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숨결과 고즈넉한 사찰… 외국인이 반한 성북의 매력

  • 간송미술관 국보 감상·길상사 차담 '깊이 있는 여행지' 주목

  • 한국美와 Me를 찾는 남산·한남·성북·정동·삼청 아트투어

  • 올 시범 운영에 40개국 161명 외국인 찾아 사업 가능성 입증

아트 인 서울Arts in Seoul 2025 외국인 참가자들이 간송미술관 기획전 보화비장葆華秘藏을 관람하고 있다 사진강상헌 기자
'아트 인 서울(Arts in Seoul) 2025' 외국인 참가자들이 간송미술관 기획전 '보화비장(葆華秘藏)'을 관람하고 있다. [사진=강상헌 기자]
서울 중심부에서 조금만 북쪽으로 향하면 나오는 성북은 최근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조용하지만 깊이 있는 여행'의 목적지로 주목받고 있다. 담백한 아름다움이 매력적인 이곳에는 예술가들의 숨결을 품은 전시 공간과 마음을 가라앉히는 고즈넉한 사찰이 어우러져 한국의 아름다움과 나를 마주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기에 제격이다.

지난달 성북에 위치한 간송미술관과 길상사(吉祥寺)에는 13개국에서 온 22명의 외국인이 몰려들었다. 서울관광재단이 올해부터 시범 운영 중인 예술관광 프로그램 '아트 인 서울(Arts in Seoul) 2025'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아트투어 다섯 개 코스(남산, 한남, 성북, 정동, 삼청) 가운데 간송미술관과 길상사로 이어지는 성북 코스를 택했다.
 
아트 인 서울Arts in Seoul 2025 외국인 참가자들이 간송미술관 기획전 보화비장葆華秘藏을 관람하고 있다 사진강상헌 기자
'아트 인 서울(Arts in Seoul) 2025' 외국인 참가자들이 간송미술관 기획전 '보화비장(葆華秘藏)'을 관람하고 있다. [사진=강상헌 기자]
◆간송미술관에서 만난 국보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5번 출구에서 나와 성북의 언덕길을 따라 걷다 보면 소박하지만, 우아한 간송미술관의 외관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간송미술관은 1938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보화각'을 설립하며 시작됐다. 한국 최초의 가장 오래된 사립미술관이다.

외국인 참가자들은 이날 간송미술관에서 기획전 '보화비장(葆華秘藏)'을 관람했다. 간송이 지켜낸 유물을 비롯해 20세기 초 주요 컬렉터 7인의 소장품 26건 40점(국보 4점, 보물 4점)을 공개하는 전시다.

간송미술관 관계자는 "보화비장은 근대 한국 미술시장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소장가 7인의 대표 수집품을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참가자들은 전시를 보기 전 교육실로 먼저 이동했다. 간송미술관은 외국인들에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한국 고미술에 대한 전시 이해를 돕기 위해 작품의 시대와 수집 배경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사전 도슨트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설명은 외국인을 위해 모두 영어로 진행됐다.
 
아트 인 서울Arts in Seoul 2025 외국인 참가자들은 간송미술관 기획전 보화비장葆華秘藏에서 국보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에 가장 많은 관심을 보였다 사진강상헌 기자
'아트 인 서울(Arts in Seoul) 2025' 외국인 참가자들은 간송미술관 기획전 '보화비장(葆華秘藏)'에서 국보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에 가장 많은 관심을 보였다. [사진=강상헌 기자]
이후 전시는 보화각 2층부터 시작됐다. 2층 전시실에는 전시 개괄과 함께 그림 위주, 1층 전시실은 도자와 글씨 중심으로 구성돼 있었다. 외국인 참가자들은 작품 하나하나를 오랫동안 지긋이 지켜봤다. 작품을 한번 바라보고, 영어로 된 책자를 한번 들여다봤다. 어떤 관람객들은 스마트폰 검색을 통해 작품의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기도 했다.

가장 많은 관람객이 모인 작품은 국보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 남아 있는 고려청자 가운데 흔치 않은 원숭이 모양으로, 몸통의 맑은 비색과 철채로 표현된 이목구비가 특징이다. 관람객들은 어미의 뺨을 어루만지고 있는 새끼 원숭이와 두 팔로 새끼를 받쳐 안고 있는 어미 원숭이가 풍기는 오묘한 매력에 빠져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했다.

