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컬럼] '숫자'라는 마취제와 샌드위치의 공포

  • — 미·중 초크포인트에 선 삼성, 그리고 기업가정신의 조건

고대 로마인들은 승리의 순간을 가장 경계해야 할 시간으로 여겼다. 전쟁에서 돌아온 장군에게 쏟아지는 환호와 영광 속에서도, 인간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향해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경고가 늘 따라붙었다. 이를 상징하는 말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였다.
승리의 도취가 판단을 흐릴 수 있다는 점을 로마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 패배보다 성공 앞에서 더 쉽게 무너지는 것이 인간이라는 통찰도 그 안에 담겨 있었다.
 
지금 삼성전자라는 거대한 배 위에서도 비슷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최근 임원 세미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숫자가 좀 나아졌다고 자만할 때가 아니다. 지금이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겉으로만 보면 고개가 갸웃해지는 말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매출 93조 원, 영업이익 20조 원이라는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수년간의 반도체 부진을 떠올리면 충분히 안도의 한숨을 내쉴 만한 숫자다. 많은 기업이라면 이 정도면 샴페인을 터뜨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최고경영자의 눈에 이 숫자는 ‘회복’이 아니라 ‘마취제’로 보였던 모양이다. 통증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질 뿐, 병이 나은 것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그래서 그는 18년 전,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이 꺼내 들었던 ‘샌드위치 위기론’을 다시 소환했다.
 
2007년의 샌드위치, 그리고 지금의 샌드위치
 
문제는 그 샌드위치의 내용물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데 있다.
2007년, 이건희 회장이 말한 샌드위치는 비교적 단순했다. 기술은 일본이 앞서가고, 가격은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따라붙는 구조였다. 한국 기업은 그 사이에서 ‘이도 저도 아닌’ 위치에 놓여 있다는 경고였다.
 
지금의 샌드위치는 차원이 다르다. 한쪽에는 기술과 규칙을 동시에 쥔 미국, 다른 한쪽에는 가격을 넘어 기술마저 턱밑까지 쫓아온 중국이 있다. 이것은 단순한 경쟁이 아니라 생존을 건 ‘오징어 게임’에 가깝다.
 
중국은 더 이상 ‘값싼 대체재’가 아니다.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인공지능(AI)까지 국가 차원의 지원을 등에 업고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 미국은 기술 우위 위에 ‘규칙’이라는 무기를 얹었다. 동맹국 기업에게조차 공급망 재편, 투자 이전, 비용 분담이라는 청구서를 내민다.
 
중국을 국빈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5일 베이징 조어대에서 열린 한·중 비즈니스 포럼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중국을 국빈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5일 베이징 조어대에서 열린 한·중 비즈니스 포럼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 기업은 선택을 강요받는다. 어느 쪽에도 완전히 설 수 없고, 양쪽의 비용은 동시에 떠안아야 한다. 이재용 회장이 다시 ‘샌드위치’를 꺼낸 이유다.
샌드위치인가, 초크포인트인가
그러나 여기서 이야기를 멈추면 현실을 절반만 보는 셈이다.
삼성은 단순히 강대국 사이에 끼어 압박받는 피해자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삼성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미국과 중국 모두가 쉽게 대체할 수 없는 핵심 노드다. AI 산업도, 첨단 제조도 삼성의 생산 역량과 공정 안정성 없이는 돌아가기 어렵다.
 
경제학 용어로 말하면, 삼성은 지금 초크포인트(chokepoint)에 서 있다. 막히면 모두가 숨이 막히는 지점이다. 이 자리는 가장 위험한 자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강한 협상력이 발생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위치를 전략 자산으로 쓸 것인가, 아니면 압박을 견디다 소진될 것인가다.
 
이 지점에서 다시 꺼내야 할 단어가 있다. 기업가정신이다. 다만 우리가 익숙하게 써온 영웅담이나 미담의 언어로서는 아니다. 기업가정신이란 불확실한 환경에서 누군가는 결정을 내려야 하고, 그 결정의 비용과 실패 가능성을 스스로 떠안는 태도다. 정부가 방향을 제시하지 못할 때 먼저 길을 내고, 시장이 보장해주지 않아도 위험을 감수하는 선택의 능력이다.
 
그러나 이 기업가정신은 공중에 떠서 작동하지 않는다. 국가의 산업·통상 전략, 최소한의 제도적 예측 가능성 위에서만 힘을 발휘한다. 그 토대가 없으면 기업가정신은 혁신이 아니라 무모함으로, 결단이 아니라 도박으로 전락한다. 지금 한국 사회가 기업에게 요구해야 할 것은 ‘희생’이 아니라, 기업가정신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마지막 기회”라는 말의 진짜 의미
 
이재용 회장이 말한 “마지막 기회”는 감정적인 위기 호소가 아니다. 그 말의 본질은 시간 제한(Time Limit)이다.
기술 전환의 속도, 지정학적 재편의 속도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라졌다는 인식이다. 선택을 미루는 순간, 선택지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와 정치는 여전히 기업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거위가 이미 샌드위치 속에 끼어 숨이 넘어가는데도, 알을 더 내놓으라며 배를 가르려 든다.
AI 중심 경영, 인재 확보, 기업문화 혁신 같은 내부 처방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미·중 패권 전쟁의 파고를 넘으라는 것은, 수영 선수에게 태풍 속 바다를 헤엄쳐 건너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기업의 각오만으로는 부족하다. 국가 차원의 산업·통상 전략이 함께 가야 한다.
 
숫자가 좋을 때, 위기를 말할 수 있는가
 
숫자가 나쁠 때 위기를 말하는 것은 쉽다. 숫자가 좋아졌을 때 위기를 말하는 것은 어렵다.
이재용의 경고는 엄살이 아니다. 18세기 프랑스를 뒤흔든 ‘미시시피 거품’처럼, 실적 회복이 일시적인 착시에 불과했던 사례는 역사에 차고 넘친다. 마취제가 풀릴 때 병이 더 깊어져 있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삼성이 다시 독해질 수 있을지, 그리고 한국 산업이 이 지독한 샌드위치 신세를 벗어날 수 있을지. 노아의 방주 문이 닫히기 직전처럼,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아 보인다.
이번에는 정말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치던 소년의 거짓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메멘토 모리.
지금이 바로, 죽음을 기억해야 할 순간일지 모른다.
그래픽노트북LM
[그래픽=노트북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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