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힘의 문법으로 돌아가는 세계, 외교의 기준을 세울 때

미국의 베네수엘라 군사 개입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체포 보도는 단일 국가의 정치적 격변을 넘어 국제질서의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실관계의 최종 확인과는 별개로, 국제사회가 이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이미 달라졌다는 점이 중요하다.

과거 같았으면 먼저 제기됐을 국제법 위반 여부와 절차적 정당성 논쟁은 상대적으로 뒤로 밀리고, ‘가능성’과 ‘현실성’이 앞서 거론된다. 이는 국제질서가 규칙의 언어에서 힘의 문법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한 강대국이 국제법을 노골적으로 무시했는가의 문제를 넘어선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왜 이런 방식의 개입이 가능해졌느냐는 것이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미국은 마두로 정권을 합법 정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전제로, 마약·테러 프레임을 결합해 정권 교체를 정당화했다. 국가원수 인정 여부를 자의적으로 재단하고, 그 비인정을 근거로 면책특권을 부정한 뒤 ‘사법 집행’이라는 이름으로 군사력을 동원하는 방식이다. 이 논리가 관행으로 굳어질 경우 국제법은 보편 규범이 아니라 강대국의 선택적 도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와 유사한 장면은 가자지구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국제사법재판소와 국제기구가 민간인 보호와 인도적 조치를 요구하고 있음에도 국제법의 언어는 정치적 이해관계 앞에서 번번이 무력화된다. 한쪽에서는 국제법이 과잉 적용되고, 다른 쪽에서는 면책이 구조화된다. 방향은 달라도 결론은 같다. 규범은 약자에게 엄격하고, 강자와 그 동맹에게는 유연해진다. 국제질서의 신뢰는 이 지점에서 균열된다.
 
이러한 변화는 중남미에 국한되지 않는다. 동아시아의 전략 환경 역시 같은 흐름 속에 놓여 있다. 대만해협과 한반도에서는 실제 충돌 여부와 무관하게 ‘무력 사용의 문턱이 낮아졌다고 느끼는 인식’ 자체가 군사적 긴장을 증폭시킨다. 각국은 상대의 의도를 최악으로 가정하며 대비를 강화하고, 그 과정에서 대화와 외교의 공간은 점점 좁아진다. 위기는 사건이 아니라 구조가 된다.
 
이럴 때일수록 한국 외교의 기준은 분명해야 한다. 강대국의 세계에서 중견국이 살아남는 길은 원칙 없는 기회주의가 아니라 원칙 있는 실용주의다. 국제법과 절차, 민간인 보호, 주권 존중은 도덕적 장식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안전망이다. 내게 유리할 때만 규범을 들고 불리할 때 침묵한다면, 언젠가 같은 논리가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동시에 현실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동맹과 협력은 냉정하게 관리해야 하며, 감정적 거리두기나 도덕적 우월감으로 외교를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실을 이유로 기준을 포기하는 순간, 외교는 관리가 아니라 종속이 된다.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원칙을 분명히 하되, 대화와 조정을 통해 충돌을 예방하는 능력이다.
 
역사의 신은 진리·정의·자유가 인간의 존엄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제재와 봉쇄, 전쟁은 언제나 민생과 생명을 먼저 파괴한다. 인간과 문화, 자연을 존중하는 관점은 군사적 승패보다 이후의 질서와 회복을 묻는다. 외교의 성패는 얼마나 빨리 상대를 제압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폭력 없이 갈등을 관리했는지에 달려 있다.
 
국제질서가 흔들릴수록 언론과 지식인의 책임도 무거워진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현상 유지에 대한 동조가 될 수 있다. 사실을 검증하고, 권력의 언어를 그대로 옮기지 않으며, 인간의 고통을 부수적 피해로 축소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세계가 힘의 문법으로 돌아갈수록 한국은 기준을 세워야 한다. 원칙은 비용이 들지만, 그 비용을 지불하지 않을 때 치러야 할 대가는 훨씬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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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지피티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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