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정부는 ‘소버린 AI’를 내세우며 5개 컨소시엄을 선정했고, 대규모 지원을 예고하고 있다. AI 주권을 확보하겠다는 방향성 자체는 옳다. 그러나 방향이 옳다고 해서 결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지원 방식과 정책 설계로 과연 소버린 AI가 가능한지, 냉정한 점검이 먼저다.
정부의 구상은 겉으로 보면 선택과 집중이다. 6개월 단위로 성과를 평가해 단계적으로 탈락시키고, 최종적으로 소수 팀에 자원을 몰아주겠다는 경쟁 구조다. 문제는 이 방식이 초거대 AI 개발의 현실과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AI 성능은 단기간에 직선적으로 좋아지지 않는다. 초기에는 데이터 정제, 구조 설계, 알고리즘 안정화 같은 ‘기초 공사’에 시간이 든다. 이 구간에 단기 성과 압박이 걸리면, 근본 경쟁력보다 평가용 지표·시연 성과에 매달리는 왜곡이 생기기 쉽다.
지원 내용의 균형도 다시 봐야 한다. 정부 지원이 GPU 등 연산 자원에 무게가 실리면, “연료는 넣어주되 엔진 설계는 전적으로 민간에 맡긴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물론 GPU는 필수다. 그러나 국내 AI의 약점이 단순히 ‘연산 부족’만은 아니라면, 해법도 GPU만으로는 부족하다. 논리적 추론, 알고리즘 완성도, 고품질 학습 데이터와 검증 체계가 함께 따라야 한다. 수능 수학 문제조차 제대로 풀지 못한 AI에 연산 자원만 얹는다고, 질적 도약이 자동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정책이 기술의 시간표가 아니라 정치의 시간표에 끌려갈 때다. AI는 임기 내 성과를 내기 어려운 분야다. 실패와 축적을 전제로 한 장기전이어야 한다. 그런데 ‘AI 3대 강국’, ‘소버린 AI’ 같은 구호가 앞서고, 조급한 성과 압박이 정책 전반을 지배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제대로 만들 시간도, 제대로 고칠 여지도 줄어든다.
수능 ‘낙제점’에 가까운 성적표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다. 정책 설계가 현실을 따라가고 있는지를 묻는 경고다. 소버린 AI는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GPU 지원이나 경쟁 평가만으로도 완성되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의 정교화다. 기술 주권의 범위를 분명히 하고, 장기 실패를 감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 소버린 AI의 출발점이다. 기본과 원칙을 바로 세우지 못한다면, 소버린 AI는 또 하나의 국가 프로젝트 구호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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