 평가받은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이 폐지됐다. 과거 정부·국회는 정보 비대칭에 따른 스마트폰 구매 가격 차를 막고 소비자 후생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학계·언론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단통법을 밀어붙였다.

결과는 참혹했다. 삼성전자와 애플 외에 다른 스마트폰 제조사는 사업을 포기하거나 망했다. 이동통신사는 보조금 경쟁을 포기하고 신규 사업 진출에만 열을 올렸다. 경쟁이 줄어든 시장 상황 속에서 스마트폰 구매 가격은 싸지기는커녕 비싸지기만 했다. 전에는 일부 소비자라도 싸게 살 수 있었는데 이제는 모든 소비자가 비싸게 사는 상황에 처했다.

2020년대에 들어 단통법은 실패한 정책이라는 목소리가 들끓었지만 정부·국회가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법안을 실제 폐기하기까지는 약 5년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은 정부·국회 누구도 지지 않았다.

이제 또 하나의 악법이 폐지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당·정·청이 대형마트의 새벽 영업을 막은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해 대형마트에 새벽배송을 허용하도록 규제를 완화할 방침이다. 유통산업발전법은 전통시장을 살린다는 당초 입법 취지와 달리 쿠팡이라는 온라인 유통 공룡을 키우고 오프라인 대형마트의 성장을 억누르는 역할만 했다. 현재 청산 위기에 처한 홈플러스 실적이 악화된 것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

유통산업발전법이 개정되어서 대형마트에 새벽배송이 허용되면 전국 곳곳에 위치한 오프라인 매장 창고를 적극 활용해 신선 식품 새벽배송이 활성화될 전망이다. 대형마트와 쿠팡이 경쟁 구도를 형성하며 소비자 복지가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기업 규제 법안을 만드는 것은 쉽지만 이로 인한 소비자와 기업의 피해를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부·국회가 규제 법안을 만드는 것에 더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소비자와 소상공인을 보호하고 시장 경쟁을 활성화하겠다는 정부·국회의 의지를 폄훼할 생각은 결코 없다. 단지 선의가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정부·국회가 정책과 이를 뒷받침하는 법안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지했다면 즉시 이를 인정하고 소비자·기업과 함께 피해를 빠르게 복구할 방안을 찾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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