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의 bureaucrat, 중국의 technocr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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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치는 대중을 움직이는 힘이며, 그 대중의 움직임에 의해 역사는 만들어진다. 

자유민주주의를 탄생시킨 시민혁명, 사회주의를 이끈 프롤레타리아 혁명 등 모든 혁명에는 대중이 존재했고, 그 대중의 움직임을 조직하고 설계한 정치 엘리트 집단이 있었다. 따라서 역사는 정치 엘리트와 대중의 끊임없는 대화와 상호작용 과정에서 이룩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정치 엘리트 집단은 인문·사회학 중심의 bureaucrat(관료) 구조를 갖는다. 대표적으로 제21대 국회의원의 경우 국회의원의 전직(前職)을 범주별로 보면, ‘정당인’ 출신이 21.3%, 법조계 15.3%, 공무원 등 14.3%, 지방의원 및 단체장 등 13%, 사회단체 12.3%, 언론계 8.7% 였다. 인문, 사회, 법, 상경계열이 정치 엘리트 주류를 형성한 반면, 이공계 출신은 1∼2% 수준에 불과했다. 다른 선거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유지되었다. 20대 국회 이공계 당선자는 전체 300명 중 5명, 21대의 경우는 10명, 22대 국회는 11명에 그쳤다.
 
한국에서 이공계 출신의 정치 엘리트 비중이 낮은 이유는 선거를 통해 엘리트가 충원되는 체제에 기인한다. 선거는 대중적 선전, 선동과 인지도 등이 당선에 중요한 요소가 되고, 이런 활동에 상대적으로 약한 이공계 출신의 정치 진입을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각 정당은 선거마다 부족한 이공계 엘리트 충원을 위해 비례대표제를 활용하지만, 비례대표로 선출된 국회의원이 다시 비례대표로 출마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제도로 인해 이공계 정치 엘리트의 지속적 축적도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인문·사회학 중심의 bureaucrat 집단은 대립과 갈등, 협의와 포용이 공존하는 다양한 정치문화를 만들었다. 대립과 갈등이 극화될 경우 엄청난 사회적 갈등을 유발했고, 협의와 포용이 지배했을 때는 안정성과 연속성 속에서 국가가 발전했다. 전자의 사례로는 윤석열 정부 시기 계엄사태와 탄핵 정국을 들 수 있고, 후자의 사례로는 DJP 연합을 통한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들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가치의 정치문화는 K-컬처 확산의 사회적 토양이기도 하다. K-컬처가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문화적 공감성과 정체성의 유연성이다. K-드라마나 영화, 예능 등은 사랑, 가족, 희망, 고난 극복이라는 보편적 정서를 다루면서도, 한국 고유의 정서와 문화적 색채를 담아 다른 나라 시청자에게도 새롭고 매력적인 문화 경험을 제공한다. 이는 한국의 인문·사회학 중심의 bureaucrat 정치문화가 반영된 결과라고 해석해 볼 여지가 있다.
 
반면 중국은 궤적을 달리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국가 발전의 최우선 과제를 산업 현대화에 두었고, 그 과정에서 공학 및 과학기술 배경의 정치 엘리트, 즉 technocrat(테크노크라트) 가 전면에 등장했다. 현재 중앙정치국 위원 24명 가운데 9명(약 38%)이 이공계 출신이며, 공산당 주요 간부 66명 중 31명(약 47%)이 과학기술 분야의 경력을 갖고 있다.
 
초기에는 기계·화학공학 위주의 전공 분야가, 최근에는 우주항공·원자력·환경공학·AI 등 전략산업 중심으로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마싱루이(항공우주), 위안자쥔(유인우주선 선저우), 천지닝(환경공학), 리간제(원자력 안전) 등이 대표적 인물이며, 장궈칭, 황창, 진좡룽처럼 방위·우주산업 출신 인사들도 중앙 정치 무대에 진입했다.
 
중국의 엘리트 충원 구조를 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다. 중국은 산업 현장 → 성급 지도자 → 중앙 정부 산업·과기 부서 → 정치국으로 엘리트들이 이동하고, 충원되는 구조를 갖는다. 기술적 성공이 곧 정치적 자산이 되는 중국의 technocrat 정치문화가 구축된 것이다.
 
중국의 technocrat 성장은 단순한 개인적 성취가 아니라 국가 전략의 산물이다. 그 결과 과학기술은 정치의 언어가 되었고, 엔지니어와 과학자는 정치 무대에서 주요 행위자로 등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정책은 기술적 논리에 따라 설계되고, 정치적 동력에 의해 추진되었다. 최근 중국의 바이오, 로봇, AI의 급격한 성장은 중국의 technocrat의 정치문화가 만들어낸 결과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인문·사회학 중심의 bureaucrat와 이공계 중심의 technocrat라는 양국의 정치 엘리트 집단의 경향성은 한·중 협력의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한국의 문화 역량과 중국의 기술 역량이 결합할 경우 세계적으로 폭발적 파급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중 협력은 동북아 중심으로 세계를 재편하는 데에 필수적 요소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0월 APEC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양국정상회담은 앞으로 한중관계 발전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양국은 국익과 실용에 기반한 한중관계를 전면 복원키로 했으며, 정치적 신뢰와 민간차원의 신뢰 구축에 합의했다. 또한. 한중 FTA 서비스·투자 협상의 실질적 진전 등 민생분야 협력과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위한 중국의 역할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중국은 한국 경제와 한반도 평화정착에 중요한 요소이기에 이번 회담이 중요했고, 잘된 회담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중은 서로 대비되는 정치 엘리트 집단의 정치문화를 갖고 있다. 양국의 문화는 대결로 작용할 수도 있고, 통합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인문·사회학 중심의 bureaucrat와 이공계 중심의 technocrat가 대립의 “VS” 가 아닌 통합의 “&” 구조로 발전하여, 양국이 새로운 동북아 시대를 열고 한반도 평화의 실질적 동반자로서의 길을 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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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즈니스 리더들 속에 이공계 출신들이 많아졌듯이, 국회나 행정부에도 이공계 출신 전문가들이 더 많이 진출해야 한국의 미래가 더 밝아지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칼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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