스페인 출신 산타올라야 엘로이나는 전시를 관람한 뒤 "한국의 역사와 문화, 예술에 대해 더 깊이 알 수 있어서 좋았다"면서 "설명을 들은 뒤 직접 작품들을 보니 내용이 자연스럽게 잘 이어졌다. 덕분에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길상사 스님과 아트 인 서울Arts in Seoul 2025 외국인 참가자들이 사찰을 돌아보고 있다 사진서울관광재단
길상사 스님과 '아트 인 서울(Arts in Seoul) 2025' 외국인 참가자들이 사찰을 돌아보고 있다. [사진=서울관광재단]
◆길상사에서 마주한 내면

간송미술관에서 다시 20분을 걸으면 삼각산 자락에 자리한 고즈넉한 사찰 길상사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본래 고급 요정 대원각이었으나, 법정 스님의 무소유 청빈 사상에 감동받은 김영한 여사가 시주해 사찰로 거듭났다. 이후 1997년 12월에 길상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법정 스님이 회주로 주석했던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길상사를 방문한 외국인 참가자들은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한번 놀라고, 대원각 시절의 전통 건축물이 어우러져 자아낸 독특한 분위기에 또 한번 놀랐다. 여기에 붉은 단풍과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살 그리고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까지. 도심의 분주한 일상에서 잠시 해방될 수 있는, 서울에서 느끼기 힘든 귀한 순간을 한껏 만끽했다.
 
길상사에서는 붉은 단풍과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살 그리고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을 느낄 수 있다 사진강상헌 기자
길상사에서는 붉은 단풍과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살 그리고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을 느낄 수 있다. [사진=강상헌 기자]
법정 스님이 실제로 머물던 공간인 진영각을 비롯해 사찰을 돌아본 뒤에는 법당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단청 열쇠고리 제작 체험과 스님과 차담을 진행했다. 특히 스님과 차담 반응은 뜨거웠다. 외국인 참가자들은 차분한 표정으로 "명상할 때 잡념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과거에 대한 미련을 놓고 싶어요", "생각을 줄이는 법이 있나요?" 등 그간 마음에 담아뒀던 질문들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스님의 답변에 외국인 참가자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후련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그러자 스님은 '마음에 정답은 없다'는 말을 남겼다.
 
아트 인 서울Arts in Seoul 2025 외국인 참가자들은 길상사 법당에서 스님과 차담회를 진행했다 사진서울관광재단
'아트 인 서울(Arts in Seoul) 2025' 외국인 참가자들은 길상사 법당에서 스님과 차담회를 진행했다. [사진=서울관광재단]
베트남 출신 응레민안은 "단청 열쇠고리를 제작하고, 스님과 차담회를 하는 이런 체험이 굉장히 이색적으로 다가오고 즐거웠다"고 했고, 캐나다 출신 카 호우 신은 "스님과 대화는 살면서 처음이었다. 특별한 경험이었고, 정말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길상사의 매력에 빠져 이곳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도 느는 추세다. 길상사 관계자는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외국인 관광객이 엄청나게 늘었다. 체감상으로는 100% 정도 증가한 것 같다. 유럽, 중국, 동남아시아 등 다양한 국가에서 길상사를 찾아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아트 인 서울Arts in Seoul 2025 외국인 참가자가 간송미술관 기획전 보화비장葆華秘藏을 관람하고 있다 사진강상헌 기자
'아트 인 서울(Arts in Seoul) 2025' 외국인 참가자가 간송미술관 기획전 '보화비장(葆華秘藏)'을 관람하고 있다. [사진=강상헌 기자]
◆가능성 확인한 '아트 인 서울'

서울관광재단이 시범으로 운영한 이번 '아트 인 서울 2025'는 성북을 비롯해 남산(전통공연, 국악), 정동(근대건축, 뮤지컬), 한남(리움미술관, 베어브릭 페인팅), 삼청(도보 예술 투어)으로 구성됐다. 일부 코스는 공지 후 몇 시간 만에 정원이 채워질 정도로 높은 관심을 보였다.

서울관광재단에 따르면 프로그램 전체 참가자는 40개국 161명을 기록했다. 국적 비중은 프랑스(11.4%), 미국(10.1%), 베트남(8.2%), 말레이시아(6.3%), 인도네시아(4.4%) 순이었다. 이 외에도 스페인, 영국, 중국, 멕시코, 카자흐스탄, 독일, 러시아, 네덜란드 등이 한국 예술의 숨은 매력을 체험했다.

서울관광재단은 이번 아트 인 서울 시범 운영 데이터를 바탕으로 예술관광 생태계 조성과 외래 관광객 유치, 경쟁력 강화, 인지도 확립 등 중장기 목표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서울관광재단은 '글로벌 예술 허브도시 서울 도약'을 비전으로 2029년 중장기 목표 실현을 위해 다양한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관광재단 관계자는 "아트 인 서울 2025를 시범 운영하면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어떤 부분을 선호하는지 알 수 있었다. 큰 성과"라면서 "내년 메인 사업은 아트 인 서울 '종합 플랫폼 구축'이 목표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과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 수집하고 선별된 예술관광 관련 정보 제공 등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아트 인 서울Arts in Seoul 2025 외국인 참가자들이 길상사 법당에서 단청 열쇠고리 제작 체험을 진행한 뒤 웃고 있다 사진서울관광재단
'아트 인 서울(Arts in Seoul) 2025' 외국인 참가자들이 길상사 법당에서 단청 열쇠고리 제작 체험을 진행한 뒤 웃고 있다. [사진=서울관광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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